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4

2012.09.10

레임덕은 없다

27회 3국 동맹

  • 입력2012-09-10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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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은 북한이다. 지난 정권에서 ‘국방백서’에 북한에 대한 주적 표현을 빼는 작업을 고위층 주도로 실시했는데, 이는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적은 그대로인데 이쪽이 먼저 무장해제를 한 것이나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민 의식과 1948년 8월 15일 건국 이후 기반을 굳혀온 자유민주주의 토양이 있었기에 회색분자들의 반역적 의도는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방 의식이 많이 손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 첫 번째 원인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청소년 교육현장에 침투한 전교조의 반역적 사상 주입이다. 그들에게 세뇌당한 청소년이 사회로 나와 20대, 30대의 친북·종북분자가 돼왔다.

    그래서 이명박은 집권하자마자 전교조를 소탕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 소탕한 것은 아니다. 본래 순수한 의도를 지니고 있던 교사들은 심사 후 그대로 근무하게 했다. 엄격한 법 집행, 여론이나 억지를 용납하지 않는 통치자의 의지만 있으면 정국은 안정되는 법이다.

    2010년 6월 10일 오후 3시. 중국 베이징 이화원 근처 안가에서 한국 대사 류우익이 중국 외교부장 양제츠를 만나고 있다. 둘 다 간편한 노타이셔츠 차림이지만 표정이 굳어 있다. 방 안에는 여섯 명이 둘러앉았는데 한국 측은 류우익과 이명박의 특사 최길중, 그리고 통역 하영수다. 중국 측은 양제츠와 주석실에서 나온 비서 탕지엔, 그리고 통역이다. 이번 회담은 이명박이 제의한 비밀회담인 터라 인사를 마친 최길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일본에 대한 공동 대처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통역의 말을 들은 양제츠와 탕지엔이 서로의 얼굴을 봤다. 먼저 입을 뗀 것은 탕지엔이다.

    “일본에 대한 공동 대처 방안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통역과 일체가 돼 거침없이 말이 이어졌다.

    “아니, 뭘 말입니까?”

    또 탕지엔이 묻자 최길중이 대답했다.

    “배상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더욱이 중국은 센카쿠, 한국은 독도 등 영토 문제로 일본과 대치 중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국지적인 섬 문제로 다투는 것은 일본의 위상만 높여주는 결과가 된다고 이명박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양제츠와 탕지엔은 시선만 주었고 최길중이 말을 이었다.

    “일본은 침략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그 이전에는 중국과 한국을 침략해 수백만 명을 살상했습니다. 중국 난징대학살은 물론, 한국은 36년간이나 식민 지배를 받아 수백만이 징집과 징용으로 끌려가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위안부로 끌려간 여자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항의하는 실정입니다.”

    최길중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고 얼굴은 상기됐다.

    “그런데 일본은 패전국이면서도 미국의 보호를 받아 전쟁 책임자인 일왕이 아직도 건재하고 영토도 보존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국의 방위 근거지가 돼 번영을 누립니다. 한 번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는 일본이 오히려 지금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양제츠와 탕지엔은 눈만 치켜떴고 최길중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영토 문제와 함께 한중이 공동으로 일본에 배상금을 청구하자고 제의하셨습니다. 그것은….”

    숨을 들이쉰 최길중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북한 정부도 우리와 공동보조를 취할 것입니다.”

    # 김정일을 만난 한국 측 대표는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다. 주석궁의 소회의실 안이다. 오후 5시, 유명환은 개성을 통해 육로로 평양에 왔는데 명목은 남북 간 경협 예비회담이다. 그러나 유명환은 외교안보수석 김성환만 대동했다. 너절하게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아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그래서일까,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김정일과의 면담을 신청했더니 세 시간 만에 주석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먼저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오? 경협에 문제라도 있소?”

    “경협 때문이 아닙니다, 위원장님.”

    유명환이 정중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일본에 대처하자는 제의를 하셨습니다.”

    김정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듣기만 했고 유명환의 말이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5년이 지났습니다. 독일은 배상과 사과 등을 거의 완벽하게 끝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왕은 그대로 존속하고, 일본 우익은 한국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간 증거가 있느냐고 대드는 상황입니다.”

