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9

2012.01.02

학교 폭력 추방 우리 모두의 과제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2-01-02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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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폭력 추방 우리 모두의 과제
    최근 연이은 청소년 자살사건에 많은 학부모와 시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대전 여고생’은 2011년 12월 2일 친구의 집단따돌림(소위 ‘왕따’)을 견디지 못한 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투신 직전 엘리베이터 CCTV가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대구 중학생’은 친구들로부터 39차례 폭행당하고 물건을 빼앗기는 등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학교 폭력 정신과적 장애로 이어져

    학교 폭력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점차 수법이 잔혹해지고 왕따 현상과 맞물리면서 피해가 날로 심각해진다. 심지어 어느 부모는 학교 폭력에 대응하려고 사설 경호원까지 동원했다. 임상에서 많은 청소년을 접하는 정신과 의사인 필자도 종종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을 만난다. 학교 폭력으로 정신과적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장애로 급성 스트레스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적응장애, 우울증(우울성 장애), 불안장애를 들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장애의 경우, 피해 학생은 심한 공포와 무력감, 전율을 보인다. 이런 반응이 한 달 이상 지속돼 더 심각해지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발전한다. 피해 학생은 폭력이 재발할 것 같은 느낌을 갖거나, 가해 학생을 연상시키는 단서에 노출될 때마다 심리적 괴로움을 느낀다. 또한 폭력과 연관된 자극에 지속적인 회피 증상을 보인다. 즉, 폭력과 관련된 대화를 회피하거나 폭력을 회상하게 만드는 장소와 사람을 피하려 드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반응의 둔화 현상도 나타난다. 각성 증상 탓에 잠들기와 수면 유지가 힘들어진다. 이 밖에도 자극 과민성, 분노 폭발, 집중 곤란, 과도한 경계심과 놀람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피해 학생에게서 우울한 기분, 짜증, 의욕 저하, 흥미 감소 등이 적어도 2주 이상 지속되고,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우울증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이나 장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첫 번째가 생물학적 요인으로, 원래부터 정신과 질환에 대한 취약성(vulnerability)을 갖고 있는 경우다. 이는 부모 등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에서부터 성장하면서 여러 원인에 의해 미세한 신경 손상이 일어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두 번째는 심리적 요인으로, 한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불안정해져 정신질환에 이르게 된 경우다. 예를 들어, 상실(loss)에 대한 심리 반응은 애도 과정을 거쳐 우울증에 이를 수 있다. 또한 사랑, 자존심, 의존의 상실이나 죽음, 이별 등은 절망, 미움, 분노, 억압의 합병을 불러일으켜 여러 정신장애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사회적 요인이다. 한 개인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정신 병리를 초래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가족 간 갈등, 가족 내 폭력과 학대, 직장 내 갈등,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이 포함된다. 학교 폭력도 사회적 요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학교 폭력은 지속적 형태와 단 한 번의 커다란 사건적 형태 모두 심각한 정신 병리를 야기한다. 안타까운 것은 피해 학생의 부모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신체적 상처에만 신경 쓸 뿐, 아이의 마음이 얼마만큼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이가 학교 폭력에 대해 말을 꺼내 그 실상이 드러났을 때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위로와 이해의 말을 건네지만, 그것이 너무 짧게 끝난다. 부모와 교사의 좀 더 지속적인 지지와 위로가 필요하다.

    당사자의 교육과 치료 필요

    학교 폭력 추방 우리 모두의 과제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대구의 한 중학생이 남긴 유서.

    가해 학생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보다 변명하기에 급급해 한다. 이들에 대한 인성교육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가해 학생 부모도 자녀를 감싸려는 이기적인 태도를 자주 보이고, 문제 원인을 피해 학생에게 전가시키는 언행을 일삼는다. 또한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치료비를 합의할 때도 정신과 진료비용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다시 학교 폭력 피해 학생 얘기로 돌아와보자. 그들은 수치심과 당혹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당할 만하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자신감 저하, 자존감 결여 등의 현상을 보이면서 자신을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한다. 이러한 정신적 고통과 어려움으로 친구가 점점 없어지고 보호해주는 방어막도 사라진다.

    주의집중력 감소로 학업 능력이 떨어지고 급기야 등교를 거부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잦은 신체화 증상(어지러움, 구토, 사지 통증이나 마비, 두통, 과호흡, 만성 피로감, 히스테리)을 호소해 내과 의사를 찾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성장한 다음에도 불안, 우울, 외로움에 취약하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알코올과 관련한 문제나 가족 폭력 문제를 갖게 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이번 사건처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다고 믿기에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죽음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의 적응 문제를 돕는 유용한 관점 가운데 하나는 당면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 성인은 개인 성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소아 및 청소년은 지각된 가족 환경이나 사회적 지지가 더 큰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가족, 학교, 또래집단에서의 공감과 인정, 그리고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전문적인 치료자와의 접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나 교사는 쉬쉬하면서 문제를 축소시키고, 가해 학생과 부모는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동료 학생과 학부모 역시 남의 일이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앞으로도 이런 사건은 이어질 것이다. 학교 폭력과 왕따는 분명한 범죄고, 주로 어린 청소년에게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교육과 치료가 병행돼야 할 문제다.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의 처벌과 선도, 그들 부모에게 책임 지우기는 물론, 교사와 학교를 대상으로 한 계도 및 교육도 절실하다.

    이슈화된 사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관심과 책임이 끝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데 우리 모두 공감할 때 이런 일이 그나마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자녀와 관련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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