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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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골프홀릭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왕언니’

만 41세에 일본 대회 우승한 강수연

  • 이사부 골프 칼럼니스트 saboolee@gmail.com

    입력2017-06-02 17: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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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추어 선수의 프로대회 우승을 최근에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1990년대는 달랐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에서 아마추어, 정확히 말해 주니어가 우승하는 모습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아마추어가 프로 언니들과 경쟁을 벌여 우승한 경우는 모두 30차례다. 이 중 21차례가 90년대에 나왔다. 아마추어 시절 가장 많이 프로 언니들을 울린 주인공은 박세리였다. 그리고 강수연, 김미현도 종종 투어에서 정상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박세리와 강수연, 김미현, 한희원 등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진출 1세대는 모두 1~2년 터울이다. 이들은 초교와 중고교를 거치며 각종 대회에서 우승 레이스를 펼쳤다. 프로 데뷔 후 박세리가 먼저 LPGA투어에 진출했고, 뒤를 이어 모두 미국으로 향했다. 이들의 경쟁은 이어졌고,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이 LPGA투어를 ‘접수’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모두 현역에서 은퇴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한 명이 5월 28일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투어에서 우승했다. 리조트트러스트레이디스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일본에서만 25승을 거둔 쟁쟁한 후배 전미정을 제쳤다. 바로 강수연이다. 1976년생, 만 41세다.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현역으로 뛰는 한국 여자골퍼 가운데 최연장자다. 그 나이에 활동하는 것만도 놀랍다. 거기에 우승까지 했으니 대단하다는 표현밖에 할 말이 없다.

    강수연의 타고난 골프 자질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1년 아래인 박세리보다 천부적 감각이 뛰어나다. 그 때문에 강수연이 어릴 때는 박세리, 김미현보다 연습을 덜하고도 항상 그들과 우승을 다툴 수 있었다.

    박세리, 김미현 등은 하루에 공을 수천 개씩 치는 엄청난 노력으로 자신을 만들었다. 하지만 강수연은 달랐다. 물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골프 외 다른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외모에 신경 썼고, 그 당시 유행하던 춤 오락기 DDR나 인터넷 채팅도 좋아했다. ‘정말 무서운’ 아버지에게 엄청 혼나면서도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대회에 나갈 때는 물론, 연습장에 갈 때도  화장을 했다. 그럴 시간에 공이라도 한 개 더 치라는 핀잔도 많이 받았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프로에 입문해서는 패셔니스타로 주목받았다. 지금이야 패션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필드가 화려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패션이나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국 여자골프의 패션은 강수연 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까.

    지금은 은퇴한 한 선수는 강수연의 우승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프로생활 할 때 놀 거 다 놀고, 우승도 간간이 하는 걸 보면 ‘조금만 더 연습하면 진짜 세계 제패도 가능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가 어릴 적 몸을 혹사하지 않았던 것도 조카뻘 되는 어린 선수들과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기틀이 됐다. 그동안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수년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났다. 다들 곧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며 다시 필드로 나왔다.

    골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것만 같던 타이거 우즈가 지금은 필드에 나와 공을 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처지가 됐다. 직접적 원인은 허리 부상이지만 결국 그 부상은 어릴 때부터 몸을 혹사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릴 적 과도한 훈련으로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라지는 선수가 많다.

    어릴 때부터 스윙 머신이 되려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놀기만 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나이에 맞게 공부도 하고 즐길 것도 즐기면서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한다. 쉽지 않다. 쉬우면 누군들 못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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