    김정일이 눈을 치켜떴을 때 이번에는 김성환이 나섰다.

    “일본은 박정희 정권 때 경협자금 3억 달러를 준 것으로 다 끝냈다는 시늉을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피해 보상금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하지.”

    김정일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3억 달러가 뭐야? 500억 달러는 받아내야지. 그리고 우리 북조선은 아직 받지도 않았다고.”

    “대통령께서는….”

    심호흡을 한 김성환이 말을 잇는다.

    “중국과 3국 공동으로 일본을 압박하자고 하셨습니다. 지금 대통령 특사가 그 일 때문에 중국을 극비 방문 중입니다.”

    이제 방 안의 무거운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정일 좌우에 앉은 외무상 박의춘, 국방위 부위원장 장성택의 눈도 번들거렸다.

    # 방으로 들어선 이회창이 정색한 얼굴로 이명박을 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이명박이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안이다. 오전 10시, 이회창은 곧장 청와대로 출근한 셈이다. 이윽고 집무실 소파에 대통령실장 조순형까지 셋이 둘러앉았을 때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후진타오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3국 공동보조로 나가자고 합의했습니다.”

    “허어.”

    탄성을 뱉은 이회창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3국 동맹을 맺어도 되겠습니다.”

    “그런 셈입니다.”

    조순형이 화답했다. 이회창도 중국과 북한에 특사를 파견한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때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중국은 보상금으로 700억 달러, 남북한은 북한과 합의해야겠지만 500억 달러 정도를 제시할 작정입니다. 김 위원장이 500억 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군요.”

    “북한 몫은 얼마나 됩니까?”

    이회창이 묻자 이명박이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그건 나중에 협의하지요.”

    “거기에다….”

    조순형이 말을 이었다.

    “중국은 영토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 열도, 한국은 독도를 이 기회에 확실하게 일본 측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자 이회창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일본은 전후(戰後)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미국이 태평양 방위선으로 이용하려고 전쟁 책임자인 일왕부터 놓아두었고 영토는 건드리지도 않은 데다, 배상금도 지불하지 않았지요. 미국 책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명박이 이회창을 보았다.

    “3국이 나서면 미·일이 연합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 2010년 7월 10일 남·북·중 3국의 외교 장관은 서울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 내용은 ‘한반도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전쟁배상금 청구’였다. 3국은 청구 내용을 유엔과 국제형사재판소 등에 제출했는데,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수록했다. 현재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절규하는 모습도 첨부했다.

    실로 전후 65년 동안 일본은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도 일본 극우파는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징용도 부정하고, 위안부는 자발적 봉사라고 주장한다. 한국령 독도가 일본령 다케시마(竹島)라고 우기고, 센카쿠 열도 또한 일본령이라고 주장한다. 3국 외교 장관은 배상금으로 중국 700억 달러, 남북한 공동 500억 달러를 청구했으며 독도와 센카쿠 열도는 각각 한국령, 중국령임을 일본이 승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3개월 안에 일본이 합의하지 않으면 ‘국교 단절’ ‘배상금 강제 환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준(準)선전포고나 같다.

    3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북한이다. 북한 외무상 박의춘은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만일 일본이 ‘청구’를 무시하거나 이유 없이 지연할 경우 한반도를 침탈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 측이 준비한 자료는 방대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1599년 종전될 때까지 7년 동안 수백만 명의 조선 백성을 살해한 것에 대한 배상금, 탈취해간 재물에 대한 보상금, 잡혀간 인질에 대한 정신적 위로금까지 계산하면 18조7000억 달러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그것까지 받아낼 것이라고 했다.

    #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대하는 태도는 정중하다. 클린턴이 누구인가. 오바마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경쟁자이기도 하다. 이제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의 제2인자인 국무부 장관으로, 3년째다. 관료로서 관록도 붙었다. 클린턴이 소파에 앉자 오바마가 말했다.

    “모두 MB가 주도한 짓이요. 이거 내가 배신당한 기분인데.”

