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0

..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고즈넉한 시골 정경과 어우러진 비현실적 아름다움

스위트피의 제주 하도리 공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05-30 16:44:3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제주 동북쪽 끝단에 하도리라는 마을이 있다. 철새 도래지로, 겨울이 되면 새 수만 마리가 호수 갈대밭에 모인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제주 곳곳이 외지인이 주도한 개발 붐에 휩싸여 있지만 하도리는 무풍지대다. 전통 제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적하디 한적한 마을이다.

    담배 한 갑 사려면 차 타고 5분은 나가야 하는 이 조용한 마을의 초여름 풍경은 더없이 고즈넉했다. 제비가 우짖으며 하늘 곳곳을 노닐었다. 주민들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2차선 도로 곳곳에 갓 수확한 마늘과 바다에서 따온 모자반을 말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새소리 말고는 어떤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은 호수 저편에 우두커니 있는 토끼섬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이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음악이 덮은 날이 있다. 5월 20일, 카페 ‘하도리 가는 길’에서 스위트피의 작은 공연이 열렸다.

    스위트피는 델리스파이스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1997년 ‘차우차우’를 히트시키며 데뷔한 델리스파이스가 언니네 이발관과 더불어 한국 모던록의 초석을 만들었다면, 김민규가 밴드로는 하기 힘든 음악을 하겠다며 99년 ‘달에서의 9년’으로 활동한 스위트피는 인디 음악계의 한 축이 된 어쿠스틱 기반 싱어송라이터의 시발점 같은 존재였다. 솔로 프로젝트 그룹을 하며 본명이나 예명 대신 팀명으로 쓰일 법한 이름을 선택한 것도 루시드폴, 토마스 쿡 등 다른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월 나온 ‘그걸로 됐어’는 스위트피의 네 번째 앨범이자 10년 만의 신작이다. 사전에 어떤 홍보도 없이 조용히 등장했다. 서울에서는 공연을 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그리웠던지라, 제주에서의 이 깜짝 공연을 보려고 항공권을 끊었다.

    ‘하도리 가는 길’은 피아니스트 임인건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다. 시골 마을 한복판에 있는, 농가를 개조한 공간이다. 수용 인원 약 30명인 이 공간에서 임인건은 종종 서울의 음악가와 함께 작은 공연을 하곤 한다. 스위트피 공연도 그렇게 열렸다. 김민규가 기타와 노래를, 임인건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한 이원술이 이 색다른 편성의 공연을 위해 편곡과 채보를 맡았다.
    한 시간 반 남짓 열린 이날 공연에서 김민규는 ‘달빛과 춤을’ ‘북극곰’ 등 새 앨범의 수록곡을 최초로 들려줬다.



    그가 만들고 이소라가 불렀던 ‘별’, 그리고 델리스파이스의 대표적 노래인 ‘차우차우’도 재즈 버전으로 편곡해 연주했다. 스위트피의 공연을 본 지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 같은 그의 목소리와 멜로디는 세월을 무색게 했다. 해가 서쪽으로 향할 무렵 시작된 공연은 어둠이 드리워지고 마침내 칠흑처럼 까맣게 밤이 깔렸을 때 끝났다.

    이 시간을 위해 부러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었다. 제주시에서 한 시간 반 가까이 차를 타고 달려온 도민들이 있었다. 하도리 이장을 비롯한 동네 주민들이 있었다. 무대 뒤에 있는 통창에서는 동네 꼬마들이 개구진 표정으로 음악이 흐르는 시간을 기웃거렸다.

    서울에서 봤더라면 딱히 특별할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에서조차 가장 고즈넉한, 황량하기까지 한 시골 마을에서 보고 듣는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사무쳤다. 더위를 밀어내고 끼어든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없었더라면, 가로등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컴컴해져 가는 밤하늘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사무침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기다리게 했다. 철새들이 여기 호수를 찾을 무렵, 이곳에서 다시 스위트피의 공연을 볼 수 있기 바란다. 기꺼이 다시 항공권을 끊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