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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만리(茶香萬里)

“잠깐! 차 한 잔”… 막중한 국정의 쉼표

왕실의 ‘다방제도’

  •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잠깐! 차 한 잔”… 막중한 국정의 쉼표

“잠깐! 차 한 잔”… 막중한 국정의 쉼표

조선시대 다방을 재현한 모습.

제18대 대통령이 선출됐다. 신라 선덕여왕 이후 1300여 년 만에 여성 최고지도자가 이 땅에서 나왔다. 외유내강형인 박근혜 당선인이 어머니가 안살림을 잘 꾸려 가족이 편안하듯,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가꿔 국민이 경제, 범죄, 교육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 경험에서 답을 찾고 옛사람의 지혜를 구해서라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소통과 믿음이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대통령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도 국정을 믿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아 열심히 일할 수 있다. 부디 어진 백성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랏일을 잘 살펴달라는 마음을 담아 맑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박 당선인에게 올린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왕이나 관리들은 중대한 국사를 결정할 때 냉정한 이성을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머리가 맑아지는 차 한 잔을 마셨다. 차 속 카페인이 머리를 맑게 하는 작용을 해 아예 국가 부서로 ‘다방’도 설치했다.

이러한 다방제도는 차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고려 문종 1년(1047) 처음으로 실시했는데, 다방은 궁궐을 지키고 임금을 모시는 일을 맡은 성중관(成衆官)에 소속된 관청으로, 임금이 건강을 위해 마시는 차부터 국정을 돌볼 때 마시는 차까지 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전문적으로 관장했다. 국가적 축제인 팔관회와 연등회 등을 비롯해 설과 추석 같은 명절, 종묘제사, 사신맞이, 때로는 왕자책봉식이나 공주가 시집가는 자리에도 차가 의례물로 등장했다.

이같이 크고 작은 국가 행사에 차를 활용한 것은 차의 약용성과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의례적인 정신에서 비롯됐다. 고려 성종 때는 80세 이상 노인이나 중환자에게 차를 내렸고, ‘고려사열전’에는 아끼는 신하 최지몽이 세상을 떠나자 성종이 애도의 마음을 담아 향과 차 200각을 부의품으로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 ‘다군사(茶軍士)’가 뒤따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궁중 밖에서 왕족에게 차를 올리거나 부처에게 헌다(獻茶)하기 위해 차도구와 짐을 나르는 의장대 행렬에 휴대용 화로를 들고 가는 행로군사(行爐軍士)와 다구를 포함한 차짐을 들고 가는 다담군사(茶擔軍士)가 뒤따랐던 것이다. 다군사는 군역을 면제받는 특전도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보충 인원이 수백 명이나 되는 폐단이 생겨, 그 수를 줄이려고 용모 단정한 자로 100명만 뽑았고, 때로는 종군하도록 했다.



조선 초에는 야다시(夜茶時)라 해서 밤중에 다방을 여는 경우도 있었다. 신하 가운데 간사하고 분에 넘치며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으면 그 집 근처에서 야다시를 열어, 그 사람의 죄상을 흰 널빤지에 써서 집 대문 위에 걸고 가시나무로 문을 단단히 봉한 뒤에 서명했다. 이 경우 그 사람은 죄인으로서 세상에서 유폐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차를 마시는 의례를 행함으로써 세한(설 전후 매우 심한 한겨울 추위)에도 치우침 없이 엄정하고도 신중한 판단을 얻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에서 푸른 차나무의 성품을 다시에 적용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목이 말라 마시는 음료의 범주를 넘어, 국가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에서 한몫할 수 있었던 차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커피가 수입되면서 흔히 다방이라고 하면 외국 문화의 일부로 여기지만, 고려 500년과 조선 500여 년 역사에서 다방은 엄연히 국가 기관으로 존재했다. 이외에도 일반 백성이 차를 마시는 공간인 다점(茶店)도 있었다. 이러한 다방 제도는 차 종주국이라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풍속이다. 조선 후기까지 존재하던 다방은 왕권이 무너지면서 일반 대중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요즘 외국 관광객으로 붐비는 한국관광공사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다동(茶洞)은 조정에 있던 다방이 궁 밖으로 나와 성황을 이루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 수장이 여성이라 아마도 술보다 차를 더 가까이할 것이다. 옛말에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고 한 뜻을 새겨 차를 즐겨 마시면서 차처럼 맑고 기품 있는 정치를 펼치기를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2.12.31 869호 (p75~75)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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