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2011.05.16

십자가 시신은 부활하지 못했다

문경 김모 씨 사망 갈수록 미스터리 … “교회 밖의 일 vs 자정 작용 키워라” 논란 확산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5-16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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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시신은 부활하지 못했다

    십자가 시신이 발견된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골고다 언덕을 닮은 폐채석장.



    ‘십자가 시신’은 성화(聖畵)에 묘사된 예수의 죽음과 유사했다. 5월 1일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한 폐채석장에서 전직 택시기사 김모(58) 씨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채 발견됐다. 발견자는 폐채석장 아래 마을에 사는 전직 목사 주모 씨와 양봉업자 2명이었다. 주씨는 “멀리서 봤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을 재현한 마네킹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예수의 죽음은 ‘성경’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등에 나와 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로마군은 가시관을 엮어 예수 머리 위에 씌웠고 홍포를 벗긴 뒤 채찍질을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뒤에도 죽지 않자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푯말을 붙이기도 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주씨가 김씨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김씨의 양손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고 두 발은 십자가 앞쪽에 놓인 나무판에 못 박혀 있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식칼에 찔린 상처가, 머리 위에는 가시면류관이 있다. 예수와 함께 매달린 강도를 상징하는 작은 십자가가 양옆에 놓여 있고, 발아래에는 채찍 형태의 물건이 놓여 있다. 예수의 죽음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 주씨는 김씨가 생활한 인근 천막에서 푯말을 흉내 낸 골판지까지 발견했다. 김씨의 사망 추정 시각도 4월 24일 부활절이다.

    폐채석장도 성경에 묘사된 돌무덤 골고다 언덕과 닮았다. 깎아놓은 듯한 절벽이 사건 현장을 둘러싸고, 돌덩이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과거 돌을 나르던 운전기사가 브레이크 파열로 숨진 이곳은 차량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을 만큼 외지고 험해서 굳이 찾지 않으면 올 수 없는 곳이다. 현장에 동행한 마을주민은 “밤이 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곳이다. 멧돼지, 고라니 등 산짐승도 다니는 이곳에서 어떻게 밤을 지새웠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성경과 다른 점이 있다면 김씨는 사흘이 지나도록 부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자살, 타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살, 타살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정황상 혼자서도 범행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십자가 설계도와 자살 계획이 적힌 종이, 문경 시내 폐쇄회로(CCTV), 김씨의 통화 기록에 제3자가 없는 점, 상황 재연 실험 결과 등을 들어 단독 자살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김씨가 어떻게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세우고 스스로 손과 발에 못질을 할 수 있었는지 등 각종 의혹이 명백하게 해소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통증은 주관적이다. (십자가에 못 박는) 자살이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불가능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죽음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최초 발견자 주씨다. 김씨는 2년 전 주씨의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와 궁기리에서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주씨는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이디는 ‘시해선(屍解仙)’으로 ‘시체가 그 죽음에서 해방돼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그의 홈페이지와 카페 소개 글에는 ‘종교 속에서 길을 잃고 영생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성경과 그리스도 예수가 말하는 부활영생의 길’이라고 적혀 있다. 이를 두고 한 개신교 목사는 “주씨는 교회를 부정하는 등 정상적인 개신교 신자가 아니다. 이단의 냄새도 난다”고 말했다.

    주씨는 “다양한 사람이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와 종교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김씨도 그중 한 사람일 뿐이다. 당시 종교와 관련해 대화를 나눴지만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그만뒀다”고 해명했다. 그는 2년 전 김씨를 만났던 기억, 그가 추측하는 사망 방법, 현장 사진 등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부산장신대 신학과 탁지일 교수는 “주씨의 홈페이지를 보면 김씨는 기독교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교회를 비판하고 개혁을 꾀하는 종교 다원주의 성향도 보인다. 개신교 측에서는 무교회를 주장하는 주씨가 불편할 수 있지만 이단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독교와 결부시키지 말라”

    잔혹한 범행수법과 관련해 사이비종교 또는 이단 단체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1987년 32명이 집단 자살한 오대양 사건과 비슷하다는 것. 일부 개신교인은 “정통 교회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사이비종교 단체가 그에게 영향을 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씨 주변인이 “김씨가 광적으로 종교에 심취했었다”고 증언한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 종교 전문 매체 관계자는 “이단의 특징 중 하나가 육체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다. 지금 활동하는 사이비종교 및 이단 단체의 수장 중에는 자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주장하면서 부활하겠다고 무덤까지 만들어놓은 경우도 있다. 작은 기도원에 모인 사이비종교인은 부활할 수 있다며 시신을 유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경경찰서 김용태 수사과장은 “아직 특정 종교와의 연관성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한 사이비종교 및 이단 단체의 포교활동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에는 사이비종교 및 이단 단체가 종교 수장을 두고 체계적인 조직을 꾸린 뒤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소규모로 활동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접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에 참가한 경찰도 “김씨가 스마트폰으로 예수, 못, 죽음을 검색하면서 인터넷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검증되지 않은 종교 단체들이 근거 없이 기성 교회를 비판하고 자신들의 이론을 그럴싸하게 인터넷에 올린다. 삶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이런 자료에 접근한다면 현혹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개신교는 여러 교파로 나뉘어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는 탓에 사이비, 이단을 규제할 권위 있는 기관이 없는 실정이다.

    자살로 결론이 난다면 김씨가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볼 여지도 커진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박용규 교수는 “십자가 고난 주간에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는 흔하다”고 말했다. 예수의 죄를 체험하려다 극단적으로 동일시한 나머지 신비주의, 열광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다. 한 법의학자는 “자살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심하게 망가뜨리거나 난자한 뒤 자살하는 경우는 지금껏 없었다. 주저흔도 없을 정도니 정신상태가 분명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어떤 영적인 힘에 이끌려 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개신교계는 “김씨가 예수와 동일시했다”는 추측을 불편하게 여긴다. 한 이단 전문 목사는 “김씨는 남을 위해 죽은 예수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했다. 이는 한 개인의 잘못된 정신의 표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교회언론회도 성명을 발표해 “(김씨 죽음의) 정당성은 인정받을 수 없다. 신앙이나 구원과도 상관없는 일이다. 특정 종교를 조롱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탁 교수는 “교회 안에서 반성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충격적 사건은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사이비종교 및 이단 단체의 문제가 확산되는 경우는 교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개인이나 단체의 열광주의, 신비주의가 교회 안에도 있다고 보고 교회 내부의 정체성을 살피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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