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부활投 BK “올 시즌 일낸다”

일본 라쿠텐 김병현 시범경기서 호투 … 제2의 ‘임창용 신화’ 가능성 충분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1-03-07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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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投 BK “올 시즌 일낸다”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의 김병현이 오키나와 온나의 아카마 구장에서 피칭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풍운아’란 별명이 붙은 김병현(32). 그가 3년의 공백을 딛고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4년 만의 프로무대 복귀에 대한 우려의 시선과, 천재로 인정받는 재능과 반항 이미지를 접고 적응에 힘을 쏟는 그의 변신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공존한다.

    누구보다 굴곡 많았던 야구 행보

    김병현은 성균관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계약금 225만 달러를 받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으며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그해 5월 30일 메이저리그에 승격하자마자 뉴욕 메츠를 상대로 세이브를 따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동양에서 온 왜소한 체구의 잠수함 투수 볼에 빅리그의 내로라하는 타자가 잇따라 나가떨어졌다. 2003년 시즌 중반 보스턴으로 이적할 때까지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 투수였다. 특히 2002년에는 8승3패 36세이브, 방어율 2.04를 기록하는 절정의 기량으로 애리조나를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이끌고 결국 우승 기쁨도 맛봤다. 한국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소유한 이는 그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던 ‘선발 투수에 대한 동경’은 자주 감독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저니맨이란 불명예를 안겼다. 보스턴을 거쳐 콜로라도에서 3년을 뛴 김병현은 2007년 선발 투수로 플로리다~애리조나~플로리다로 옮기며 여러 번 짐을 쌌다. 2007시즌 10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해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듬해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방출됐고,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스프링캠프에 다시 참가했지만 역시 좌절을 맛보고 말았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거부하고 미국 독립리그인 오렌지카운티에서 뛰며 3승1패, 방어율 2.56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라쿠텐 입단 테스트를 받았던 김병현은 올 1월 중순 다시 일본에 들어가 두 번째 테스트를 받았다. 1월 15일 센다이의 ‘K스타 미야기 구장’ 불펜에서 다부치 고이치 수석코치, 사토 요시노리 투수코치 등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 앞에서 40개가량의 볼을 뿌렸다. 당시 라쿠텐 관계자들은 “공회전이 좋고 공이 무겁다. 팔로만 던지는 게 아니라 몸을 이용해 피칭한다. 오래 쉰 선수가 이 정도면, 제대로 훈련하고 완전히 몸을 만든 뒤 던지면 어느 정도겠는가”라며 합격 판정을 내렸다.

    입단 조건은 계약금 포함 연봉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용병 최저연봉 수준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라쿠텐 유니폼을 입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빅리그에서 언더핸드로 시속 150㎞를 넘나드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뿌리며 한때 박찬호(현 오릭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뛰었던 화려한 경력이 일본 무대에 서게 된 가장 큰 밑천이었다.

    뚜렷한 마무리 투수가 없어 고민하던 라쿠텐에 빅리그 통산 54승 86세이브를 거둔 김병현은 ‘매력적인 카드’였다.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소화한 경험도 있는 그가 라쿠텐에 입단하자 일본 언론은 ‘라쿠텐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고 흥분했다.

    일 언론 “주전 마무리 꿰찰 것”

    구단의 호평 속에 메디컬 테스트도 통과한 김병현은 1월 25일 라쿠텐 입단이 공식 발표됐다. ‘야구만 할 수 있으면 돈은 상관없다’는 김병현의 의지에 따라 계약 조건을 놓고 이렇다 할 줄다리기도 없었다. 기존에 알려진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김병현이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를 보이자 라쿠텐은 감탄했다. 궁금한 점을 자주 묻는 등 김병현이 ‘배우려는 자세’를 보인 것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스프링캠프 초반부터 꾸준히, 그리고 열성적으로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김병현에게 큰 힘이 되는 이는 투수 조련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사토 투수코치. 그는 김병현의 전담코치처럼 붙어 다니며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고 있다. 사토 코치는 니혼햄 시절 일본 최고 투수로 꼽히는 다르빗슈를 키워낸 주인공이다. 김병현 역시 “미국에서 처음 부진을 겪었던 2004년,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던지다 부상이 악화됐고, 밸런스가 차츰 무너졌다. 그때는 이렇게 툭 터놓고 말할 상대가 없었다. 만일 누군가 있었다면 이렇게 망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사토 코치에 대한 믿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김병현의 성균관대 1년 후배인 삼성 포수 현재윤은 “(김)병현이 형은 반드시 재기한다. 왜냐하면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그는 ‘노력하는 천재’로 변신했다. 3년간 제대로 야구를 하지 못했지만 집중적인 연습과 노력으로 그간의 공백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김병현은 2월 26~27일 이틀 연속 주니치, 니혼햄과의 시범경기에서 각각 1이닝 무실점의 쾌투를 펼쳤다. 당초 계획보다 빠른 실전 등판이었고, 더구나 이틀에 걸친 연투였지만 그는 강력한 첫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다. 일본 언론은 이제 “김병현이 마무리를 꿰찰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소방수 자리를 다툴 사회인 야구 마무리 출신 우완 미마 마나부의 초반 부진과 맞물려 그의 마무리 기용론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범경기가 한창인 가운데 차츰 컨디션을 되찾고 있는 김병현에게 앞으로 한두 번 고비가 찾아올지 모른다. 때론 시행착오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3년 공백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시간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틀에 걸쳐 200개의 불펜 피칭을 하는 등 과거 실력을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2007시즌이 끝난 뒤 삼성에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야쿠르트로 깜짝 진출, 이제는 일본 프로야구 대표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한 임창용. 그는 일본 무대 첫해 33세이브를 올린 뒤 28세이브(2009년)→35세이브(2010년)를 기록해 일본 통산 100세이브에 단 4개를 남겨두고 있다.

    김병현과 임창용은 비슷한 점이 많다. 광주진흥고 출신인 임창용은 광주일고를 나온 김병현보다 2년 선배다. 둘 다 어렸을 때부터 역동적인 투구폼을 가진 잠수함 투수로 볼 끝이 좋은 강속구를 던지고, 타자와 과감히 정면승부를 벌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임창용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마무리로 성공시대를 열다 둘 다 시련을 겪었고, 또 다른 성공을 위해 일본에 진출했다는 공통분모도 갖고 있다.

    수술 후 내리막길을 걷던 임창용이 일본에 진출했을 때, 당시 삼성 사령탑으로 그를 지도했던 선동렬 감독조차 그의 성공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첫해 3300만 엔(약 4억5400만 원)으로 김병현과 비슷한 헐값을 받고 일본에 둥지를 튼 임창용은 그러나 보란 듯이 재기해 정상급 마무리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말에는 3년간 총액 15억 엔(약 206억 원)이라는 거액 계약까지 성공시켰다.

    김병현은 ‘제2의 임창용’이 되길 꿈꾼다. 수많은 이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믿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김병현이기 때문이다.

    부활投 BK “올 시즌 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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