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5

2012.04.30

비즈니스 파트너는 ‘싼티’를 한눈에 파악

패션

  • 입력2012-04-30 10: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비즈니스 파트너는 ‘싼티’를 한눈에 파악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뒤러, 1500년, 목판에 유채, 67×48,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인상이다. 사람은 대부분 첫인상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한다. 상대방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 이 승부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힘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단 좋은 인상으로 비즈니스를 성사시켜놓아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잘생긴 얼굴이 아니다. 패션이다. 옷 잘 입은 거지가 잘 얻어먹는다는 말과 같은 이치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부유함을 드러내라. 비즈니스는 뻥으로 시작해 성실함으로 마감한다. 누구나 부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다.

    최고급 패션으로 자신이 성공한 사람임을 과시하는 작품이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이다. 모피 코트를 입은 뒤러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모피 코트는 16세기에도 부유한 사람이 아니면 입을 수 없었다. 그러니 뒤러가 입은 모피 코트는 그가 성공한 화가임을 나타낸다.

    얼굴은 가르마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다. 얼굴과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가 정삼각형을 이루는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 기법이다. 6세기경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 초상화 기법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좌우 대칭으로 표현함으로써 완벽한 신의 형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짧게 자른 턱수염 또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뒤러가 예수 그리스도 초상화 기법으로 자신을 표현한 이유는 신을 닮은 인간은 화가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최초의 창시자라면 화가는 제2의 창조자이자 신의 모방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뒤러는 그림의 왼쪽 어두운 배경에 ‘1500년’이라는 제작 연도와 자신의 이름 이니셜 ‘AD’를 적어놓았다. 오른쪽 배경에는 라틴어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남겼다.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 나이에 불변의 색채로 나 자신을 이렇게 그렸다.” 뒤러는 그림과 함께 글로써 자기 모습이 영원히 남길 바랐던 것이다.

    비즈니스는 눈속임으로 시작한다. 야망을 실현하고 싶다면 최고급 패션으로 무장해야 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을 만나려면 부자처럼 입어야 한다. 부자는 거지와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파트너는 ‘싼티’를 한눈에 파악

    (왼쪽)‘야망을 품은 여인’ 티소, 1883∼1885년, 캔버스에 유채, 56×40, 뉴욕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 소장. (오른쪽)‘검정의 조화-레이드 뮤즈의 초상’ 휘슬러, 1881년, 캔버스에 유채, 194×130, 호놀룰루 예술 아카데미 소장.

    야망을 실현하려고 패션에 신경 쓴 여인을 그린 작품이 제임스 티소(1836~1902)의 ‘야망을 품은 여인’이다. 화려한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연미복을 입은 은발 신사의 팔짱을 끼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사 옆에 있는 나무가 파티장 입구임을 나타낸다.

    멀리 불이 환하게 켜진 파티장 안에서 많은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파티 주최자가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파티를 누가 주최하느냐에 따라 참석자 수에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이 주최하는 파티는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핑크빛 드레스와 부채는 시선을 여인에게 집중시킨다. 아랫단의 화려한 레이스 장식은 여인의 몸 곡선을 드러내며 드레스 허리 부분의 검은색은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면서 여인의 날씬한 허리를 강조한다.

    티소는 이 작품을 통해 19세기 프랑스 파리 상류층의 파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여인이 은발 신사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 모습은 새로운 후원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야망을 지녔다는 것을 암시한다. 당시 상류층 인사가 젊은 여인을 대동하고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관례였다. 그리고 젊은 여인은 파티에서 새로운 후원자를 만나려고 한껏 치장했다. 여인이 노신사와 함께 있는 것은 그가 고급 매춘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즈니스에서 ‘싼티’ 패션은 자기 능력을 깎아내린다. 포장지가 멋있으면 내용물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자신의 과거를 숨긴 여인을 그린 작품이 제임스 휘슬러(1834~1903)의 ‘검정의 조화-레이드 뮤즈의 초상’이다. 레이드 뮤즈가 검은색 이브닝드레스 위에 흰색의 모피 코트를 두르고 우아하게 서 있다.

    뮤즈는 천민 출신으로 런던 사교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 준(準)남작인 헨리 브루스와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런던 상류층의 사교계로 진출했지만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뮤즈는 그럴수록 자기 이미지를 철저히 만들어갔다.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고급 의상은 물론 예술품도 사 모았다. 특히 보석이 자기 이미지를 좋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작품에서 그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것은 티아라다. 화려하게 빛나는 티아라가 뮤즈의 아름다운 얼굴을 돋보이게 한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아라는 빅토리아 여왕 후기부터 상류층 모임이나 무도회에 참석하는 여인에게 인기를 모았다.

    19세기 영국의 식민정책으로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한 이후 영국인의 보석 구입이 쉬워졌고, 신흥부자는 자기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보석을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뮤즈가 입은 검은색 드레스는 요즘 각광받는 디자인이지만 당시에는 유행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에는 여성미를 강조하려고 프릴 장식이 많은 드레스를 입었으며, 드레스 안에는 코르셋을 입어 각선미가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뮤즈는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아도 몸매가 드러나는 디자인의 옷을 선호했다.

    비즈니스에서 옷은 갑옷이다. 상대방은 매의 눈을 가졌다. 사소한 것 하나가 당신을 말해준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