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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악마의 유혹 ‘사이버 도박’ “난 이렇게 파멸했다” 03

뛰는 단속에 나는 사이버 도박

도박 사이트 운영자 갈수록 수법 교묘…용의자 구분 어렵고 관할도 없어 수사 고민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뛰는 단속에 나는 사이버 도박

뛰는 단속에 나는 사이버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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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기자 휴대전화에 들어온 두 건의 문자메시지다. 여기에는 카지노 인터넷 사이트 주소가 다양한 특수기호로 적혀 있었다. 경찰 단속을 피하려 비표준어와 특수기호를 이용해 문자메시지 ‘홍보’를 한 것이다. 사이버수사대에 ‘꼬리’가 잡히더라도 서버를 이전하고 새로운 고유 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를 발급받아 다시 알리면 그만이다.

사이버 도박 사이트 운영자의 수법이 나날이 정교해지면서 이들을 적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4월 1일부터 4개월간 경찰은 사이버 도박 사이트를 만든 프로그램 개발자와 서버 관리자 등 운영자 1000여 명을 검거해 그중 5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사설 스포츠토토, 경마 등 불법 도박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고스톱, 포커 같은 게임에서 막대한 현금을 거래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기간에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 운영자 20여 명을 적발한 민근태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경위)은 “사이버 도박 사이트 관리자 1명을 적발하려면 경찰 4~5명이 최소 두 달 동안 매달려야 한다. 하지만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 하나를 만드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민 경위에 따르면 수사는 대부분 한국마사회(경마)와 오리온(스포츠토토) 등 공식 게임 운영자가 제공한 ‘첩보’에서 시작한다.

첩보에서 수사 시작…1명당 127건 담당



뛰는 단속에 나는 사이버 도박

민근태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

“오리온은 공식적으로 스포츠토토를 운영하기 때문에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합니다. 오리온이 수집한 불법 도박 사이트의 송금 계좌번호와 IP 주소 등 관련 정보를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합니다. 오리온은 사설 도박을 막고, 우리는 범인을 신속하게 검거할 수 있으니 ‘윈윈(win-win)’하는 셈이죠.”

불법 도박 사이트의 송금 계좌번호나 IP 주소를 알아도 수사는 쉽지 않다. 사이트가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기 때문. 민 경위는 “요즘은 한 달 이용료가 50만~60만 원 하는 홍콩 서버보다 30만 원가량 더 비싸지만 안정적인 일본 서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가입자 수가 많은 불법 도박 사이트의 경우 보통 ‘예비 서버’ 2~3개를 보유해 경찰이 서버 하나를 차단하면 백업해둔 데이터를 다른 서버에 올려 사이트를 지속적으로 운영한다. 그러다 경찰이 서버 수사에 착수하면 그 서버를 완전히 폐쇄한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국내 범죄용 서버 관리와 제작만 담당하는 업체가 생겼을 정도다.

IP 추적 역시 관리자가 불법으로 명의를 도용해 IP 주소를 할당받는 곳이 많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런 경우 경찰이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기간통신사업자에 범죄용 IP 주소의 명의를 파악해달라고 요청해도 “확인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해킹한 IP입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인터넷뱅킹에 이용하는 IP는 명의자를 찾기가 비교적 쉽다. 그렇지만 요즘은 용의자도 단속을 피하려고 인터넷뱅킹 입출금용 IP만 별도로 임대한다. 그야말로 ‘뛰는 경찰 위에 나는 사이버 도박범’인 셈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 관리자뿐 아니라 ‘상습행위자’도 처벌 대상이다. 올 4월부터 4개월간 500만 원 이상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적발된 상습행위자는 총 1800여 명. 박근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경정은 “입건된 상습행위자 가운데 16%(293명)는 같은 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적발된 상습행위자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성실한 회사원, 가정주부도 많다. 젊은 층이 주로 하는 사설 스포츠토토의 경우, 대출받은 학자금으로 게임을 하는 대학생도 많다. 민 경위가 적발한 상습행위자 중에는 전방 GP(초소)에서 근무하는 육군 장교도 있었다.

“전방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니까 친구한테 전화해서 사설 스포츠토토 배당률을 확인한 후 친구를 통해 베팅했어요. 돈은 텔레뱅킹으로 송금했고요. 그 장교는 여러 사이트에서 사이버 도박을 했는데 한 사이트에서만 2000만 원 이상 베팅했습니다.”

늘어만 가는 사이버 도박. 하지만 근절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수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이 9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명수 의원(자유선진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사이버 도박 범죄는 총 12만2900여 건에 달했다. 하지만 사이버 수사 인력은 963명에 불과했다. 사이버 수사관 1명당 1년 평균 127건 이상 담당하는 셈이다.

서울 종암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근무했던 한 경찰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리니지 게임 하다 칼이 없어졌다’ ‘내 게임머니가 없어졌다’는 민원 전화가 걸려온다. 특히 방학 때는 거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접수된 사건만 처리하기에도 손이 부족하니, 내 휴대전화에 수신되는 불법 도박 사이트 홍보 문자메시지를 보고도 선뜻 수사에 나설 수 없었다”고 밝혔다.

뛰는 단속에 나는 사이버 도박

불법 사이버 도박을 적발해도 범죄수익금 환수는 쉽지 않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불법 도박 근절법안’ 개정안 발의

사이버 범죄는 오프라인 범죄와 달리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사이트 운영자의 이름, 얼굴이 거의 노출되지 않고 수시로 IP 주소나 서버를 바꾸기 때문에 추적도 어렵다. 게다가 사이버 세계에는 ‘관할’이 없어 사이버수사대는 ‘전국구 경찰’이다.

4월 전북 김제 마늘밭에서 불법 인터넷 도박 자금 110억 원이 발견돼 전국이 떠들썩했다. 이 돈을 은닉한 범인은 충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붙잡혔다. 이 사건을 담당한 노세호 충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대장은 “범인은 400여 개 대포통장에 수익금을 나눠 입금하고 전국을 돌며 현금을 찾았기 때문에 계좌 추적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수사관들도 전국을 돌며 범인 흔적을 쫓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8월 16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불법 도박 사이트 개설자와 상습행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불법 도박 근절법안’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법 도박 사이트 개설자는 징역 5년 이하에 처하고, 불법 도박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자는 것.

현행법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개설하거나 운영 및 홍보하는 행위는 징역 3년 이하에 처한다. 노 대장은 “사이트 개설자는 대부분 2년 이하 징역을 선고받고, 상습행위자는 벌금형에 그친다”고 말했다. 형량이 낮다 보니 ‘한몫 챙기고 교도소 갔다 오면 한평생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민 경위는 “최근 입건한 도박 사이트 관리자 중에는 ‘김제 마늘밭’ 사건을 뉴스로 접한 후 ‘도박 사이트로 100억 이상 만질 수 있고 형량도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 평범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조직폭력배 단체가 사이버 도박 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민 경위는 “폭력범죄자의 경우 별 피해가 없어도 대부분 불구속 입건하고, 조직폭력배의 경우에는 거의 구속, 수감한다. 그런데 조직폭력배도 ‘사이버 도박은 입건되더라도 형량이 얼마 안 되고 돈도 쉽게 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업’에 접근한다”면서 “형량을 높이지 않으면 불법 사이버 도박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주간동아 2011.09.26 805호 (p20~22)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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