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9

2012.01.02

계속되는 ‘전기 갈증’에 원전 생각

에너지 부족 근본 대책은 발전소 짓는 것… 새 원전 후보지 영덕과 삼척에 쏠린 시선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01-02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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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전기 갈증’에 원전 생각
    전기 부족 때문에 전국이 난리다. 정부가 에너지 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실내온도를 공공기관은 18℃, 민간기관은 20℃ 이하로 유지하라고 하면서 도처에서 춥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경기 안산시 한 국책기관의 연구원 A씨는 한파가 기승을 부린 2011년 성탄절 무렵 손을 부비며 근무했다. 연구실 온도가 12℃를 기록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우리 건물은 오래돼 균일한 난방이 되지 않는다. 열이 많이 가는 곳은 20℃가 넘어도 구석은 15℃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조사를 나온 사람이 한군데에서라도 18℃가 넘으면, 정부 시책을 어겼다고 문제를 삼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구체화하려고 무조건 전기사용량을 전년보다 10% 줄이라고 했다. 건물 어느 곳에서도 18℃를 넘기지 않으면서 전기사용량을 전년보다 10% 줄이려면 햇볕이 드는 낮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 때문에 12℃를 기록한 구석진 연구실에서 손을 부비며 일해야 했다.”

    강원 B군의 군수는 실내온도 18℃를 준수하려고 모든 사무실에 온도계를 비치했다. 직원에겐 내복을 입으라고 권유했다. 내복을 입으면 체감온도가 3℃ 높아져 에너지를 20% 정도 절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C구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건물 893곳을 대상으로 네온사인 사용제한 준수 여부를 철저히 점검한 뒤 위반 횟수에 따라 50만 원(1회)에서 300만 원(4회 이상)까지 과태료를 부과키로 했다.

    한파에도 실내온도 20℃ 이하 유지

    발전회사의 사정도 긴박하긴 마찬가지다. 일선 발전소의 주제어실에는 워룸(war room)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전기소비가 급증할 때 가장 신속히 대처하는 방법은, 물만 흘려보내면 수십 초에서 2분여 만에 막대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다.



    국내 양수발전소 7곳 가운에 여섯 번째로 건설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청송양수발전소는 30만kW짜리 발전기 두 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발전소는 해발 620m에 있는 상부(上部)댐과 260m의 하부댐 사이 낙차를 이용해 8시간 동안 고리 원자력발전소(원전) 1호기와 같은 60만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8시간이면 전력 피크타임을 넘길 수 있다. 이 발전소는 전기소비가 줄어드는 한밤중과 새벽 사이, 하부댐 물을 상부댐으로 퍼 올려놓고 다음 날의 전쟁을 기다린다.

    이 발전소의 발전시설은 100% 암반으로 된 하부댐 근처 산속에 있다. 버스 두 대가 교행할 정도로 큰 터널을 따라 들어가자 장충체육관만 한 광장이 나왔다. 크레인을 이용해 이 공간 밑에 있는 발전기 등을 끌어올려 수리하는 곳이라서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공간 밑으로 4층이 있는데, 상부댐에서 초당 113t씩 흘려보낸 물은 지하 4층에 있는 수차(水車)를 돌리고 하부댐으로 흘러간다. 한밤중에는 수차를 거꾸로 돌려 하부댐 물을 초당 105t씩 상부댐으로 퍼 올린다.

    계속되는 ‘전기 갈증’에 원전 생각

    해발 620m 산 위에 지은 청송양수발전소의 상부댐. 양수발전소는 전기 부족 시 가장 기민하게 대응한다.

    제어실은 지하 2층에 있다. PC방처럼 컴컴한 그곳에 가니 두 명의 운전원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모니터 옆에는 전기 주파수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소수점 이하의 숫자를 바꾸며 번쩍였다. 한국의 전기 주파수는 60Hz(헤르츠)다. 전기 소비가 급증해 전력 예비율이 제로에 가까워지면 주파수는 59Hz 초반대로 떨어진다. 2011년 9·15 대정전 때는 59.25Hz에서 강제순환정전 조치를 취했다. 그때 남은 전력이 24만kW였으니, 청송양수발전소가 멈추면 60만kW가 사라져, 전국은 바로 완전정전(black out)이 된다.

