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2011.05.09

빨랫줄 송구에 ‘악’ 보살(補殺)은 아무나 하나

홈 승부로 주자 잡아 상대팀 흐름 끊기…추신수 보살 능력 ML에서도 발군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1-05-09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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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초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전에서 같은 일본인인 마쓰이 히데키를 ‘보살(補殺)’ 처리한 시애틀의 스즈키 이치로는 “내가 마쓰이였다면 뛰지 않았을 것”이라며 “송구도 그냥 평범했을 뿐”이라는 냉정한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얼마 뒤 클리블랜드 우익수 추신수는 ‘한 이닝 2보살’이라는 보기 드문 진기록으로 메이저리그 4월 마지막 주간 최대 이슈를 만들어냈다.

    ‘한 이닝 2보살’ 진기록 세워

    축구에서 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시스트다. 어시스트는 결정적인 순간 공격수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선수에게 주는 공격 포인트다. 야구에도 어시스트가 있다. 이를 흔히 ‘보살(補殺)’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죽이는 데(殺) 도움을 주다(補)’라는 뜻이다. 불교 용어인 ‘보살(菩薩·위로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과는 소리가 같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최근에는 보살을 ‘아웃도움’으로 풀어쓰기도 한다. 보살은 실책 없이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도록 송구를 연결하거나, 공의 진로를 변경하는(deflect) 야수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공을 최종적으로 받아 타자나 주자를 아웃시키는 것은 ‘풋아웃(Put Out)’이라고 한다. 풋아웃은 자살(刺殺·아웃실행)이라고도 표현한다.

    예를 들어, 타자가 친 땅볼을 잡은 유격수가 1루수에 송구해 타자를 아웃시켰다면 유격수에게는 보살이 주어지고, 1루수에게는 풋아웃이 기록된다.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6-4-3 병살타’의 경우, 2루수는 공을 전해 받아 1루 주자를 2루에서 포스 아웃시키고, 1루에 공을 던져 타자도 아웃시키는데, 이때 2루수는 풋아웃과 보살을 각각 1개씩 기록하게 된다. 단순해 보이는 보살도 더 파고들면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런다운 플레이가 벌어져 주자를 아웃시켰을 때 이 플레이에 가담한 수비수들이 여러 번 송구하거나 공의 진로를 변경했더라도 보살은 1개씩만 기록된다.



    4월 25일 추신수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의 타깃필드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원정경기에서 한 이닝에 2개의 보살을 기록했다. 3회 말 1사 1, 2루에서 제이슨 쿠벨의 우익수 앞 안타 때 홈으로 내달린 2루 주자 알렉시 카실라를 횡사시켰고, 2점을 내준 뒤 이어진 2사 2루에서 후속 타자가 안타를 치자 홈으로 쇄도하던 저스틴 모노까지 아웃시켰다. 추신수의 송구는 두 번 모두 한 치 오차도 없이 포수 루 마슨의 미트에 꽂혔다.

    앞에 예로 든 유격수의 경우처럼 내야수는 한 번의 송구로 1보살·1자살을 동시에 기록하기도 하고, 한 이닝에 2보살을 기록할 때도 많지만 외야수는 보살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클리블랜드 구단 역사상 외야수가 한 이닝에 2개의 보살을 기록한 것은 추신수가 처음이다.

    추신수는 “공을 던져 주자를 잡는 것은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외야수의 보살은 2루타성 안타에 3루까지 달려가는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경우에도 나오지만, 대부분 홈 승부에서 연출된다. 보기 드문 만큼 외야수 보살의 위력은 대단하다. 결정적 순간에 상대팀의 흐름을 끊고 아웃카운트를 하나 만든다는 점에서 홈런 못지않은 값어치가 있다. 2010년 미국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가운데 보살 1위의 주인공은 바로 추신수였는데, 그는 한 시즌에 14개의 보살을 만들어냈다.

    야구는 한 루를 더 가기 위한 싸움이다. 외야수가 레이저 빔 같은 총알 송구로 주자를 잡으면 경기 분위기를 단번에 바꿀 수 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미국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8강 라운드 3차전에서 선발 박찬호는 2회에 사토자키에게 적시타를 허용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우익수 이진영이 홈 송구로 이와무라를 아웃시켜 살아난 예가 있다.

    지난해까지 3년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 역시 보살을 많이 기록한 선수다. 2009년 19개 보살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던 가르시아가 수비수 자리에 서면 어지간한 희생플라이 상황에서도 3루 주자는 홈으로 뛰지 못했다. 그는 안타성 타구를 ‘우전 땅볼’로 둔갑시키며 타자를 1루에서 잡는 ‘진기명기’도 종종 연출하곤 했다. 한국 프로야구 외야수의 한 시즌 최다 보살은 1998년 심성보(당시 쌍방울)가 기록한 20개다.

    강한 어깨에 순간적 판단 필요

    외야수가 보살을 기록하려면 추신수나 가르시아처럼 강한 어깨가 필수다. 시애틀의 이치로 역시 강견(强肩)으로 빼어난 보살 능력을 갖췄지만, 서른여덟이라는 나이 탓에 예전만큼 못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보통 주자가 한 루 사이를 뛰는 데는 3.5~ 4.0초 걸린다. 대부분 70m 안팎을 송구하는 외야수는 이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하지만 강한 어깨만으로는 주자를 잡을 수 없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공이 왔을 때 정확한 송구 동작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타구 방향과 공을 잡는 위치’ ‘공을 잡을 때의 풋워크’ 등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추신수는 여기에 세 가지 능력을 더 갖추고 있다.

    바로 ‘빠른 동작(quick release·글러브에서 공을 빨리 빼는 것)’과 송구의 정확도(accuracy), 송구의 속도(velocity)다. 추신수가 지난해부터 “타격에서는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이치로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 세 가지에 있다. 추신수가 던지는 공은 일직선으로 가면서도 그라운드에 닿기 전에 백스핀이 걸려 더 멀리, 그리고 더 정확히 날아간다. 메이저리그의 한 스카우터는 추신수의 송구 능력을 “똑바로 날아가다 마지막에 폭발하는 조나단 파벨본의 강속구와 같다”고 평가했다. 파벨본은 최고 90마일 후반대의 강속구를 뿌리는 보스턴의 마무리 투수다.

    추신수 송구의 열쇠는 그립(볼을 잡는 법)에 있다. 추신수는 공을 잡고 스핀을 줄 때 투수와 같은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는다. 포심 패스트볼은 높고 직선 경로로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외야수의 송구가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가라앉는 것과 달리,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고 던지는 추신수의 송구는 그가 마음먹은 대로 정확히 포수 미트에 꽂힌다.

    클리블랜드 매니 악타 감독은 “추신수의 존재만으로도 상대팀 3루 베이스 코치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고, 클리블랜드 스티브 스미스 주루 코치는 “내가 본 외야수 가운데 최고의 팔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있어 그의 보살 능력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살이 갖는 매력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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