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5

2012.02.20

“애들만 기저귀 차느냐” 역발상 경영의 일본

노인 중심 경제 시대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2-20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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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만 기저귀 차느냐” 역발상 경영의 일본

    일본 야마하 본사에 있는 방문객센터.

    “출산율이 떨어지면 기저귀가 잘 팔릴까?”

    만약 ‘잘 팔릴 리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린이 중심의 경제관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노인 중심이다. 일반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면 자연히 기저귀 판매량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줄어든 수요를 노인이 채운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요실금이나 배뇨 이상으로 기저귀가 필요한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데다, 노인 요양시설이 확산되면서 단체 주문도 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자(2948만 명) 비중이 전체 인구(1억2805명)의 23%에 달해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이웃 일본은 성인용 기저귀 시장 규모가 2조 원에 육박한다. 이미 2010년 기저귀 시장에서 성인용 규모가 유아용을 넘어선 상태다. 기저귀 시장만 놓고 보면 일본 경제는 어린이 중심에서 노인 중심으로 바뀐 셈이다.

    이와 같은 경제 중심의 이동을 정확히 읽어낸 회사가 일본 최대 생활용품 전문 업체 ‘유니참(Unicharm)’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로 통했던 것처럼, 일본에서는 ‘유니참=기저귀’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런 유니참이 위기에 빠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출산율 저하로 유아용 기저귀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회사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기저귀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회사 내부에서 기저귀 대신 생리용품이나 마스크, 물휴지 같은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을까.

    저출산의 습격에서 희망 발굴

    다카하라 다카히사 유니참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일본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한다는 점에 착안해 늘어나는 노인층을 겨냥한 새로운 기능성 기저귀 시장에 주목했다. 그에게는 ‘생리대가 여성을 해방시켰듯, 성인용 기저귀가 요실금으로 고통받는 노인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카하라 사장은 ‘애들만 기저귀 차느냐’라는 생각으로 성인용 기저귀 시장에 매진했고, 결국 대성공을 거두었다.



    2010년 말 일본 소비자연구원은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이 46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간 1000억 엔(1조4000억 원) 규모인 성인용 기저귀 시장에서 유니참의 시장점유율은 확고부동한 1위(40%)다. 2위 다이와제지보다 20%포인트나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어린이에서 노인으로 경제 중심축이 옮겨가는 것을 정확히 읽어낸 유니참은 절망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희망을 발굴한 셈이다.

    저출산의 습격을 받은 것은 유아용 기저귀 시장만이 아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아이들이 다룰 악기를 파는 업체도 매출이 하락한다. 일본의 출산율 저하로 위기에 처한 또 다른 회사가 세계적인 악기회사 야마하다.

    야마하는 1947년 악기 판로를 개척하려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음악교실을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아는 ‘야마하 음악교실’이다. 야마하의 전략은 적중했다. 당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카이(團塊·1947∼49년생) 세대가 태어나기 시작했고, 6·25전쟁을 기점으로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수요에 경제력이 뒷받침되면서 야마하 음악교실은 꾸준히 성장했고, 더불어 악기 판매량도 늘어났다.

    이런 야마하에 저출산, 고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1990년대 들어서다. 출산율 저하로 음악교실 수강생과 악기 수요가 크게 줄었다. 1993년 70만 명에 이르던 수강생이 2002년 50만 명으로 줄었다. 야마하는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

    이때 야마하가 주목한 것은 일본 직장인 사이에서 일어난 피아노 배우기 붐이다.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중년 직장인들이 어느 정도 생활에 안정을 찾자 뒤늦게나마 어릴 적 꿈을 실현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중년 남성 중에는 “딸 결혼식 때 결혼행진곡을 연주해주고 싶어 피아노를 배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요구를 간파한 야마하는 악기를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 타깃을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바꿨다. 음악교실도 어른을 위한 ‘성인(大人) 음악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목표인 단카이 세대를 겨냥해 수요 확대를 꾀한 것이다. 야마하의 전략은 또 한 번 적중했다.

    바람이 불면 풍차를 돌려라

    야마하 관계자들은 성인 음악교실이 인기 있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퇴직하고 갈 곳 없는 이에게 지속적으로 갈 곳을 제공한 점이다. 둘째, 타깃을 고령자로 제한하지 않고, 음악을 통해 개성을 살리고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홍보함으로써 기존의 고령자 대상 사업과 차별화한 점이다. 셋째, 다양한 연령의 동호인과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성인 음악교실이 세대 간 소통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뿐 아니라 야마하는 저출산에 따른 악기 판매 부진을 중·장년 및 노인층에 대한 악기 대여 서비스로 대처했다.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려는 고령자를 위해 음악교실에서 바이올린, 색소폰 등 30여 종의 악기를 빌려준다. 연금 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는 고령자로선 악기를 사려고 목돈을 쓰기보다 매달 대여료를 내는 편이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어린이 중심에서 노인 중심으로 이행하는 것을 정확히 읽어낸 유니참과 야마하는 위기를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다. 유니참이 어린이 기저귀만 고집하고, 야마하가 어린이용 피아노 판매에만 주력했다면 두 회사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웃 일본 사례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수만은 없다. 통계청의 주민등록 인구를 살펴보면, 유아(0∼4세) 인구는 2000년 323만 명에서 2010년 230만 명으로 93만 명이나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같은 기간 285만 명에서 551만 명으로 266만 명이나 증가했다. 유아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고령자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은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가 2010년에는 전체 인구의 11.3%를 차지했지만 2050년에는 38.2%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미 어린이 중심에서 노인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애들만 기저귀 차느냐” 역발상 경영의 일본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대응한다. 하나는 바람을 피하려고 담장을 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을 이용해 풍차를 돌리는 것이다. 잠시 스치는 폭풍이라면 담장 뒤에 숨어서 버틸 수 있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새 세상을 여는 바람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고 바람을 이용해 살길을 찾아야 한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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