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4

2013.02.04

누가 뭐래도 ‘피처폰 사랑’

버튼 꾹꾹 ‘손맛’에 통화감도 좋은 일반 휴대전화 1000여만 대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3-02-01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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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뭐래도 ‘피처폰 사랑’
    2009년 말 KT가 애플사 아이폰 3G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 스마트폰 사용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온통 2세대(2G)인 세상에서 “○○가 아이폰 샀다더라”는 말이 모임 화제가 될 정도로 스마트폰 사용자는 희귀생물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3년여 만에 스마트폰은 2G를 가볍게 누르고 휴대전화 세상의 무소불위 독식자로 떠올랐다.

    재미와 특별한 기능을 갖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과 쌈박한 디자인은 물론, 명품 브랜드 로고에서부터 소녀 취향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각자 기호에 맞게 골라 끼울 수 있는 케이스 등 스마트폰은 소비자 마음을 잡아끄는 확실한 매력을 지녔다. 또한 ‘요즘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꼭 해야 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은 단순히 휴대전화를 넘어 현대인에게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기세에 굴하지 않고 스마트폰 대신 일반 휴대전화인 ‘피처폰(Feature Phone)’를 고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25일 방송통신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국내 2G 가입자 수는 1178만 명. 3세대(3G) 2978만 명, LTE 1172만 명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숫자다.

    “스마트폰이 오히려 불편해”

    속도와 편리함이 미덕인 스마트폰 시대에도 피처폰이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회사원 조광연 씨는 피처폰 애용자다. 직원 50여 명인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조씨는 “회사 내에서는 물론이고 친구 사이에서도 유일한 피처폰 사용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스마트폰으로 변심한 적이 있긴 하지만 불편함을 느끼고 곧바로 예전 피처폰으로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그가 얘기하는 피처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손맛’이다.

    “피처폰은 기판 버튼을 꼭꼭 눌러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동작을 통해 ‘내가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요. 반면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은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 왠지 꺼려지더군요.”

    3세 딸을 둔 경기 수원시 이소연 씨는 “아이가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고 3개월 전 피처폰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처음엔 아이가 칭얼거릴 때 달래려고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어주거나 유아용 앱을 다운받아 함께 갖고 노는 정도였는데, 점점 스마트폰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아이 모습을 보고 피처폰으로 바꾼 것.

    “아직 어린 아이가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엄마로서 결단이 필요했죠.”

    스마트폰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피처폰을 건네주니 처음엔 짜증내며 울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자 차츰 다른 장난감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이씨는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아직도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눈길을 돌리곤 하는데 예전처럼 심하게 보채지는 않아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와 스마트폰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우리도 그대로 뒀으면 저렇게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 대치동에 사는 윤하은 양은 “스마트폰이 생활에 방해가 된다”며 자발적으로 피처폰을 선택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하은이 스마트폰을 포기한 이유는 카카오톡 때문. 새벽부터 밤까지 반 친구들이 카카오톡 문자를 보내는데, 어떤 날은 자는 동안 2000여 개나 온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카카오톡 알림 소리 때문에 자다 깨기도 하고, 문자를 확인한 엄마한테 혼이 난 적도 많았어요. 카카오톡을 삭제하고 싶어도 다른 친구들이 알면 욕을 먹거나 왕따를 당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엄마와 상의해 카카오톡을 할 수 없는 피처폰으로 바꿨어요.”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한 환경에서 피처폰을 쓰다 보면 여러모로 불편이 따르리라 생각되지만, 피처폰 사용자들은 이구동성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조광연 씨는 인터넷 검색이나 SNS 등 스마트폰이 필요한 경우엔 태블릿PC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보단 태블릿PC의 큰 화면이 시원해서”라고 이유를 밝힌 그는 “집과 사무실을 왕복하는 생활 속에서 굳이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기능을 통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전화는 피처폰으로, 영화보기나 인터넷 검색, SNS는 태블릿PC 또는 노트북을 이용하는 등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편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시대 역행? 장점만 골라 쓰는 사람

    누가 뭐래도 ‘피처폰 사랑’
    이소연 씨도 마찬가지 의견을 내놨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을 쓰던 시절에도 게임과 인터넷 검색 외의 기능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그때는 시간만 나면 게임하거나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수다를 떨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없앤 지금은 오히려 내 시간이 많아져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며 아이를 위해 선택한 피처폰이 결국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피처폰으로 바꾼 지 1년이 돼간다는 하은도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사실 스마트폰도 게임과 카메라, 카카오톡 외의 기능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다”며 “예전에 쓰던 휴대용 게임기나 엄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데, 전에 비해 게임하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통화 기능만 놓고 본다면 피처폰이 월등하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서울 오금동 최희숙 씨는 “휴대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 감도”라면서 피처폰의 손을 들어줬다.

    “2년 전 통신사에서 3G로 전환하면 많은 혜택을 준다는 말을 듣고 스마트폰으로 바꿨어요. 문제는 스마트폰 통화 감도가 피처폰만 못하다는 데 있었죠. 업무관계상 하루 8시간 이상 휴대전화로 통화해야 할 때가 있는데, 스마트폰은 통화가 길어지면 잡음이 들리거나 감이 멀어지는 등 통화 감도가 떨어지고 배터리 충전도 자주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어요.”

    스마트폰 장점으로 많은 사람이 효율성과 편리함을 들지만, 과연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얼마만큼 편리한지는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세인 세태에서 피처폰 사용자들은 가끔씩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조씨는 “나는 디지털기기의 기능을 통합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각각의 장점만 따져 골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서 “단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날로그적 인간’이라는 시선을 받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다른 이들도 조씨와 비슷한 불만을 털어놨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대세라고 해도 스마트폰이 따라잡지 못하는 피처폰만의 매력을 확실히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피처폰이 휴대전화업계에서 ‘멸종’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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