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9

2012.03.19

‘라면전쟁’에 오너 일가만 포식

삼양과 팔도, 유통 일감 몰아주기 논란 속 하얀 국물이 돈 국물

  • 유현희 파이낸셜뉴스 생활과학부 기자 yhh1209@fnnews.com

    입력2012-03-19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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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전쟁’에 오너 일가만 포식

    하얀 국물 라면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농심 신라면.

    20년간 수많은 적의 침략에도 건재했던 철옹성이 있다. 심지어 이전에 성의 주인이던 이조차 성을 다시 빼앗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 철옹성도 3개 국가가 연대해 공격하자 적잖게 당황했다. 성벽 일부는 깨지고 그곳에 머물던 백성 중 더러는 성을 버리고 떠났다.

    대하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식품업계 화두가 된 신라면과 하얀 국물 라면의 모양새가 꼭 이렇다. 철옹성의 주인은 농심이요, 과거 이 성의 주인이었던 이는 삼양식품이다. 성을 떠난 백성은 소비자다.

    우지(牛脂) 파동 사건으로 라면시장의 절대강자였던 삼양식품이 몰락하면서 반사이익으로 1위 자리를 꿰찬 농심은 20년 만에 신라면과 너무도 다른 팔도의 꼬꼬면, 삼양식품의 나가사끼짬뽕, 오뚜기의 기스면 등 이른바 하얀 국물 라면에 밀려 고전했다. 시장점유율 70%대를 유지하던 농심은 60%대로 추락했을 뿐 아니라 대형마트의 라면 판매 브랜드 순위 10위권 내에 자사 브랜드가 7개 이상이던 것도 옛말이 됐다. 2~5위권에 나란히 하얀 국물 라면이 이름을 올리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 대형마트에서는 꼬꼬면이 신라면 판매점유율을 1%포인트 밑까지 추격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라면전쟁’은 소비자는 물론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진흙탕 싸움이 숨어 있으며, 이런 라면전쟁으로 오너 일가가 두둑한 주머니를 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신라면 제쳤다” 거짓말 발표



    삼양식품은 지난해 12월 나가사끼짬뽕의 판매량이 한 대형마트에서 신라면을 제쳤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5개 묶음 상품을 기준으로 판매량을 집계했기 때문에 실제 박스 판매량과 낱개 판매량이 누락된 것이다.

    농심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신라면 월 매출액은 31억 원으로 나가사끼짬뽕의 전체 매출액 18억 원의 두 배가량 된다며 삼양식품의 발표를 뒤집고 나선 것이다. 꼬꼬면을 출시한 팔도 역시 농심 측에 힘을 실어줬다. 팔도 측이 집계한 시장점유율상 나가사끼짬뽕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나가사끼짬뽕은 광고에서도 농심의 신경을 긁었다. 소매점 주인을 등장시킨 광고는 몇 년 만에 라면 매대의 가장 좋은 자리가 나가사끼짬뽕으로 바뀌었다며 신라면의 시대가 끝났음을 은연중에 암시했다.

    이 사건은 실제화하기도 했다. 농심이 라면 가격을 인상하자 소매점이 연대해 농심 제품 판매 거부에 나서면서 농심은 2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처음 하얀 국물 라면이 선풍적 인기를 얻을 때 ‘백일천하’로 끝날 것이라며 관조적 자세를 보였던 농심도 흑색선전에 비방성 있는 광고까지 나오자 결국 하얀 국물 제품인 후루룩칼국수를 내놨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하얀 국물 라면의 원조가 사리곰탕면이라는 군색한 변명까지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후루룩칼국수의 면은 건면으로 다른 하얀 국물 라면이 유탕면을 쓴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육수는 꼬꼬면과 유사한 닭육수 베이스에 돼지뼈를 추가했다. 경쟁사를 의식해 이를 제품에 반영한 것이다.

    올해 1월 이후 하얀 국물 라면의 판매량은 다소 주춤했다. 월 최고 2000만 개 이상 판매되던 나가사끼짬뽕과 꼬꼬면은 1000만 개 중반대까지 판매량이 하락했다. 반면 후루룩칼국수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출시 첫 달에만 500만 개 판매고를 올렸다. 농심의 하얀 국물 제품 출시로 농심과 2~4위 기업의 경쟁구도는 다시 다자대결 국면을 맞았다.

    ‘라면전쟁’에 오너 일가만 포식

    지난해 꼬꼬면으로 시작한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은 나가사끼짬뽕, 기스면 출시로 이어졌다.

    라면 팔릴수록 주머니가 두둑

    하얀 국물 라면 1~2위 기업인 삼양식품과 팔도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라면이 팔릴수록 오너 일가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기업구조를 갖춘 것. 삼양식품의 라면은 전량 자회사인 삼양농수산을 통해 유통한다. 농심이나 오뚜기가 마트와 직거래하는 것과 달리 유통단계를 하나 추가한 셈이다.

    삼양식품은 왜 직거래 대신 삼양농수산을 통해 판매할까. 답을 찾으려면 삼양농수산 지분의 90%가량을 전인장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보유한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2010년도 삼양농수산의 결산보고서를 살펴보면 삼양식품에 각종 식자재를 납품해 발생한 매출 161억 원, 라면과 스낵을 가져다 판매한 299억 원 등을 합쳐 총 46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실상 이 회사 매출의 90% 이상이 삼양식품에서 발생한다.

    팔도는 올해부터 라면과 음료사업을 떼어내 한국야쿠르트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팔도의 독립을 주요 사업의 분리로만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의 외아들인 윤호중 전무가 대주주인 삼영시스템이 팔도와 합병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삼영시스템은 지난해까지 한국야쿠르트의 주요 주주일 뿐 아니라 팔도, 비락 등 한국야쿠르트 주요 자회사의 최대 주주였다. 삼영시스템은 용기 제조회사로, 윤 전무가 지분을 100% 보유했다. 이 회사의 2010년 매출 중 90%에 가까운 1100억 원이 모두 한국야쿠르트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삼영시스템은 합병 이전까지 한국야쿠르트와 비락을 통해 달성한 매출이 대부분이어서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하얀 국물 라면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팔도도, 삼양식품도 아닌 셈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라면 하나를 살 때마다 일정액이 오너 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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