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5

2011.07.11

문득 인도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연극 ‘인디아 블로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7-11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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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인도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유적지 앞에 어색하게 서서 찍는 사진 따위에는 관심 없다. 기차는 늘 연착하고 소매치기는 당당하다. 하루 종일 끔찍한 더위와 싸우느라 온몸이 끈적끈적한데, 샤워장도 없고 바퀴벌레까지 나오는 더러운 숙소에서 긴 밤을 지새워야 한다. 인도를 여행하려면 이런 때 호탕하게 웃어넘겨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인도가 예상치 못한 선물을 건넬지니.

    연극 ‘인디아 블로그’는 인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듣고 회사를 관둔 29세 찬영, 블로그에 인도 여행 정보만 잔뜩 남기고 사라진 여자친구 성은을 찾아야 하는 27세 혁진. 두 남자가 인도행 비행기에서 만난다.

    금세 친해진 둘은 함께 여행을 한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름다운 디우, 웅장한 성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이살메르, 낙타 타고 사막을 건너는 쿠리, 시바기념일을 맞아 거리에서 밤새 춤판이 벌어진 바라나시 등. 연극은 마치 블로그에 포스팅하듯 찬찬히 여행을 보여준다. 찬영은 4년 전 인도에서 만났으나 지금은 곁에 없는 옛사랑을 떠올린다. 혁진은 여자친구 찾기를 번번이 실패하면서 사랑이 떠나갔음을 인정한다. 두 사람은 죽은 이의 영혼을 떠나보내는 갠지스 강에 연등을 띄우며 불빛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관객은 두 배우와 함께 인도를 다녀온 기분을 느낀다. ‘발로 만든 생생함’ 덕분이다. 두 배우(전석호, 박동욱)와 연출가 박선희는 이 연극을 위해 두 번이나 인도를 여행했다. 그들의 오랜 여정이 연극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도에 발가락 하나 안 들여본 사람도 마치 바라나시 여행자 거리를 걸어본 듯한 느낌이다.

    배우가 직접 구성에 참여했으니 극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은 당연지사. 인도 여행 당시 찍어온 동영상이 배경에 깔려 관객의 이해를 돕는 데다, 소극장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했으니 일석삼조다.



    문득 인도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문은 좁고 사람은 많다. 무작정 달리지만 문득 궁금하다. 정말 남보다 빨리 달려 나만 문 안으로 들어서면 그만일까. 확신도, 자신도 없을 때 훌쩍 ‘서울과는 시간이 거꾸로 도는’ 인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인도행 편도 티켓을 끊고 어떤 제한도 없이 청춘을 낭비하는 것. 떠나기에는 묶인 쇠사슬이 너무 많다고? 그럼 이 연극이라도 보자. 해외 라이선스 대작 뮤지컬, 잘나가는 드라마와 영화, 원작연극 틈새에서 괴이할 만큼 여유롭고 소박하면서도 가슴 찡한 이 연극을…. 8월 28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 문의 02-744-7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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