    다행히도 전광판 숫자는 60Hz 최근사치를 기록했다. 이 발전소는 9·15 강제순환정전과 관련해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전력의 발전 부문을 한수원 등 여섯 개 발전회사로 쪼개놓았다. 그리고 전력거래소를 만든 뒤 발전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사서 수요자에게 공급키로 했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 맞춰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케 함으로써 ‘생산은 값싸게, 소비는 경제적으로’를 실현하겠다고 한 것.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갔다. 발전량이 많은 원전은 최소 이틀간 예열해야 정상 발전을 한다. 따라서 전력거래소가 구매할 전기를 미리 결정해줘야 당일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력거래소는 전날 오전 10시에 다음 날 구입할 전기량을 결정해 발전회사에 통보한다. 2011년 9월 14일 오전 10시, 전력거래소는 다음 날 필요한 전기량을 결정해 통보했다. 그런데 9월 15일은 아침부터 찌는 듯한 늦더위가 찾아와 전기소비량이 급증했다. 전날 사겠다고 한 전기량을 금방 넘어섰기에, 전력거래소는 발전회사에 돌릴 수 있는 모든 발전소를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가장 신속히 가동하는 것은 물만 흘려보내면 되는 수력과 양수발전소다. 양수발전소는 원전과 같은 60만~100만 kW 규모이므로 위급 시 큰 구실을 한다. 일곱 개 양수발전소는 오전 8시쯤부터 풀가동했다. 그리고 오후 3시 반이 지나 상부댐 물이 떨어지자 하나씩 멈춰 섰다. 더위는 계속되는데 일곱 기의 원전이 멈춰선 셈이니, 오후에 전기 부족 현상이 극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전력거래소 산하의 급전(給電)지령소는 중소도시를 골라 돌아가며 전기를 끊는 ‘강제순환정전 조치’를 취했다. 억지로 전기소비량을 줄여 전국 완전정전을 막은 것. 강제정전을 당한 중소도시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녁 손님을 기다리던 일식집에서는 활어(活魚)가 죽고, 냉장고 속 음식이 상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중요한 국제거래를 하지 못했다고 항의했다. 다행인 것은 주요 산업체는 비상발전기가 있어 피해를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계속되는 ‘전기 갈증’에 원전 생각

    팔당수력발전소 주제어실. 맨 오른쪽 위에 60.01이라 찍힌 것이 주파수다. 전력 부족 때문에 운전원들은 잠시도 자리를 못 비운다.

    운전원, 날마다 노심초사

    이 일을 겪은 후 청송양수발전소는 전력 주파수가 많이 낮아져도 마구 발전하지 않는다. 계기판을 지켜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물을 흘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 결정은 청송양수발전소가 아니라 전국 전기 상황을 지켜보는 급전지령소가 한다. 하지만 청송의 운전원들도 같은 계기판을 보고 있어, 급전지령소의 지시가 오기 전에 가동과 정지를 준비한다. 양수발전기는 하루에도 십여 번씩 발전과 가동을 반복하니 고장이 날 수 있다. 발전기가 고장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운전원은 발전기 상태에도 신경 써야 한다.

    수력발전소의 전기생산량은 미미하다. 하지만 강물은 끝없이 밀려오므로 조금만 모아 놓았다 방류하면 바로 전기를 얻을 수 있다. 팔당수력발전소에는 2만kW의 발전기 네 대가 있다. 발전소는 콘크리트댐 바닥 하류 쪽에 있었다. 콘크리트는 아무리 두꺼워도 물이 새는 틈새가 있다. 시멘트와 모래를 섞을 때 생긴 기포가 변한 것이다. 이 틈새로 삐져나오는 물이 제법 되기에 팔당발전소는 이 물을 빼내는 별도의 양수시설을 마련해놓았다.

