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5

2012.09.17

장하다, 씩씩하고 아름다운 네 모습

독도의 술패랭이꽃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2-09-17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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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다, 씩씩하고 아름다운 네 모습
    독도에 다녀왔습니다. 식물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래전부터 언제 한번 제대로 조사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갑작스레 토종 식물에 관심이 고조되어 여기저기 다니고 조사하는 일이 많다 보니 차일피일 탐방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막상 독도를 찾아가 보니 남들이 손을 놓을 때 찾아가리라 괜한 고집을 피웠던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독도는 노랫말처럼 동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었습니다. 독도에 사는 여러 생물에 대한 보고서나 논문을 보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저 막연히 깎아지듯 서 있는 절벽 같은 바위 사이에 식물이 드문드문 가까스로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독도에는 생각보다 식물이 많았습니다. 큰 나무는 없어도 흙이 앉은 자리나 바위틈 사이사이 강인한 생명들이 회색 돌섬을 푸르게 덮고 있었습니다.

    독도에서만 자라는 식물은 없지만, 50여 종류의 식물 면면을 보니 문득 독도에 산다고 해서 특별히 외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도는 정말 우리 토종 식물이 사는 우리 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도 식물은 울릉도와 가까운 섬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듯 섬괴불나무, 섬제비쑥 등이 서식하며 육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철나무, 바랭이, 털쇠무릎, 억새 같은 식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찾아갔다면 노란색 땅채송화와 섬기린초가 아름다웠을 것 같고, 조금 늦게 갔다면 가을이 깊어가면서 절벽 사이 보라색 해국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육지 들판과 마찬가지로 박주가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 술패랭이꽃이 여름의 끝을 잡고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오늘 보여드리고 싶은 꽃은 바로 술패랭이꽃입니다. 술패랭이꽃은 석죽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술패랭이꽃을 모르신다면 혹시 패랭이꽃은 아시나요. 패랭이꽃은 한국산 야생 카네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술패랭이꽃은 패랭이꽃과 자매 식물이지만 꽃빛이 연분홍이고 이름에 나타나듯 꽃 끝이 마치 술처럼 잘면서도 길게 갈라져 있습니다. 꽃빛이 곱고, 분백색이 나는 줄기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하고 아름답습니다. 술패랭이꽃은 흔치는 않지만 전국에 분포합니다. 패랭이꽃 종류는 보통 석죽(石竹)이라고 부릅니다. 마디가 있고, 그 마디를 서로 마주보고 감싸며 2장씩 달리는 잎이 대나무 잎을 닮았습니다.



    술패랭이꽃은 바위산 같은 척박한 곳에서도 자리 잡고 비바람 혹은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잘 자랍니다. 꽃이 피면 오래오래 볼 수 있으니 집 안에서 키우기 좋은 최고의 식물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집 안 식물을 통틀어 구맥(瞿麥)이라 부르며 생약명으로 이용하기도 하죠. 술패랭이꽃이 자라는 독도에 다녀오니 관념 속 독도가 어느새 친근한 우리 섬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땅 어디에선가 술패랭이꽃을 만난다면 ‘지금 독도에도 한창 술패랭이꽃이 피었겠구나’ 하고 한 번쯤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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