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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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양2’로 올림픽 2연패 착지”

한국 체조 첫 금메달 ‘도마의 신’ 양학선

  • 유재영 채널A 스포츠부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2-08-20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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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양2’로 올림픽 2연패 착지”
    양학선, 완벽한 금메달이었다. 한국 체조의 첫 쾌거. 그동안 한국 체조는 0.1점에 울고 0.01점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달랐다. 도마 종목은 신기술 완성도를 100% 끌어올린 양학선의 ‘솔로 무대’였다. 상대는 단지 양학선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흔들릴 틈만 노렸다. 결과적으론 헛수고였다.

    “어중간한 확신이 있었어요. 실감이 안 나고 아무 느낌이 없어요.”

    양학선이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체조 도마 시상식을 마친 뒤 기자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다. 금메달리스트치곤 꽤 자신 없는 소감이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을 믿었지만 마음이 불안했다는 표정이 읽혔다.

    사실 한국 남자 체조 도마는 올림픽에서 매번 불운에 시달렸다. 출발은 좋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박종훈이 마지막 시기에 극적인 10점 만점으로 한국 체조 사상 첫 동메달을 따냈던 것이다.

    그러나 전략 종목으로 삼은 뒤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1991과 92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던 유옥렬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신기술 ‘여1’ ‘여2’를 들고 나왔던 여홍철이 착지 실수로 은메달에 그치면서 묘한 징크스로 이어졌다. 이후 세 번의 올림픽에선 아예 메달 진입도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도마의 신’으로 성장한 양학선에 대한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김대원 대한체조협회 전무이사는 양학선 경기가 끝난 뒤 “아무도 모르는 얘기인데 양학선을 2년 동안 특별 관리했다”고 털어놨다.

    선수의 체계적인 기량 분석은 물론이고, 국제 체조계에 양학선을 알리는 데 행정력을 총동원한 것. 한국 체조의 금메달 숙원을 풀기 위한 양학선 관리는 사실상 수영 박태환급으로 조정됐다.

    7.4점 최고 난이도 신기술

    그 결과 여홍철의 기술 ‘여2’를 업그레이드한 ‘양1’에 대해 국제체조연맹이 최고 난이도 신기술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도마에서 최고 난이도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은 ‘특혜’ 아닌 ‘특혜’. 도마 점수는 난이도 점수와 실행 연기 점수를 합산하는데, 거의 난이도 점수에서 결판이 난다.

    ‘양1’에 부여된 난이도는 7.4점. 세계적 선수들이 대부분 난이도 6.6을 소화하고, 극소수가 7.0을 소화하는 게 요즘 추세다. 결국 양학선은 난이도 점수로 0.4~0.8점을 앞선 상황에서 연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양학선이 어지간한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양학선의 가능성이 입증됐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90% 이상 금메달을 기대했다. 그런 체조계의 믿음이 양학선에겐 부담으로 다가온 건 맞다. 그도 사람이니까.

    올림픽을 앞두고 양학선을 심리적으로 흔든 변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마를 짚을 때 탄성을 주는 스프링에 대한 감각까지 세밀하게 느낄 정도로 예민해졌다. 경기 이틀 전에는 불길한 꿈까지 꿨다.

    “꿈에서 제가 경기를 했는데, 몇 등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요. 경기 끝나고 태릉선수촌에서 선배들이 메달을 못 땄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그 순간 꿈을 꾸면서도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금메달 시상식을 마친 뒤 도핑 검사실로 들어간 양학선은 두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때까지 극도의 긴장감이 이어질 정도로 압박감은 컸다.

    8명이 벌이는 올림픽 체조 도마 결승. 마지막 순서였던 양학선은 앞 선수들의 경기를 보지 않았다. 여섯 번째 선수가 등장할 때 비로소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감 속에서도 유일한 상대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착지에서 실수하지 않는 이미지만 머릿속에 반복해 그렸다. 1차 시기에 ‘양1’을 선택했다. 전광판에서 난이도 7.4가 나오자 관중석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 ‘양1’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선수가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카드를 꺼냈다. 양학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앞 선수들이 잘하라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응원했어요. 그래야 제 기술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더 잘됐다고 생각했죠.”

    ‘양1’의 도약. 앞으로 돌아 세 바퀴 몸을 비틀면서 올라가는 정점의 높이는 연습 때 이상이었다.

    두 걸음 앞으로 나간 착지가 아쉬울 뿐 완벽한 연기였다.

    “손을 짚었는데 몸이 ‘깃털’이더라고요. 몸이 너무 가벼워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아,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청난 훈련량이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는 줄도 모르고, 경기에 몰입하다 착지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것.

    엄청난 연기였다. 김대원 전무이사는 “도마를 짚을 때 손이 정상 위치에서 앞으로 좀 더 나갔다. 그런데 높이와 탄력은 지금까지 본 연기 중 최상이었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손이 더 나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을 텐데,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몸이 ‘깃털’ 너무 가벼워 놀라”

    2차 시기 난이도 7.0의 스카라트리플. ‘양1’ 이전에 피나는 훈련을 해왔던 기술이라 그는 다시 도마에 몸을 맡겼다.

    완벽한 높이에 이은 완벽한 착지. 점수를 계산할 필요 없이 7명의 다른 국가 선수들은 양학선에게 박수를 보냈다. 양학선 자신에게는 2차 시기가 더 감동적이었다.

    “공중에 떴다 내려오니까 발이 닿는 느낌만 들었어요. 100% 구현됐어요.”

    도핑 검사까지 끝내고 나서야 양학선은 조금 ‘이성’을 찾았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던 부모가 그제야 생각났다.

    “아빠가 약주 한잔하고 계실 것 같네요.”

    부모가 보내준 복분자 맛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물 대신 마시는 복분자, 지금 마시고 싶어요(웃음).”

    양학선이 감동에 젖어들 무렵 다시 이성을 찾아주고 싶었다. “금메달에 어떤 자극을 받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미 결승 도약에서 4년 후 올림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 ‘양2’(양1보다 반 바퀴를 더 비트는 기술, 총 세 바퀴 반)를 뛸 거예요. 반 바퀴를 더 트는 연습을 하다 발목을 다쳤는데 앞으로 룰이 바뀌는 걸 보고 ‘양2’에 도전할 겁니다.”

    양학선의 꿈은 아직 공중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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