주간동아 875

2013.02.18

‘발등의 불’ 파벨라(리우의 달동네) 탈환작전

브라질 올림픽 앞두고 ‘도시 내 반군지역’ 대대적 정비에 총력

  • 황용복 통신원 hyb430@hotmail.com

    입력2013-02-18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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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후 여전히 혼란을 겪던 1890년대 브라질 얘기다. 브라질 동북부 한곳에 정착촌을 일구고 살던 주민 약 3만 명은 신생 정부에 귀속하길 거부했다. 브라질은 정부군을 투입해 현지를 장악했다. 작전을 끝낸 군인들이 당시 수도 리우데자네이루(리우)로 돌아오자 브라질 정부는 이들을 대책 없이 일괄 전역시켜버렸다. 오갈 데 없어진 제대군인들은 리우 산비탈에 움막을 짓고 비바람을 피했다.

    이들이 작전했던 지역에는 ‘파벨라(favela)’라는 관목이 많이 자랐다. 이 식물은 메마른 곳에서 잘 견딜 뿐 아니라, 억센 가시와 함께 잎에 독성도 지녀 사람이나 짐승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제대군인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가파른 주거지를 ‘파벨라 언덕’이라고 불렀다. 그 뒤로 ‘파벨라’는 브라질에서 달동네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됐다.

    열악한 주거환경 ‘공권력 진공지대’

    리우는 상파울루에 이어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주변 지역까지 합쳐 인구 1200만 명의 대도시권을 이룬다. 세계인들은 ‘리우’하면 카니발 도시, 삼바, 코파카바나 해변 등 남국의 정열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 이상으로 수많은 파벨라가 리우를 구성하고 있다.

    도시 대부분에 빈민가가 존재하지만 리우 파벨라는 특별한 뜻을 지닌다.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는 측면에서 파벨라는 다른 곳의 슬럼과 다르지 않지만, 리우에선 그 수가 900개가량이나 되는 데다 거주 인구가 150만 이상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또 보통 빈민가는 도시 외곽에 자리하지만 리우 파벨라는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한 중심가와 부유층 주택지 곳곳에 모자이크처럼 박혀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공권력 진공지대’라는 점이다. 대부분 파벨라는 범죄조직, 특히 마약 밀매단이 장악해 ‘정부’ 노릇까지 한다. 경찰은 이들이 무서워, 혹은 이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해 파벨라에 발 들이기를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래다.

    범죄조직은 자신의 ‘관할’ 파벨라에서 경쟁 조직이나 공권력 습격에 대비해 군부대 무기고 수준의 총기와 폭발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치안까지 담당한다. 통금 규칙을 정하고 주민 간 다툼이 생기면 이를 중재하거나 징벌한다. 주민들은 일정 부분 자신을 보호해주는 그들에게 복종하고 심지어 그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내전이 벌어진 나라에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을 반군지역이라고 부르는데, 파벨라는 그런 의미에서 ‘도시 내 반군지역’이다.

    20세기 들어 브라질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면서 리우 파벨라 수는 급증했다. 주민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데다, 마약 밀매와 강력범죄의 진원지라는 점에서 파벨라는 수십 년간 브라질의 골칫거리였다. 국립 상파울루대학 부설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은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마약, 특히 코카인 소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리우 달동네들은 빈민가였지만 20여 년 사이 마약조직의 아성으로 변했다. 1980년대 말 인접국 콜롬비아에서 생산한 코카인이 브라질을 거쳐 미국과 유럽으로 팔려 나가는 지하 유통망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브라질 국민의 코카인 소비도 폭증했다. 처음엔 부유층에게 주로 팔렸으나 지금은 빈민층 중독자가 많다.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2014년 월드컵축구대회(월드컵)와 2016년 올림픽경기대회(올림픽)가 리우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러시아, 인도, 중국 등과 함께 신흥 경제대국 하나로 떠오르는 데다, 대형 국제행사들까지 앞두고 있어 무장 범죄단체 소탕이 발등의 불이 됐다.

    대형 망깅요스 장악 성과

    ‘발등의 불’ 파벨라(리우의 달동네) 탈환작전

    브라질의 대표적 파벨라인 호싱야. UPP 주재소가 설치된 지역이다(왼쪽). 리우 최대 빈민가 알레마웅 일각.

    리우 주정부는 2008년 파벨라 문제를 전담할 특설조직으로 ‘경찰평화유지대(UPP)’를 창설해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UPP 목표는 파벨라 철거가 아니다. 워낙 깊이, 그리고 넓게 뿌리 내린 빈민가를 없애는 일은 감히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따라서 막강 조직이 장악한 일부 대표적인 파벨라에서 범죄조직을 몰아내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1차 목표다.

