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2012.09.24

누구든 ‘가계 주름살’ 펴다오!

정치·사회 문제 경제로 모여 ‘복합 어젠다’ 등장

  • 글 |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hgrhhs@daum.net

    입력2012-09-24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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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든 ‘가계 주름살’ 펴다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이하 대선)는 1987년 대선 이후 가장 긴장감이 떨어지는 대결이었고 승부도 일찌감치 나버렸다. 그럼 이번 대선은 어떨까. 17대 대선 같은 결과가 나올까. 아니면 15대나 16대 대선처럼 접전이 벌어질까.

    17대 대선은 경제회생이 단일 의제였다. 경제 대통령 이미지로 이 이슈를 장악한 이명박(MB) 한나라당 후보가 선거 초반부터 앞서갔고, 야권은 판세 한번 제대로 뒤집어보지 못한 채 패했다.

    그럼 이번에도 17대 대선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일단 ‘주간동아’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에도 국민은 경제 대통령을 원한다. 얼핏 경제 대통령이 부각됐던 5년 전 17대 대선의 재판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5년 전과 이번은 경제 대통령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

    17대에 이어 18대 대선에서도 경제가 주요 어젠다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크게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즉 우리 사회의 주요 어젠다가 정치나 사회에서 경제로 넘어감으로써 민주, 참여, 개혁, 통일이 더는 대선 쟁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은 일상화, 제도화 과정으로 접어들었고, 민주화는 보수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쟁거리가 안 된다. 이는 민주적 혹은 반(反)권위주의적 정부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럼 왜 경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됐을까. 김영삼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네 정부에서 경제 세계화를 목표로 일관되게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결과, 경제 양극화가 심화한 데 대한 국민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 양극화’ 국민 자각

    그 중심에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있다. 6·25 전쟁으로 남북문제 같은 정치적 고통을 경험한 앞 세대와 달리, 이들은 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뿐이다. 외환위기로 혹독한 경제적 고통을 경험한 이후 지금까지도 경제적 생존과 양극화라는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세대다. 그러다 보니 경제 문제가 통일이나 민주화, 개혁 같은 이슈보다 더 큰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번 대선에서도 정치·사회 대통령이 아닌, 경제 대통령을 원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 대통령을 원한다면 이번 대선에서도 17대 같은 결과가 나올까.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17대보다 15대, 16대 대선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대통령에 담긴 경제적 이슈는 성장이냐 분배냐의 이분법적 단순 논의가 아니다. 이런 전통적 논의에 더해 양극화의 원인 진단에서 출발해 재벌 개혁, 시장정의, 분배와 복지, 개인 및 중소 영세상인 보호, 세계체계 속에서의 경제위기 관리 등 경제를 국가와 사회 시스템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18대 대선은 17대와 달리 단순한 경제회생 같은 어젠다가 아니라, 모든 국가·사회적 문제가 경제로 수렴되고 경제로 해결돼야 할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정치·경제학적 어젠다의 등장이다.

    그 결과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 자체의 단일 이슈가 아닌 성장 관련 이슈, 정의 관련 이슈, 기회와 분배 등 사회·철학적 이슈와 복지 등 제도적 이슈 같은 복합적 어젠다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는 결국 17대 대선은 경제가 단일 어젠다였지만, 18대는 경제를 바탕으로 한 복수 어젠다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선 후보 3명 가운데 경제 대통령에 대한 주도권은 누가 쥐었을까. 지금 보기에는 그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듯하다. 어느 후보도 경제 대통령을 선점하지 못했다. 아울러 경제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후보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대선 후보 3명이 내놓은 선거 전략은 명확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성을 견고히 쌓는 진지전을 준비하고, 야권은 보수진영의 성을 공격해야 하는 공성전, 즉 유격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보수진영의 성은 40∼45%의 지지층을 지닌 만큼 견고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야권의 선거 전략이 공격적이고, 때론 네거티브로 흐를 수밖에 없어 이번 대선도 치열할 공방전이 예상된다. 그리고 야권으로서는 보수진영의 견고한 성을 공력하려면 성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한데, 이것이 이슈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사회적 이슈 10가지