    클린턴은 눈만 깜박였고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북한 미스터 김은 아이고 좋아라 하면서 끼어들었고 말입니다. 차이나 미스터 후는 이 기회에 우리를 누르고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키울 기회를 잡은 거지요.”

    “일본은 지금 공황 상태입니다. 대통령 각하.”

    클린턴이 차분하게 말하자 들떠서 떠들던 오바마가 침을 삼키고 조용해졌다. 클린턴의 시선이 오바마 옆에 앉은 국가안보보좌관 도닐런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본 내 우익이 격렬히 반발했지만 금방 분위기가 식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면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중입니다.”

    “아니, 일본 방위력이….”

    오바마가 눈을 치켜떴을 때 도닐런이 끼어들었다.

    “일본 방위군은 현대식 무기를 갖췄지만 전쟁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도닐런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주일미군이 나가면 금방 허물어집니다.”

    그때 오바마가 나섰다.

    “그러니까 주일미군이 있는데 한국군, 중국군이 덤빌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도닐런의 시선이 클린턴에게로 옮겨졌다. 두 쌍의 시선을 받은 클린턴이 손가락을 갈퀴처럼 만들어 황금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 상태지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아직도 유효하고 전시작전통제권도 미군사령관이 쥐고 있습니다.”

    시선을 든 클린턴이 오바마를 보았다. 바다색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군은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일본 영토에 상륙이라도 하면 우리 미국군이 일본군 대신 전쟁을 해야 할까요?”

    “에이, 그럴 리가.”

    오바마가 투덜거리자 이번에는 도닐런이 말을 잇는다.

    “한국군 때문에 북한군을 공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남북한군이 동맹을 맺으면 우리가 한국군을 공격하는 것이 되니까요.”

    “빌어먹을.”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오바마가 어금니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그러고는 한마디 했다.

    “빌어먹을 놈, MB.”

    # “말도 안 되는 수작이요.”

    일본 총리 간 나오토가 버럭 소리쳤지만 방 안에서 맞장구치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중국, 남한, 북한 3국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닷새째가 되는 2010년 7월 14일, 총리 관저에서 간 나오토와 재무성 장관 노다 요시히코, 그리고 방위청 장관 가토 고이치 등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다시 나오토가 말을 이었다.

    “이것들이 장난칠 가능성은 희박해요.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위대는 비상경계를 시키면 돼요.”

    “미 태평양함대가 곧 일본해로 들어오면 됩니다.”

    하고 고이치가 대답하자 요시히코가 묻는다.

    “중국 함대는 어떻게 된 겁니까?”

    “예, 그것이….”

    입맛을 다신 고이치가 말을 잇는다.

    “칭다오의 북해함대에서 구축함 7척, 프리게이트함 6척, 상륙함 4척, 잠수함 8척으로 구성된 호송전단이 어제 모항을 떠났습니다.”

    모두 입을 다물었고 방 안에 고이치의 목소리가 울린다.

    “북한 나진, 선봉에서 나오는 화물을 호송한다는 명목인데 닷새 후에는 일본해에 진입합니다.”

    대규모 함대다. 일본해는 공해이므로 어느 나라 함정도 오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명 ‘동해’는 지금까지 한·일·미·러 4국 해군의 안마당이었다. 나진, 선봉 구역이 50년간 중국에 임차됨으로써 중국은 100여 년간 기다렸던 동해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했다. 동해, 즉 일본해에 중국 군함이 호송전단이라는 명목으로 출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나오토가 잇새로 말했다.

    “이놈, MB. 네 수작에 우리가 넘어갈 것 같으냐?”

    # 고려시 E구역은 중소기업체 사무실과 자잘한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하루에도 서너 곳씩 생겨나고 있다. 오후 7시, 이곳의 삼겹살 식당에서 오종택과 서상국, 그리고 이애주까지 셋이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다.

    “500억 가운데 북한한테 300억을 준다는군. 이건 정확한 정보야.”

    또 오종택이 아는 체를 했으므로 서상국은 쓴웃음을 지었다.

    “줘야 나누는 거지.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해. 내가 알기로는 한 푼도 못 받는다.”

