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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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에 ‘북핵 문제 협력하라’는 성동격서

美,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아세안에 대한 영향력 유지 목적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6-02 17: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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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베트남명 쯔엉사 군도·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에 있는 미스치프 환초(중국명 메이지자오·베트남명 다빈깐·필리핀명 판가니반)는 썰물 때만 수면으로 드러나는 산호초였다. 이제 미스치프 환초는 ‘섬’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미스치프 환초와 주변 바다를 콘크리트 등으로 메워 인공섬으로 만들었다. 미스치프 환초의 현재 넓이는 5.58km2. 이 섬에는 길이 2.6km의 활주로와 격납고가 있고, 대형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항구도 있다. 중국은 이 섬에 인민해방군 병력을 상주시키고 있으며, 레이더와 통신 시설 및 대공포와 지대공미사일까지 배치했다. 바다 위에 요새가 만들어진 셈이다.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250km 떨어진 미스치프 환초가  1000km나 떨어진 중국의 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남중국해에는 250여 개의 작은 섬, 산호초, 암초, 모래톱 등이 크게 4개 제도로 묶여 산재해 있다. 4개 제도 가운데 영유권 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은 스프래틀리 제도와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다. 스프래틀리 제도에는 175개의 작은 섬, 암초, 산호초, 모래톱이 있다. 스프래틀리 제도의 섬 가운데 베트남 24개, 중국 10개, 필리핀 7개, 말레이시아 6개, 대만이 1개를 실효지배하고 있다.

    파라셀 제도에도 130여 개의 작은 섬, 산호초, 암초, 모래톱이 있다. 중국은 파라셀 제도 전체를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베트남과 대만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스프래틀리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고자 미스치프 환초처럼 암초와 산호초를 인공섬 7개로 만들었다. 휴즈 암초(중국명 둥먼자오·베트남명 다 뚜 응이어)는 축구 경기장 14배 크기의 인공섬이 됐다. 항구와 헬리콥터 이착륙장 등이 건설됐다. 대형 레이더가 설치된 9층 건물도 세워졌다. 미사일과 대공포가 배치됐고, 격납고도 있다. 피어리 크로스 암초(중국명 융수자오·베트남명 다쯔텁·필리핀명 카기틴간)도 마찬가지다. 높이가 수면 위로 60cm 정도만 드러났던 피어리 크로스 암초에는 길이 3km의 활주로와 대형 격납고 4개가 있다. 격납고들은 전투기 24대를 계류할 수 있다. 또 5000t급 함정과 유조선이 정박할 수 있는 규모의 항구도 조성됐다.  



    전략 요충지, 남중국해

    사우스 존슨 암초(중국명 츠과자오·베트남명 다깍마·필리핀명 마비니)에도 부두와 비행장 등이 건설됐다. 이 섬의 인근 해역은 1988년 중국과 베트남이 해전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전투로 베트남 선박 2척이 침몰하고 베트남 병사 70여 명이 사망했다. 또 수비 환초(중국명 주비자오·베트남명 다쑤비·필리핀명 자모라), 쿠아테론 환초(중국명 화양자오·베트남명 다 차우비엔·필리핀명 칼데론), 게이븐 암초(중국명 난쉰자오·베트남명 다가벤·필리핀명 부르고스) 등도 인공섬으로 바뀌었다.



    중국 정부가 인공섬을 만든 이유는 무엇보다 남중국해가 전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처지에선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계획의 핵심인 남중국해를 반드시 자국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남중국해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중요한 해상 루트로, 전 세계 물동량의 25%가 통과한다.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대만이 수입하는 석유 중 90%가 이곳을 지나간다.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2도 남중국해를 경유한다. 또 남중국해에는 석유 2130억 배럴, 천연가스 3조8000억m3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타는 얼음’이라고 부르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도 대량 매장돼 있다.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원이다. 남중국해에는 중국이 130년간 소비할 수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5월 10일 가스 하이드레이트 시험추출에 성공했다.

    중국은 이처럼 중요한 남중국해를 자국의 바다로 만들고자 인공섬들을 군사기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섬들에 군사기지를 구축할 경우 남중국해를 무력으로 실효지배할 수 있다. 인공섬들이 사실상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력충돌이 벌어질 때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할 경우에도 전투기 등을 출격시킬 수 있다. 중국은 앞으로 3년 내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중국은 지난해 7월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도 무시해왔다. PCA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인공섬들도 모두 불법이라고 만장일치로 선고했다. 중국은 소송을 제기한 필리핀은 물론,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이 자국에게 PCA 판결을 이행하라는 말조차 못하도록 강력한 압박과 설득 공세를 펴왔다.



    “미국의 남중국해 정책 바뀐 것 없다”

    중국의 이런 의도를 가로막고 나선 국가는 미국이다.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듀이호는 5월 24일 미스치프 환초에서 12해리(약 22.2km) 이내 해역을 항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작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시절인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실시됐다. 항행의 자유 작전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일종의 무력시위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 해군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재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 당국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협조를 얻기 위한 ‘빅딜’로 남중국해에서의 무력시위를 자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재개한 것은 상당한 함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북 제재 강화를 끌어내고자 ‘압박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수전 손턴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바뀐 것이 전혀 없다”면서 “중국은 북핵 문제가 미국의 긴급한 과제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중국에 대한 압박이라고 볼 수 있다. 앤드루 시어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미국은 북핵 문제가 중요하더라도 중국의 협력만 기대하면서까지 남중국해를 양보할 수 없다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의 도발을 하지 않는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결의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또 다른 목적은 아세안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아세안에서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을 앞세우면서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세안 회원국에게 ‘힘의 과시’를 통해 중국의 도전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을 수 있다. 미국이 최근 베트남 측에 7번째 해양 경비선을 전달하고, 미국과 일본의 함정들이 베트남 깜라인 만에 동시에 기항한 것도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제스처다. 아무튼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패권을 강화하고자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 인공섬으로 만든 미스치프 환초(왼쪽). 중국이 세워놓은, 스프래틀리 제도가 자국 땅이라고 쓰인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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