    이번 여론조사 목적은 우리 사회가 지닌 정치·사회적 이슈 10가지에 대한 국민 생각을 살펴봄으로써 대선 판도를 전망하는 것이다. 이 이슈가 대선에서 주요 쟁점이 될지 가늠하려면 캐스팅보트(casting vote·가부 수가 같을 때 행하는 의장의 결정투표) 노릇을 할 40대나 부동층 여론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01 차기 대통령 상(像)

    국민 40.1%가 경제 대통령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 정의(21.7%), 복지(20.1%), 화합(13.6%), 통일(1.6%) 대통령 순이었다. 결과를 보면 경제 대통령이 가장 많지만, 정의 대통령과 복지 대통령을 합하면 경제 대통령보다 더 많다. 이러한 결과로 보건대, 성장 논쟁의 경제 이슈보다 시장과 분배정의, 복지 이슈를 선점하는 후보가 더 유리할 것이다.

    02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찬성이 69.7%로 매우 높다. 지지 후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거의 비슷한 데다 무당층, 즉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 사이에서 반대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대선에서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03 여성 대통령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71.1%)는 응답이 40대(76.9%)와 무당층(77.9%), 중도층(74.3%)에서 모두 높게 나타나 대선에서 쟁점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04 5·16 군사정변

    ‘일어나서는 안 될 불법적 헌정중단사태’(41.0%), ‘불법이지만 불가피했다’(44.7%), ‘반드시 필요했다’(6.6%)로 의견이 나뉘었다. 지지 후보에 따라 의견이 명확히 갈리는데, 부정적 의견이 40대 이하(40대 45.4%, 30대 55.3%, 20대 59.4%)와 무당층(43.4%)에서 많이 나와 대선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05 전시작전통제권

    ‘가능한 한 빨리 한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45.9%)과 ‘전환 시기를 더 늦추어야 한다’(34.8%)는 의견이 대립하고 지지 후보에 따라 의견이 명확히 나뉘기 때문에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40대 이하(40대 57.8%, 30대 53.6%, 20대 56.5%)와 중도층(47.6%)에서 많이 나온 점이 주목된다.



    06 군복무 가산점

    찬성(76.4%)이 반대(21.3%)보다 훨씬 많고, 반대 의견이 40대(23.2%)와 무당층(23.9%), 중도층(19.1%)에서 적게 나와 쟁점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07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

    ‘철저한 상호주의’(61.6%) 의견이 압도적인 데다 그 대척점인 ‘조건 없는 지원’(14.6%)이 너무 적어 대선에서 이슈가 될 것 같지 않다.



    08 통일에 방해되는 나라

    ‘통일에 방해되는 나라’로 중국(62.9%)과 미국(19.4%)을 꼽았다. 40대(66.7%)와 무당층(61.4%)에서 중국을 첫 번째 국가로 지목한 것에 비춰 16대 대선처럼 반미(反美)가 쟁점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09 아동성폭행범 처벌

    ‘사형이나 무기형’(76.3%)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이런 의견이 40대(82.7%)와 무당층(73.7%), 중도층(75.6%)에서 많이 나와 대선에서 특별한 논쟁거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10 경제민주화 관련 재벌 규제

    경제민주화에 관련한 재벌 규제에 대해 ‘경제성장에 긍정적’(34.7%), ‘경제성장에 부정적’(27.8%), ‘별 영향이 없을 것’(29.6%)이라는 의견으로 갈리고, 세대별 의견이 별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중도층이나 무당층도 비슷한 성향을 보여 향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치·사회적 이슈 10가지 가운데 4가지는 대선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40대, 중도층, 무당파 의견이 선거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17대 대선과 달리 단일 이슈로 선거가 진행될 가능성은 낮으며, 이슈가 여러 개가 될 전망이다.

    막판까지 혼전 가능성

    이슈 4가지는 야권에서 공세 수단으로 활용할 개연성이 높다. 또한 각 이슈는 경제를 매개로 표출될 것이다.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정의와 분배, 복지가 결합한 복수의 경제 이슈를 누가 선점하고 주도하느냐에 따라 대선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17대 대선과 달리 단일 이슈에 의한 조기 승부가 아닌, 선거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하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될 개연성이 높다. 그리고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이명박 정부 같은 ‘경제 회생 원 미션’ 정부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 ‘가계 주름살’ 펴다오!

    2007년 11월 27일 대전 은행동에서 열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거리유세에 많은 시민이 모여 연설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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