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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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귀농하자고? 너나 가서 사세요

중년 여성의 꿈

  • 입력2012-06-11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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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귀농하자고? 너나 가서 사세요

    ‘귀부인의 아침’, 라브랭스, 1776년, 종이에 구아슈, 25×20,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소장.

    퇴직을 앞둔 중년 남자의 소망은 강과 산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아침엔 새소리에 잠을 깨고, 낮엔 뒷마당에서 채소밭을 가꾸며, 저녁엔 아내와 커피를 마시면서 노을 지는 강이나 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중년 여자는 다르다. 그림 같은 집에서 적당히 노동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사는 것이다. 굳이 교외로 나갈 것도 없이 도심에 살면서 살림은 가사도우미에게 맡기고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어 한다.

    중년 여자의 꿈, 귀부인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 니콜라스 라브랭스(1737~1807)의 ‘귀부인의 아침’이다. 하녀가 귀부인이 잠옷 벗는 것을 돕고 있다. 귀부인의 발 받침대 옆에는 신발이 뒤집어져 있고 의자에는 황금색 옷이 흐트러져 있다.

    녹색의 커튼 한쪽이 촛대에 걸쳐진 것은 아침이 밝았음을 나타내며 촛불이 켜진 것은 귀부인이 막 잠에서 깼음을 짐작게 한다. 의자 옆에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황금색 드레스와 늘어진 허리띠는 귀부인의 방탕한 생활을 상징하며, 뒤집어진 신발은 섹스를 암시한다. 신발은 전통적으로 풍속화에서 여자의 음부를 상징했다.

    여자 누드를 조각한 탁자 위 은촛대는 사랑을 의미한다. 탁자 옆 청색 도자기 그릇은 세숫대야다. 귀부인이 씻기 전임을 나타낸다. 탁자에 놓인 낡은 표지의 책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귀부인의 방탕한 생활이 오래 지속됐음을 암시한다. 귀부인이 하녀의 도움으로 옷을 벗는 것은 술에 취해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작품에서 하녀의 단정한 옷차림은 잠옷을 머리 위로 올린 귀부인의 흐트러진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상류층의 음란한 생활을 강조한다. 라브랭스의 그림은 귀족의 대담함, 방탕함, 자유로움, 음란함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중년 여자는 그림 같은 집에서 남편과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남편이 피부 미용에 쓸 돈을 대주는 것을 더 행복하게 여긴다. 중년 여자의 피부는 남편의 경제력을 가늠하는 척도다. 능력 있는 남편을 둔 여자는 아기 피부를 가졌고, 가난한 남편을 둔 여자의 피부는 자갈밭이다. 아기 같은 피부는 연간 1억 원 이상 비용이 들어가는 전문 피부미용 숍에서 관리하고, 자갈밭 피부는 셀프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중년 여자는 고급 피부미용 숍에서 관리받기를 원한다.

    함께 귀농하자고? 너나 가서 사세요

    (왼쪽)‘욕실 안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풍경-부분’, 퐁상, 1883년, 캔버스에 유채, 127×210,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 소장. (오른쪽)‘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초상’, 작가 미상, 1907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피부에 신경 쓰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드바트 퐁상(1847~1913)의 ‘욕실 안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풍경’이다. 흑인 하녀가 욕실 한편에 마련된 대리석 침상에 누운 백인 여자의 팔을 마사지하고 있다. 백인 여자의 풍만한 엉덩이가 잘록한 허리를 돋보이게 하며 군살 없는 몸매에서 젊은 여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 베개 아래로 늘어진 머리카락과 흑인 하녀가 그의 팔을 들고 있는 모습은 여자가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음을 암시한다. 엉덩이 위쪽 붉은 피부가 마사지를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흑인 여자는 벌거벗은 채 누운 백인 여자의 피부와 대비를 이뤄 에로티시즘을 강조한다. 작가는 당시 유행하던 이국적 풍경을 연출하려고 욕실을 장식하는 푸른색 타일과 흑인 여자의 두건에 오리엔탈 문양을 그려 넣었다.

    중년 여자는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보다 커피잔을 든 손가락에서 빛나는 커다란 반지를 보며 더 행복해한다. 여자에게 보석은 사랑의 척도다.

    보석에 대한 중년 여자의 로망을 그린 작품이 작가 미상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초상’이다.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아라를 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가 우아하게 서 있다. 벌어진 외투 사이로 진주 목걸이가 길게 늘어져 있다.

    풍만한 흰색 모피 깃이 단정하게 늘어진 진주 목걸이와 대비를 이루며 황후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한다. 진주 목걸이 중간의 청색 보석은 사파이어로, 목걸이의 높은 가치를 나타낸다. 흰색 모피로 장식한 외투는 황후가 직접 디자인한 옷이다.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로, 어머니가 일찍 죽어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연애결혼을 했으며 결혼 후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이 작품에서 황후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것은 그의 성격을 나타낸다. 황후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공식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티아라와 목걸이, 그리고 반지는 이 작품이 그의 공식 초상화임을 나타낸다.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보석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자금이 필요해진 볼셰비키가 팔았다.

    중년 여자는 귀농을 싫어한다. 여자는 손톱에 때 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을 품은 집은 늙은 남자에겐 놀이터일지 몰라도, 여자에겐 공포의 집이다. 늙어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아내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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