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8

2011.05.23

‘사내하청’ 후폭풍 어찌하오리까?

노동계 “사내하청 줄고 복지 증진” vs 재계 “기업 경쟁력 핵심은 노동 유연성” 논란 계속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5-23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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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하청’ 후폭풍 어찌하오리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의장라인 모습.

    2월 10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이대경)는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울산공장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최병승(전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실 국장) 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대차와 최씨 사이에 파견 근로 관계가 성립하고, 계속근로 기간 2년이 경과해 이미 7년 전인 2004년 2월 현대자동차가 근로자로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

    대법원이 지난해 7월 최씨가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이 위장도급이므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원청회사의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상황이어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법원이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 근로자로 인정하자 노동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대법원 판결 후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논평을 통해 “처음으로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현대차는 이번 판결을 겸허히 수용해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사내하청도 업체가 고용”

    노동계에선 이번 법원 판결로 부적절한 사내하청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근로자가 임금 상승 및 복지 증진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간접고용 규제 강화가 세계적 추세”라며 법원 판결을 계기로 비정규직의 권리 찾기에 적극 나선 상태다.



    이에 뒤질세라 재계에선 “한국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노동 유연성에 달렸다”며 방어에 나섰다. 특히 판결 당사자인 현대차는 해외 유수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산업을 유지, 발전시키려고 노동 유연성 확보에 나선 지 오래라고 주장한다. 이들 해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확보한 노동 유연성의 핵심은 △해고 제한 철폐 △근로자 파견 업종 제한 폐지 △차별적 임금 적용 등이다. 현대차는 한국 역시 노동 유연성을 높이려면 다양한 생산방식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대차는 법원 판결을 뒤집을 목적으로 소송도 준비 중이다. 현대차는 “대법원에 즉각 상고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대차 사내하청이 파견 관계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특히 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근로자 보호’라는 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인위적으로 사내하청 근로자를 직영 근로자로 고용하고 동등한 처우를 강제할 경우, 사내하청 근로자의 노동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진다. 그렇게 되면 사내하청에 대한 기업의 수요 자체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전 산업에서 사내하청 근로자의 근로 시간, 고용 가능성, 근로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일단 현재 2년을 경과한 사내하청 근로자는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직영 근로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고용 안정성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년이 경과하지 않은 사내하청 근로자도 근속 기간 2년을 경과하면 모두 직접 고용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직접 고용 비용 5조4169억 원

    한 대기업 인사노무팀 관계자는 “근속 기간 2년 이전에 해고당할 경우 사내하청 근로자 간에도 근속 기간에 따라 고용 안정성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며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복지 증진을 바라는 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가 퇴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재계는 이번 판결로 노동 유연성이 악화해 노동비용이 급증할 것을 우려한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박사는 현대차 사내하청 관련 대법원 판결의 파급 효과를 분석한 ‘사내하청 근로자 직접 고용의 경제적 비용과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법원이 사내하청 근로자의 직접 고용과 동일 처우를 강제할 경우 예상되는 고용의 변화와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분석을 담았다.

    이 보고서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내하청 근로자를 직영 근로자로 고용할 경우 첫해에만 약 5조4169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상용 근로자 10인 이상 기업의 근로자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386만6000원)을 기준으로 약 11만6764명의 근로자를 1년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11만6764명의 근로자는 2010년 증가한 취업자 수(32만3000명)의 36.1%, 2001~2010년 평균 취업자 증가 수(26만7000명)의 43.7%에 해당한다.

    자동차산업만 보더라도 직접 고용 첫해에만 약 4033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용 근로자 10인 이상 기업의 근로자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386만6000원)을 기준으로 약 8694명의 근로자를 1년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기업으로선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장 자동화나 공장의 해외 이전 등을 통해 노동비용을 줄일 소지가 크다. 노동비용 상승에 의한 고용 위축(노동 비용 상승→노동 수요 감소→고용 위축)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노동시장이 경직돼 인력 조정이 어려워지면 사용자는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정규직에게 연장 근무를 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재계 관계자는 “사내하청의 정규직화가 현실화할 경우 비용 증가로 기업의 부담이 커지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초래해 고용이 위축되고 그 결과 국제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재계에선 사내하청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고용계약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형태의 고용계약을 허용하는 세계 각국의 노동시장 정책을 감안하면 한국의 노동시장 정책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 기업이 국내 일자리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노동조합도 정규직의 과도한 고용 보호를 완화해 좀 더 많은 이의 정규직 취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기아자동차 관계자는 “정부와 노동계는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를 강화해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 아니라, 사내하청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고용계약을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수요가 있는 곳에 일자리가 생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지금은 신규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사정이 다양한 고용 형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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