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2

2011.08.29

손 벌리는 부모는 NO! 은퇴 준비 잘해야 대접받는다

좋은 부모의 조건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1-08-29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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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벌리는 부모는 NO! 은퇴 준비 잘해야 대접받는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주택연금을 신청하는 노령자가 늘고 있다.

    “그때 일시금이 아니라 연금으로 받을 걸 그랬어요!”

    얼마 전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다 은퇴한 부부교사를 상담할 때 남편이 한 말이다. 5년 전 정년퇴직을 앞둔 부부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을지, 일시금으로 받을지 고민했다. 두 사람 모두 20년 넘게 교편을 잡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큰아이가 결혼을 앞둔 데다 작은아이가 대학원에 다녀 목돈이 절실했다. 부부는 의논 끝에 남편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아내 것은 연금으로 받았다. 남자보다 여자가 평균수명이 길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자녀교육과 자녀 결혼비용으로 퇴직금을 다 써버리고 난 지금 남편은 당시의 결정을 후회한다. 매달 아내 눈치를 보며 용돈을 받아쓰는 것이 불편해서다.

    “그때 내가 연금을 선택했더라면….”

    40대 초반에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사업에 나섰다가 실패한 김이남(65) 씨에 비하면 이들 부부는 행복한 편이다. 김씨는 13년간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연금을 못 받는다. 20년 넘게 공무원으로 일해야 연금이 나오는데 7년이 모자라서다. 7년만 더 일하면 노후에 편안히 살 수 있었는데 왜 공무원을 그만뒀느냐고 물으니 “공무원 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되는 건 알았지만,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생활비에 사교육비까지 감당하기 어려워 욕심을 냈다”고 대답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다음 생활비와 자녀교육비를 대느라 슈퍼마켓, 제지대리점, 우유대리점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듯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하지만 자식들도 부모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달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실시한 기초생활수급자 적정성 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났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가구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 기준(1인가구 기준 월 53만 원) 이하면서 법적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받을 수 없는 사람이 선정 대상자다. 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자의 부양의무자 가운데 재산과 소득이 많은 10만4000명을 중점 확인 대상자로 지정해 수급자의 적정성을 확인했는데, 이들 중 42%에 해당하는 4만3000명이 ‘자녀와 가족관계가 단절됐다’고 소명해 수급자격을 유지했다.



    손 벌리는 부모는 NO! 은퇴 준비 잘해야 대접받는다
    자녀가 형편이 안 돼 부모를 못 모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부정 수급자로 드러난 사람 중엔 부양의무자의 월소득이 500만 원 넘는 경우가 5496명, 1000만 원 넘는 경우가 495명이었다. 딸과 사위의 월소득이 4000만 원이 넘고 재산이 179억 원인 사람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만약 이들이 정부지원을 받고자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소득을 누락했다면 지탄을 받겠지만, 부정하게 받은 수급금을 돌려주고 법적 제재를 받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할 수도 있다. 반면, 돈 많은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아 부모가 부정 수급자가 된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부모가 잘난 자식을 둔 까닭에 정부지원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는 셈이다.

    이쯤 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복지부의 이번 조사가 부정 수급자를 밝혀내는 데는 보탬이 됐지만, 부모와 자식 간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는 데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자식을 위해 부모가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좋은 부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택연금 신청자 급증을 보면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택연금이란 주택을 담보로 평생토록 연금을 받는 제도로, 부부 둘 다 60세 이상이고 시가 9억 원 이하 주택을 한 채만 보유하면 가입 가능하다. 한국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연금 신청자 평균연령을 분석한 결과 73세로 나타났다. 가입자 중엔 퇴직한 다음 10여 년간 은퇴생활을 하면서 현역 시절 모아둔 현금을 거의 다 소비했거나, 정년 후에 얻은 새 일자리마저 잃으면서 생계가 곤란해진 사람이 많다. 가진 것이라곤 집 한 채밖에 없는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생활비까지 충당하는 방법은 주택연금밖에 없다. 주택연금을 신청할 때 걸림돌은 ‘장남에게 집 한 채는 물려줘야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더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예가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자식의 생각은 부모가 상상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주택 상속의 의미가 퇴색했다. 부모가 90세까지 산다면, 그즈음 자식 나이는 대략 60세이다. 자식 처지에선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기보다, 자녀교육과 생활비로 지출이 왕성한 40~50대에 부모가 주택연금을 받아 부양 부담을 덜어주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렇듯 100세 시대가 가져다준 숙제 가운데 하나가 부모와 자식이 함께 늙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부모’라고 하면 자식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사람을 말했다. 평균수명이 60~70세 전후일 때 부모는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고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나 사정이 달라졌다. 소득 없이 지내는 노년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모는 베푼 사랑을 돌려받길 바라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식 상황도 여의치 않다. 먹고살면서 은퇴 준비하는 데 바빠 부모 봉양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요즘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란 젊어서 베풀고 노후에 자신에게 손 벌리는 부모가 아니라, 나이 들어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를 뜻한다.

    일본에선 연금이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어주는 안전선 구실을 한다. 지난해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지 ‘아에라(AERA)’에 ‘돈 없는 부모여, 사라져라’라는 기획기사가 실렸다. 기사대로라면 사랑과 화목을 유지하는 가족의 핵심적인 특징은 단 하나다. 돈! 좁혀 말하면 연금이다. 주오대학 가족사회학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이 기사에서 “현 시대에 고령자가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는 돈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고 꼬집는다. 한국의 많은 부모가 자녀교육비 탓에 은퇴 준비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손 벌리는 부모는 NO! 은퇴 준비 잘해야 대접받는다
    지속가능할 때까지 자식을 돌봐줘야 할까. 현실은 반대다. 은퇴 준비를 잘한 부모가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자녀와의 관계도 돈독하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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