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3

2012.02.06

황제펭귄 ‘허들링’ 감동…또 남극? 에이, 농담도 싫어요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 “다큐에도 한국적 색깔 담은 것이 주효”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02-06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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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펭귄 ‘허들링’ 감동…또 남극? 에이, 농담도 싫어요
    남극에서 펭귄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이는 18세기에 물개를 잡던 선원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펭귄이 사는 남극 대륙 근처 사우스조지아 섬에 갔다가 엄청나게 큰 펭귄을 보고 ‘킹펭귄’이라 불렀다. 그런데 대륙으로 들어가 보니 더 큰 놈들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킹펭귄을 능가하는 외모라 이들에게 어울릴 만한 수식어는 ‘황제’밖에 없었다.

    이런 황제펭귄의 삶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영상에 담는 데 성공한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는 “여느 펭귄과 달리 색깔도, 품격도 우아해 압도될 수밖에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키가 1m 정도 되는데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요. 서서 걸으니까 새가 아니라 사람 같죠. 다른 펭귄들이 사는 섬은 한여름이면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양계장 냄새가 진동해요. 근데 황제펭귄은 배설을 해도 다 얼어버리니까 냄새가 전혀 안 나요. 외모도 근사하지만 짝짓기하고 부부가 산책하는 모습도 굉장히 우아해요. 지켜보는 맛이 있죠.”

    ‘남극의 눈물’은 지구촌 환경 문제를 다룬 ‘지구의 눈물 시리즈’(이하 눈물 시리즈) 완결판으로, 10%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특히 1월 6일 잃어버린 알을 찾다가 비슷하게 생긴 얼음덩어리를 품는 황제펭귄 아비의 부정을 보여준 1부는 수도권 시청률이 14%를 넘었다. 김 PD의 전작인 ‘아마존의 눈물’은 한국 다큐멘터리(이하 다큐) 사상 최고 시청률인 25.6%를 기록한 바 있다. 인기 비결이 뭘까.

    아시아 최초 황제펭귄 촬영에 성공



    “다큐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느낌을 많이 받는데 눈물 시리즈 덕에 가까이 느끼게 됐다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BBC나 NHK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정교하고 깔끔한 대신 차가운 면이 있는데, 눈물 시리즈는 따스함이 있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들어서 좋아해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눈물 시리즈가 BBC의 ‘살아 있는 지구’를 카피했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다큐라는 게 사실의 기록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 안 들어갈 수 없어요. 우리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BBC와는 색깔이 달라요. 소재를 따라 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죠. 소재는 한정적이니까요.”

    ▼ 어떤 색깔이 난다는 건가요.

    “한국적인 색깔이죠. 한국 사람이 만든 거니까요. BBC나 NHK가 만든 화면은 우리가 엄두를 못 내는 엄청난 비용과 노하우로 만든 실로 대단한 그림이에요. 그런데도 시청자가 우리 그림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정서에 맞아서죠.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이야기거든요. 눈물 시리즈에선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모티프예요.”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 주인공이 필요했다. 남극은 북극이나 아마존, 아프리카와 달리 원주민이 살지 않아 제작진을 고민에 빠뜨렸다. 황제펭귄이 최적의 주인공감이었지만 엄청난 제작비와 시간이 드는 데다 촬영 노하우마저 역부족이었다. 그런 황제펭귄 촬영이 성사된 데는 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도움이 컸다.

    “총 제작비 25억 원 중 18억 원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원해줬어요. 돈이 있으니까 우리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그 무렵 우리 팀에 온 김재영 PD가 ‘황제를 찍자’고 제안했어요. 여건이 안 돼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잖아요. 남극 대륙의 주인공은 황제펭귄인데…(웃음).”

    촬영 팀은 황제펭귄 서식지에서 가깝고 숙식이 가능한 기지를 물색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독일 기지가 물망에 올랐다. 그 중 한 곳을 섭외하려고 10개월 동안 공들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거의 포기할 즈음 이들을 도운 건 쇄빙선을 만들면서 국제적 입지가 커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였다.

    “쇄빙선이 있는 나라는 러시아, 중국, 일본, 호주, 미국 정도예요. 남미국가들은 남극과 가깝지만 다 공군기로 움직이고 쇄빙선은 없어요. 입김이 세진 극지연구소 소장님에게 부탁해 가까스로 호주 기지를 섭외했는데 촬영 팀이 아닌 대원으로 받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원이 받아야 하는 훈련과 영어 테스트까지 다 통과해 당당히 들어갔죠.”

    남극 주변 섬에 쥐와 토끼 우글

    황제펭귄 ‘허들링’ 감동…또 남극? 에이, 농담도 싫어요
    호주 기지에서는 그와 송인혁 촬영감독, 방보현 조연출까지 세 명을 대원으로 받았다. 이들은 황제펭귄을 촬영할 땐 호주 기지와 서식지 사이에 있는 대피소에서 추위와 싸우며 열흘에서 이십 일씩 지냈고, 기지로 복귀하면 청소, 설거지, 주방보조 같은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김 PD는 “감자와 양파를 하루에 50∼100개씩 깎았더니 이제 한 손으로도 깎을 수 있을 정도”라며 웃었다. 촬영 팀은 허드렛일을 마친 뒤에도 호주 대원들과 어울리며 친분을 다졌다. 호주 기지에서 대피소까지 차를 운전하고 발전기를 돌리고 충전도 하려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호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환경 교육을 잘 받아서 우리를 많이 힘들게 했어요. 처음엔 서식지에서 70m 떨어진 곳에 금을 딱 그어줘요. 여기를 넘지 말라는 거죠. 그러다 새끼들의 몸집이 커지면 차츰 50, 30, 20m로 줄여주더라고요.”

    그는 황제펭귄이 알을 막 깨고 나왔을 때의 얼굴과 추위를 이기려고 본능적으로 무리지어 몸을 밀착하는 허들링(Huddling)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남극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황제펭귄 무리를 만난 건 천운”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황제펭귄은 서식지를 계속 옮기기 때문에 찾아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황제펭귄 수컷의 삶은 대한민국에서 아빠로 사는 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새끼들이 포식자에게 둘러싸였을 때 방관할 수밖에 없는 정말 무기력한 다수의 펭귄이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그가 황제펭귄 촬영에 집중하는 동안 김재영 PD는 또 다른 촬영 팀을 이끌고 약 200일 동안 남극 주변의 섬을 돌았다. 북극이나 아마존, 아프리카와 상황이 다를 줄 알았으나 남극에서도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조류콜레라로 턱끈펭귄 10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쥐와 토끼가 엄청나게 늘어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었어요. 그만큼 기온이 따뜻해지고 있는 거죠. 가장 큰 위협은 서남극의 빙하가 녹는다는 사실이에요. 동남극은 반대로 굉장히 추워지고 있고요. 여름에 바다가 녹아야 새끼가 바닷물로 들어가 성체로 자라는데, 빙벽이나 얼음덩어리가 가로막으면 바다까지 100km를 걸어가야 해요. 가다가 다 죽어요. 우리가 촬영한 한 섬에서도 아델리펭귄 새끼 1500마리가 태어났는데 바다를 찾아 걸어가다 다 죽고 8마리만 살아남았어요.”

    그는 눈물 시리즈에 참여하면서 생활습관이 바뀌었다. 종이컵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비록 소소한 변화이긴 하지만 작은 실천이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그에게 남극에 다시 가보고 싶으냐고 묻자 이내 손사래를 쳤다.

    “아마존은 그사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다시 가서 촬영해보고 싶은데 남극은 가고 싶지 않아요. 아직 제 마음이 녹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남극의 눈물’을 3D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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