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0

2011.06.07

뽀다구 나는 재력과 외모 ‘찌질남’은 어쩌란 말이냐

‘까도남’ 전성시대

  •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입력2011-06-07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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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다구 나는 재력과 외모 ‘찌질남’은 어쩌란 말이냐

    ‘시크릿 가든’의 현빈, ‘반짝반짝 빛나는’의 김석훈,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왼쪽부터).

    까칠한 남자에 대한 흥미는 수년 전 개봉한 ‘B형 남자친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아니, 곰곰이 따져보면 남자들은 원래 까칠하고 무심하며 무뚝뚝한 족속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도 나온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못한다. “그래서 결론은 뭐야?” 남자는 문제에 대해 위로받으려는 여자에게 ‘문제 해결책’을 내세우려고만 한다.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고, 여성은 과정 지향적이다. 남자는 낯선 집단 속에서 자신의 적과 동지를 구분하기 바쁘다. 그 과정에서 계급 상하를 구분 짓는 데도 빠르다.

    여자는 낯선 무리 속에서 만나는 이들을 관계 지향적 관계로 만들고자 할 뿐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받기보다 존경받고 배려받길 원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원한다면, 남자는 여자에게 ‘밥’을 원한다. 남자가 가정에서 유일하게 약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밥’이다. 남자는 집에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 오늘도 세상에 나가 일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집에 와서 말한다. “밥 줘!” 무뚝뚝한 이 한 마디에 아내는 밥을 차려주고 싶다가도 순간 얄미워 밥을 주기가 싫다.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거야?”

    “아니.”



    “그럼, 다른 말 좀 해봐!”

    “아~들은?” “자자!”

    “ㅠㅠㅠㅠ.”

    그런데도 왜 요즘 드라마와 영화에서 ‘까도남’이 뜨는 걸까. 까칠하고 ‘성질 더럽고’ ‘싸가지 없는’ ‘왕재수 덩어리’ 말이다. ‘까도남’의 원래 뜻은 ‘까칠한 도시남’이다. 199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최민수는 ‘야성적 남성성’을 대변했다. 2010년대 이제 남자의 야수성은 모두 거세된 것인가. 남자는 도시에서 자라며 매너와 교양과 문화와 개인주의를 습득했고, 도시의 나르시시즘과 문명의 향긋함과 도시의 ‘쿨함’을 배웠다. 감정에 초연하고 자기애가 강하다. 일에 대해서는 프로의식을 가지지만, 여성에 대해서는 사무적이거나 안티로맨틱하다. 이런 까도남에게 여자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현빈,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차승원 분) ‘반짝반짝 빛나는’의 송승준 편집장(김석훈 분)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런저런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독고진은 까도남 가운데 좀 ‘쩨쩨한 편’에 속한다. ‘현빈’은 책과 미술품을 좋아하는 ‘예술가적 취향’을 가졌다. 송 편집장은 사랑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일에만 열중하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다. 이들의 공통점은 물론 ‘까칠하게 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돈이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상황 판단이 필요할 때 매우 현명하고 단호한 현실 판단력으로 여자를 이끈다는 점이다.

    이 세 요소는 현대 여성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은 돈 많은 재벌 3세다. 하지만 자기 절제력이 강한 데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미적 감각도 지녔으며 단호한 세계관을 가졌다.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에 절대 호감 1%, 대한민국 모든 여자의 연인이다. 그러나 구애정(공효진 분)을 만나 대책 없이 ‘가슴이 제멋대로 뛰는’ 로맨티스트로 분한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송편(송 편집장의 애칭)은 부잣집 아들이면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감정적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그는 한정원을 만나 사랑을 알아간다.

    까도남은 여자의 뭔가를 자극한다.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결핍’과 최고이기 때문에 겪는 ‘외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뽀다구 나는 재력과 외모’가 그것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현빈)에서도 그랬고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공유)에서도 그랬다. 그렇다면 돈 없는 ‘찌질남’은 어쩌란 말인가. 롯데월드 야외마당을 빌릴 재력(‘최고의 사랑’)은커녕, 오디션을 위해 일본으로 전세기를 보내 미국 영화감독을 한국으로 데려올 재력과 인맥(‘시크릿 가든’은커녕 정규직 보장도 받지 못한 20대가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이런 대화는 어떤가.

    남자 : (호탕하고 자신만만하게) 나 4000 받는 사람이야.

    여자 : 아, 연봉 말인가요?

    남자 : (오만하게) 아니!

    여자 : (놀라며) 아니, 그럼 월급이?

    남자 : (더욱 오만하게) 아니!

    여자 : (어리둥절해하며) 그럼 뭐가?

    남자 : (싱겁게 웃으면서) 시급이….

    이러한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달래주기 위해 드라마에는 재벌이 단골 출연한다. 오래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등장하는 자수성가형 인물은 이미 구시대 유물이다. 사회의 계급성이 고착화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을 갖춘 남자, 즉 셋업 된 시스템 안에서 여자는 까칠한 남자의 성격을 즐기고 싶다. 얼마 전 한 재벌 2세의 결혼식장에 입장이 금지된 일반인이 사진을 찍고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적이 있다. 재벌은 우리 시대 또 다른 스타다. 우리 시대 최고의 로망이다.

    대형 마켓에서 피자와 치킨을 얼마나 ‘착한 가격’에 파는지, 중소기업과 하청업자들이 재벌 기업에 얼마나 쩔쩔 매며 그들의 삶을 담보 잡히고 있는지, 현실 속 ‘까도남’이 얼마나 ‘까칠하게’ 장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왜 침묵하는가. 왜 드라마 속 ‘까도남’은 언제나 스마트하고 잘생겼는가. 또한 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여자를 위해 사랑의 로맨티스트가 되는가. ‘스크린’은 허구에서라도 끔찍한 현실에 지친 현대인을 ‘거대한 환상’으로 위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24시간 편의점 알바생의 최저시급은 ‘아직도’ 435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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