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8

2017.05.17

사회

자율동아리 ‘리더’가 뭐기에!

중고생 학생부에 한 줄 올리려 엄마들 간 경쟁 치열…어른 싸움이 아이 싸움으로 번지기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5-15 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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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 분야가 같은 학생끼리 모여 교과서 밖 꿈과 재능을 찾아 탐구하는 교내 동아리활동. 하지만 최근에는 동아리활동이 고입과 대입에 중요한 스펙으로 활용되면서 이를 둘러싼 학생 및 학부모 간 기 싸움이 치열하다.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특수목적고교(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교(자사고)에 갈 때,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대학에 갈 때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는 교과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특히 학종에서 입학사정관이 가장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활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동아리활동은 단순한 여가나 취미활동에 그치지 않고 진로역량, 학습능력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동아리 리더 자리를 놓고 학부모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같은 동아리활동을 했더라도 그중 리더는 담당교사에게 유리한 평가를 받을 것이란 생각에 서로 자신의 아이를 ‘리더’로 만들려고 경쟁하는 것.



    ‘리더’ 자리 놓고 엄마들 경쟁

    교육부에서 인정하는 동아리는 총 6개 형태로 나뉜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창의적체험활동(창체) CA(Club Association)와 자율동아리, 학교스포츠클럽활동, 재학 중인 학교가 아닌 여러 학교와 공동으로 활동하는 연합동아리, 지역학교의 특성을 살린 지역연계형 동아리, 자연계 및 인문계 융합동아리 등이다. 이 중 자율동아리는 교육부 지침 아래 2014년부터 운영 중이다. 말 그대로 아이들 스스로 자유롭게 만들어 활동하는 동아리다.



    학교 차원에서 운영하는 ‘창체 CA’는 교사가 주축이 돼 모임 규모에 맞춰 일부 학생을 선발해 운영하는 반면, 자율동아리는 학생들이 모임을 만든 뒤 교사를 섭외하는 형식이다. 보통 교사들은 창체 CA 1개에 자율동아리 1~2개를 책임진다. 학기 초 서로 인기 있는 교사를 선점하려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는 학년 초마다 ‘자율동아리 만드는 법’이라는 특강까지 운영된다.  

    서울 강남 소재 고교의 한 학부모는 “학기 초에 발 빠르게 계획서를 제출해야 원하는 교사를 섭외할 수 있다. 방학 때 자율동아리 관련 계획서를 미리 다 만들어놓는 엄마도 있다”고 말했다. 말은 자율동아리지만 사실상 주체가 학부모인 경우가 많다 보니 ‘어른 싸움이 아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종종 생긴다. 

    지난해 독서토론 자율동아리에서 활동했다는 한 아이의 엄마는 “A학생의 엄마가 동아리를 만들고 몇몇 친한 엄마의 아이를 그 동아리에 들게 했다. 자율동아리의 리더는 처음 동아리를 기획한 엄마의 아이가 맡는 게 관행인데, B학생의 엄마가 ‘아이들이 활동하는 동아리인 만큼 리더도 아이들이 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계속 문제제기를 해 분위기가 나빠졌다. 결국 엄마들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설전이 오갔고, 어른 싸움이 아이 싸움으로까지 번져 동아리가 와해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동아리니까 아이들이 리더를 정하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동아리를 만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에게 그 정도 혜택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부형은 아이들 취미활동까지 점수로 환산하는 현 입시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 학부형은 “주변에 보면 동아리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학부형이 한둘이 아니다. 마음 맞는 아이끼리 팀을 꾸리지 못하면 동아리활동을 하는 3년 내내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하다. 중1 또는 고1 때 어떻게든 좋은 팀에 잘 합류하든지, 아니면 직접 내 손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다. 학생부에 한 줄 올리려고 이렇게 안달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고 토로했다.

    동아리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는다. 그때 학생들 스케줄을 확인하고 장소를 섭외하는 일은 리더 아이의 엄마가 맡는다. 최근에는 학교 근처 공부방의 스터디룸을 시간당 2만 원에 1~2시간 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임을 마치면 보고서 작성도 리더 엄마의 몫이다.

    역사탐구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한 학생의 엄마는 “아이들이 각자 토론 내용을 준비하지만, 그걸 취합해 정리하고 손보는 일을 리더 엄마가 한다. 아이들은 학원 숙제에 다른 과목도 공부하느라 동아리활동 내용까지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자사고 동아리활동, 일반고의 7배

    자율동아리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의 자율동아리활동 비율은 전국 고교 평균보다 최대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결국 비교과활동을 입시에 반영하는 학생부 전형을 확대하고 있지만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야 더 유리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학교알리미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생의 자율동아리 참여 비율은 52.8%로 나타났다. 이 중 과학영재학교 학생의 자율동아리 참여 비율은 평균 287.4%로 학생 인당 동아리 3개에 소속된 셈이다. 학교별로는 경기과학고가 380.2%로 전국 평균보다 7.2배 높았다. 그다음으로 서울과학고(340.9%), 대전과학고(313.4%), 대구과학고(250.7%), 광주과학고(151.8%) 순이다.
     
    서울지역 외국어고교(외고)의 자율동아리 참여 비율은 평균 120%에 달한다. 학교별로는 대원외고가 212.2%로 가장 높고 명덕외고(168.8%), 한영외고(128.8%), 이화외고(100%) 순이다. 주요 자사고의 자율동아리 참여 비율도 평균 172.3%로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 민족사관고가 333%로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용인한국외대부속고(293.9%), 현대청운고(157%), 하나고(154.5%) 등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율동아리에 대한 ‘불안감’은 초등생 학부모에게까지 내려오고 있다. 아이가 사립초교 5학년인 한 학부모는 “주변 선배 엄마들의 얘기를 들으면 벌써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지금부터라도 중학교에 올라가 동아리활동을 함께 할 친구들을 물색해야 할 것 같다. 내년에는 입시학원에서 여는 ‘동아리활동 컨설팅’에도 참가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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