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5

2012.04.30

엄마 마음 불편한 ‘카드’

출산 및 보육 보조금 받는 신용카드 상술에 이용돼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4-30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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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마음 불편한 ‘카드’
    두 살, 다섯 살 아이의 엄마로 셋째를 임신 중인 김재영(36) 씨는 정부 출산 및 보육 보조금을 받으려고 네 달 사이에 신용카드 2장과 체크카드 1장을 만들었다. 임신 중 출산보조금을 받는 ‘고운맘카드’와 둘째 어린이집 보육비를 지원받는 ‘아이사랑카드’, 그리고 큰아들의 사립 유치원비를 보조받는 ‘아이즐거운카드’다. 김씨는 “요즘 카드비가 부담돼 개인 신용카드를 다 없앴는데 국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하니 당혹스럽다”면서 “카드가 있으면 자연스레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임신부가 정부의 출산지원금 50만 원(쌍둥이 70만 원)을 받으려면 KB국민카드나 신한카드 가운데 한 곳에서 고운맘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만 5세 미만 아이의 어린이집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KB국민카드, 우리카드, 하나SK카드 가운데 한 곳에서 아이사랑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만 5세 아이의 보육비를 지원받으려면 농협이나 부산은행에서 아이즐거운카드 체크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카드 발급 경쟁, 현금도 제공

    국내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시점에서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엄마들은 불만이다. 특히 출산 전에는 고운맘카드를 만들고 출산 후에는 아이사랑카드를 만드니, 한 아이를 위해 1년에 신용카드를 2개나 만들어야 하는 상황. 카드 발급 과정이 번거로울뿐더러 1년 사이에 신용카드를 바꿔 써야 해 카드사가 제공하는 혜택이나 포인트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는 “고운맘카드 운용사와 아이사랑카드 운용사가 달라 카드 연계가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발급받아도 되지만, 카드사는 자사에 이득이 더 많은 신용카드를 권한다. 임신 8개월의 장모(30) 씨는 “올 1월 은행에서 고운맘카드 체크카드를 만들려 했지만 담당 직원이 ‘체크카드는 혜택이 적고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며 신용카드 발급을 강하게 권했다”고 전했다.



    카드사는 관련 카드에 대해 병·의원, 유아용품, 놀이공원 할인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데 이는 해당 신용카드로 매달 20만~30만 원 이상 결제한 고객만 대상으로 한다. 신한카드는 4월 고운맘카드 신용카드 신규고객을 대상으로 100만 원대 스토케 유모차 3대를 건 경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경품뿐 아니라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30만 원 이상 사용한 고객에게 5000원을 제공한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고운맘카드나 아이사랑카드 신용카드 발급과 동시에 현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임신 5개월의 김모(26) 씨는 4월 2일 신한카드 모집인에게 고운맘카드 신용카드를 만든 대가로 현금 5만 원과 아기 손수건 20장(2만 원 상당)을 받았다. 그는 “4월 1일부터 보조금이 4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오른다기에 일부러 기다렸다 가입했다”며 “체크카드를 만들면 사은품이 없다고 해서 일부러 신용카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모집인은 현금뿐 아니라 아기용품, 백화점 상품권 등을 경품으로 내건다. ‘레몬테라스’ ‘맘스홀릭’ 등 예비 엄마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카페에는 “고운맘카드, 현금 받고 만드실 분?”이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예비 엄마들 사이에서 “고운맘카드를 은행에 가서 만드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아이사랑카드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고운맘카드는 본인이나 가족대리인이 전담 금융기관에 가서 직접 신청해야 한다. 모집인이 신분증 사본과 신청서를 받아 신청하고 사은품을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경고했다. 보건복지부의 구두경고에 따라 카드사들은 4월 13일부터 모집인을 통한 고운맘카드 신청을 금지했다.

    하지만 고운맘카드, 아이사랑카드 발급을 이용한 카드 모집인의 불법 마케팅은 멈추지 않는다. 4월 16일 한 신한카드 모집인은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소개를 통해 모집한 예비 엄마들에게 ‘고운맘카드를 사은품 주고 만들어준다’고 먼저 말하고, 고운맘카드는 직접 만들게 하는 대신 다른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한 뒤 현금 5만 원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고운맘카드나 아이사랑카드를 고객 모집의 ‘미끼’로 이용하는 것.

    바우처 제공 방식 근본적 개선 필요

    즉시 발급해주는 체크카드와 달리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면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 이 때문에 꼭 필요한 혜택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13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맞벌이주부 이모(31) 씨는 3월 9일 아이사랑 신용카드를 신청했지만 4월 5일에서야 받았다. 은행에 항의했지만 “카드 신청 인원이 갑자기 늘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대답만 들었다.

    오래 기다려 카드를 받았지만 바로 쓸 수도 없었다. 카드는 ‘선발급’됐지만 해당 구청에서 그를 지원 대상으로 확정하지 않은 것. 결국 이씨는 4월 초 본인 돈으로 3, 4월 보육비 80여만 원을 결제했다. 해당 주민센터에 문의하자 “3월 보육료 신청자가 너무 많아 카드 발급과 대상자 신청 과정이 오래 걸렸다”면서 “보육료는 신청일을 기준으로 소급해 지원하므로 부모가 카드를 늦게 받았더라도 피해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어린아이를 맡기는 부모는 애가 탈 노릇이다. 이씨는 “3월에는 카드가 나올 줄 알고 어린이집에 3월 보육비를 3월 말에 결제하겠다고 얘기해놨는데 카드 발급이 늦었을뿐더러 아직도 보육비를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보육비를 안 내고 아이를 보내려니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를 ‘공짜로 다니는 아이’ 취급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며 “시스템도 갖춰놓지 않고 작년 말부터 ‘0세부터 2세까지 어린이집 보육료 공짜’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한 정부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우처 제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기존에 부모가 보유한 신용카드를 보건복지부에 등록해 그 카드에 바로 전자 바우처를 제공하거나, 최소한 아이사랑카드와 고운맘카드를 연속해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 그럼 불필요한 카드 발급을 막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전자 바우처 제도를 도입할 때 기존 신용카드 시스템을 이용해야 별도의 카드 발급 비용이나 전용 단말기 설치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판단해 현재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라며 “고운맘카드 등을 이용한 불법 마케팅을 근절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18세 미만 산모에게 제공하는 ‘맘편한카드’는 우리은행에서 신청하지만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기능은 없다. 올해 말부터 노인 돌봄, 장애인 활동 지원 등 사회서비스 부문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가 직접 카드를 발급하는 형식으로 변환할 예정이다. 세 살 자녀를 둔 강미란(33) 씨는 “비교적 소수가 이용하는 사회서비스카드는 정부가 직접 발급해주면서 다수의 엄마가 사용하는 바우처 카드는 신용카드 형식을 고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누가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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