    주 정부는 월드컵 전까지 리우 파벨라 가운데 40곳에 UPP 주재소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28곳에 주재소가 설치됐으며, 해당 지역 주민은 전체 파벨라 인구의 1/5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정부는 UPP에 이들 지역을 맡기기에 앞서 군경 합동작전을 통해 먼저 대상 파벨라에서 범죄조직을 제거한다. 이후 UPP를 투입해 경찰 업무는 물론, 동네에 교육과 위생 같은 공공서비스를 주선하는 종합 관청 구실을 하게 한다.

    최근 성과는 지난해 10월 대형 파벨라인 망깅요스를 장악한 것이다. 이 작전에는 군경 1500명에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됐지만 마약조직 간부들이 이미 도주해 큰 저항은 없었으며, 다른 곳에서 마약조직원 5명이 사살됐다. 망깅요스를 장악한 군경은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불렀다. 과거 파벨라 장악은 기습 작전으로 펼쳐졌지만, 저항에 따른 총격전으로 주민 피해가 커 요즘은 최후통첩 후 며칠간 지역을 봉쇄해 범죄조직원의 투항을 유도한다.

    브라질은 전에도 파벨라 정리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잇따른 부작용으로 번번이 포기했다. 대표적인 방법이 주민을 강제로 공공아파트로 이주시키고 원래 달동네는 헐어 재개발하는 것이었다. 재개발을 추진해 생기는 막대한 이익으로 공공주택 건설비를 조달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1970년대 당시 군사정부가 시행한 이 계획에 따라 강제 철거당한 주민은 착공이 안 된 공공주택 땅으로 내몰렸고, 끝내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아 그 자리에 또 다른 빈민가가 생기기 일쑤였다.

    대다수 파벨라는 고지대에 위치해 조망이 기가 막히다. 요즘도 부동산업자들은 리우 해변과 탁 트인 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한 파벨라를 고급 주택지로 재개발하려고 눈독을 들인다. 재개발 대신 파벨라 건물을 순차적으로 재건축해 원래 주민을 싸게 입주시키는 방안이 추진된 적도 있지만, 딱지를 팔고 나간 주민이 더 비참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강력범죄 현저히 줄어

    리우 주정부는 기존의 부패한 경찰을 불신해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신참들로 UPP 대원을 채우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여러 파벨라에 오랜만에 공권력이 상주하고 강력범죄가 현저히 줄었다는 통계가 나온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와 주민은 이 계획을 좋게만 생각지 않는다.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이벤트가 끝나면 원상으로 돌아가리라고 보는 사람이 있고, 파벨라를 재개발하려는 부동산업자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출발했다는 냉소적 시선도 있다. 파벨라를 떠난 범죄조직이 ‘아스팔트’로 내려가 새로 뿌리 내리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다. 파벨라 주민들은 포장이 안 된 자신들의 동네에 빗대어 ‘정규’ 주거지를 ‘아스팔트’라고 부른다.

    브라질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정치민주화를 이뤘고, 경제성장도 눈부시다. 파벨라로 상징되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공직자 부패를 극복하고 21세기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지금 세계가 브라질을 주목하고 있다.

    뜨고 있는 슬럼관광

    자기성찰 기회냐, 돈벌이 수단이냐


    이 얄궂은 세상에서 빈민가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가장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관광업체가 관광을 알선하는 것. 리우데자네이루(리우)에서는 파벨라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와 일반 관광업체가 시내 투어 일부분으로 파벨라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호싱야, 산타마르타 등이 그곳이다.

    가이드 대부분은 해당 파벨라 거주자다. 손님들과 걸어서 두어 시간 마을을 돌며 구경을 시켜주지만 사진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찍게 하고, 주민과의 대화도 제한한다. 관광객들은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을 사기도 하고, 외부인을 상대로 한 삼바 교습소에서 삼바를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슬럼관광은 일종의 틈새시장이다. 리우 외에 인도, 케냐, 남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이뤄진다. 1980년대 남아프리카 흑인들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의 실상을 자기 나라 백인 관리들에게 보여줘 각성시키겠다는 취지로 흑인 동네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에 관광객들이 흥미를 보임으로써 슬럼관광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미국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쓴 영국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인도 뭄바이 빈민가가 배경으로 등장한 뒤 슬럼관광이 활성화됐다는 설명도 있다..

    슬럼관광에 대해 불우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성찰 기회를 갖고, 현지 경제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하지만 궁핍을 돈벌이로 활용한다는 성토도 이어진다. 리우 파벨라를 둘러본 사람들은 생지옥 같으리라고 생각했던 선입관과 달리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임을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한다. 브라질 정부도 슬럼관광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관광객을 위한 영문 안내판 설치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반면,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 키베라에서 일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슬럼의 겉모습만 본 참가자) 본인은 경험의 세계를 넓혔다며 혼자 만족해하겠지만 현지인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서 “그들은 사진을 찍고 우리는 존엄성을 훼손당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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