    이 물로 인해 발전소 안은 항상 축축하다. 난방을 해도 습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음습한 제어실을 운전원들이 4조 3교대(한 조는 하루씩 쉰다)로 24시간 지킨다. 완전정전 상태가 예상되면, 봄에 쓸 물이 부족해지더라도, 팔당호의 물을 흘려보내 2만kW 발전기를 더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기 고장 여부도 수시로 확인한다. 눈은 모니터와 전광판에, 귀는 급전지령소에, 정신은 발전기에 집중하고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에너지 부족을 타개하는 근본 방법은 발전소를 더 짓는 것뿐이다. 한국의 전기사용량은 한국의 모든 발전소를 정상 가동했을 때 생산할 수 있는 전기량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100만kW대의 대용량 발전소는 양수와 원전뿐이다. 그러나 양수발전소는 24시간 발전하지 못하고, 댐 건설로 산림을 훼손한다는 시비까지 따른다. 양수발전소는 상부댐으로 물을 퍼 올리는 데 전기를 사용하기에 발전단가가 원전의 2배 정도 된다. 경제성을 따지면 원전이 정답인데, 원전은 일본 후쿠시마 같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원전을 지을 땅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기존 터에 추가로 짓는 건설만 해왔다. 이 노력도 신고리 8호기, 신울진 4호기, 신월성 2호기를 완공하면 끝난다. 이들을 다 지을 때쯤이면 고리 1호기 등 오래된 원전은 계속 운전이 끝나므로 완전 정지시켜야 한다. 새 원전 터 확보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인데, 다행히도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지질 조건을 갖춘 경북 울진과 영덕, 강원 삼척이 원전 유치 신청을 했다. 심사 결과 한수원은 영덕과 삼척을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 2012년 말경 이 결정을 정부가 승인하면 두 지역은 새로운 원전 단지로 확정된다.

    문제는 지역 주민의 반발 여부다. 지역 자치단체와 의회가 유치 신청을 했지만 모든 주민이 찬성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 유치에 반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후쿠시마에서는 여섯 기의 원전 가운데 네 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지만, 방사능으로 숨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 직원 가운데 숨진 이는 두 명인데, 이들은 쓰나미를 피하지 못한 듯 건물 안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를 지휘한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발전소장은 70m㏜(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쪼였다. 의학계는 인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최소 피폭량을 100m㏜로 한정했으니, 그의 피폭량은 결코 위험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2011년 11월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식도암이 발견됐다. 그로 인해 방사선 피폭으로 요시다 소장이 식도암에 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의사들이 식도암은 5년 이상 잠복할 수 있다고 확인해주면서 사그라졌다. 의료진은 요시다 소장을 대상으로 특별 건강검진을 했기에 과거 검진에서는 찾아내지 못한 식도암을 발견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중 40여 명이 쓰러졌는데, 그 이유는 더위 때문으로 밝혀졌다. 사고 수습 요원은 날씨가 따뜻해진 시기에 얼굴에 방독면을 쓰고 작업했기에 땀을 많이 흘려 탈진하는 등 열사병 증세를 보였다.

    현재 일본 슈퍼에서는 후쿠시마산(産) 농산물이 팔린다. 방사능 오염 가능성 때문에 인기는 없지만, 먹어도 된다는 판정을 받았기에 진열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충격에 비해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일본 원자력계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경쟁에서 한국에 패한 데 이어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당했다. 그런데도 지금 베트남과 터키에 원전을 수출하려고 전력을 기울인다. 일본 총리는 베트남 총리를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면서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 열도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베트남은 스프래틀리 군도(남사군도) 문제를 놓고 중국과 갈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러한 베트남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각종 지원을 하며 일본 원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새로운 원전 후보지에 대한 주민 거부를 풀어가는 방법이 된다.

    원전 후보지 발표 후 영덕과 삼척에서는 약간의 반발이 있었다. 반면 탈락한 울진에서는 “우리는 이미 울진원전이 있어 더 지어도 좋은데, 왜 뺐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2012년 한국은 G20 정상회의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다시 원자력에 관심을 쏟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새 원전 후보지에 대한 주민 거부감이 적고 핵안보정상회의를 원만히 치른다면 한국은 원전을 더 지어 진정한 원전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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