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9

2011.05.30

쑥쑥 커가는 젊은 영화감독들

주요 국제 영화제 수상과 초청작 늘어 … 디지털 장비에 한국 영화 호감도 한몫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1-05-30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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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쑥 커가는 젊은 영화감독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국의 젊은 영화감독의 성장이 눈에 띈다. 최근 몇 년간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손태겸, 윤성현, 양효주 감독(왼쪽부터).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 ‘학생 단편 부문’ 수상(손태겸 감독의 ‘야간 비행’).

    3월 이탈리아 코르티소니치 국제단편영화제 | ‘론지난티 특별상’ 수상(김진태 감독의 ‘황혼의 질주’).

    2월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 | ‘단편 부문 은곰상’ 수상(양효주 감독의 ‘부서진 밤’).

    올해 단편영화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감독과 작품 목록 가운데 일부다.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영화감독 또는 영화학도가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초청받는 일이 늘었다. 국내 주요 영화교육기관 가운데 하나인 한국종합예술대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한예종 학생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초청받은 작품 수는 2000년 총 9편에서 2010년 총 41여 편으로 증가했다. 물론 영화제 수상 여부가 좋은 감독과 작품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과 시설, 인력의 상향 평준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젊은 영화감독이 주요 영화제에서 활약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영화교육기관의 교수나 학생은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작품 수준도 전반적으로 올라갔다”고 입을 모았다. 한예종 영상원 김홍준 교수는 “10여 년 전과 비교해 영화교육기관이 늘었을 뿐 아니라, 교육 시설과 인력도 상향평준화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한예종 출신의 양효주 감독은 “학교 측에서 충무로 현장에서 쓰는 장비와 비슷한 수준의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것도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영향을 끼쳤다. 과거에는 고가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학생 처지에서는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필름을 다루는 숙련된 기술도 필요했다. 하지만 다양한 디지털카메라가 쏟아지면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2008년 단편영화 ‘아이들’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윤성현 감독은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필름카메라는 한 번 쓸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실력을 키운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 힘들다. 반면 디지털카메라는 수없이 연습할 수 있다. 또 디지털세대는 스마트폰과 저렴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 일상생활에서도 동영상을 찍거나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만든다. 즉, 비주얼을 만드는 데 익숙한 세대다.”

    과거와 비교해 세계 각국의 영화제 정보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영화제에 어떻게 보낼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영화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주요 영화제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출품하는 태도도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가 들려준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한 감독은 아예 세계 주요 영화제를 목록으로 정리해놓은 뒤 어느 정도 괜찮은 영화제에는 작품을 다 보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 덕에 결국 상을 거머쥐게 된 것 아닐까.”

    영화제 겨냥한 작품 태도는 경계

    쑥쑥 커가는 젊은 영화감독들

    양효주 감독의 영화 ‘부서진 밤’ 중 한 장면.

    영화교육기관에서는 영화제 출품을 지원하는 부서도 따로 마련하는 추세다. 한예종의 경우 배급팀이 학생 작품을 일괄적으로 주요 국내외 영화제에 보내는 일을 맡는다. 배급팀 담당자 오혜란 씨는 “영화제 목록을 사전에 확보해 각 일정에 맞춰 학생들의 작품을 보낸다”며 “학생 개인이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국내외 영화제가 많은 데다, 해외로 작품을 보내는 과정이 까다롭고 영어로 진행해야 해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전했다. 배급팀은 재학생이 영화제에서 수상할 경우 인터뷰 진행이나 저작권 관리도 도와준다.

    영화제에서 초청받거나 수상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는 다시 국제영화제에서 초청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가 다른 영화제에서 좋은 작품을 보고 자신의 영화제에 해당 작품을 초청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젊은 영화감독에게 영화제 수상이나 초청은 어떤 의미일까. 기자가 만난 감독은 하나같이 “좀 더 많은 사람이 내가 만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값지다”고 말했다. 양 감독은 “상금을 받거나 수상을 했다는 사실보다 다양하고 많은 관객에게 내 작품을 보여주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감동”이라고 고백했다. 국내에서는 상업영화가 아닌 단편영화는 개봉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떤 감독에게는 수상 소식이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잘나가는 영화감독이든 신인 영화감독이든 결국 이들에겐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자 바람”이라고 전했다. 특히 영화는 다른 예술과 달리 협업이 필요하고 예산도 많이 드는 편. 그러다 보니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인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 수상 소식은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다음은 정씨가 들려준 한 감독의 사례.

    “어떤 감독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어렵게 영화를 만들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어렵더라도 앞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자’는 동기 부여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제를 겨냥하고 작품을 만드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영화제용 영화는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 영화는 영화제 측에서 먼저 알아본다. 영화제에서 찾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새로운 영화다. 한 번쯤은 속일 수 있겠지만 두 번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 감독의 의견 역시 비슷하다.

    “상을 탔다고 더 좋은 작품은 아니다. 영화제 심사위원의 취향이나 코드에 따라 수상 여부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상하면 응원이 될 수 있고, 다음 작품을 만들 때 좀 더 주목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과 스크린에서 만날 때 가장 의미가 있다. 영화는 대회가 아닌 관객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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