    “그게 이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정색한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한국, 북한, 중국, 일본까지 네 나라 관계는 변수가 많다는 말이다. 아직도 까지 않은 고스톱 표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여.”

    “고스톱은 무슨. 미국은 왜 빼먹었어? 미국 8함대가 들어오고 있는 거 몰라?”

    “글쎄. 그게 3자 껍데기라니께. 3광이 아니란 말이여.”

    지금 오종택은 3·8광땡을 말하고 있다. 오종택이 눈을 치켜뜨고 열변을 토했다.

    “미국이 일본하고 방위조약을 맺었다지만 아무도 못 건드려. 중국과 남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못 한단 말이다.”

    “들으셨어요?”

    불쑥 이애주가 나섰으므로 둘의 시선이 옮겨졌다. 이애주가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말했다.

    “일본 관광객이 급증한다는데요. 정부에서는 감추고 있지만 요즘 평균 대비 두 배 가까운 일본인이 한국으로 입국하고 있다네요.”

    “….”

    “그중에는 이민 오는 것처럼 짐과 돈을 싸들고 오는 사람이 많대요.”

    “…”

    “특히 20~40대가 많다고 해요.”

    “그렇다면….”

    정색한 서상국이 말을 이었다.

    “우린 이겼다.”

    # 2010년 8월 5일 동해상에서 남북한과 중국 해군의 합동 군사훈련이 있었다. 훈련 명칭은 해방훈련. 3국 해군력을 총동원한 훈련이어서 중국은 북해함대의 거의 전(全) 함대를, 남북한 또한 전 함대를 동원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구축함급 전투함 272척, 잠수함 125척, 해군 지원용으로 파견된 전투기, 폭격기, 조기경보기 각 800여 대, 상륙함 24척, 전투 헬기 124대, 상륙용 전투요원 6개 사단 8만여 명, 탱크와 기갑차량 3개 여단 1925대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였다.

    3국은 세계 각국의 보도진을 불러 모았으므로 해방훈련은 전 세계로 보도됐다. 러시아는 극동함대를 파견해 동해 북부를 누르고 있었는데, 다분히 동해 남쪽에서 선회하는 미 제8함대에 대한 시위였다.

    일본은 3국 해군 훈련에 대응해 전 해·공군력을 동원했지만 첫째, 엄청난 3국군 규모에 압도당했다. 일본군은 3국군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자위대 해군의 사기는 높았지만 국민은 공황 상태였다. 전후(戰後) 성장과 번영을 구가하던 일본인은 60년째 전쟁 같은 전시 체제에 익숙해 있는 남북한 군(軍)과 국민의 의식 구조, 그리고 중국인의 패기를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해방훈련은 독도를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울릉도를 가상 적국으로 삼아 상륙하는 장면은 닷새 동안의 훈련 중 압권이었다. 수백 척의 전투함과 전폭기가 바다, 하늘을 뒤덮은 채 1000여 척의 상륙정이 돌진하는 광경은 금세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고 CNN 기자가 말했다.

    레임덕은 없다
    # 2010년 8월 9일 오전 11시 10분, 대통령실장 조순형이 서둘러 집무실로 들어섰는데 얼굴이 하얗게 굳어 있다.

    “대통령님, 일… 일본 총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순형답지 않게 더듬대면서 상기된 얼굴로 다가선 그가 말을 잇는다.

    “지금 동시통역을 대기시켰습니다. 전화 받으시지요.”

    그러고는 탁자 위의 전화기를 집어 이명박에게 내밀었다.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인다. 이명박의 얼굴도 상기됐다.

    “여보세요. 이명박입니다.”

    차분하게 말했을 때 나오토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곧 통역이 말했다.

    “예, 일본국 총리 간 나오토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이제는 통역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오토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 각하,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배상금을 적절한 방법으로 지불코자 4국 회담을 제의합니다.”

    이명박은 숨을 삼켰고 나오토의 말이 이어졌다.

    “배상금 규모와 지급 일정을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빠른 시일 안에 예비회담부터 개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오토와 통역의 목소리는 스피커로도 울리고 있어서 조순형도 다 듣는다. 이명박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곧 통보해드리지요.”

    그러고는 이명박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65년 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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