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2

2011.01.24

순수한 야구 열정, 흥행 홈런 날리나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1-01-24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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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과도 같은 세상을 그린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이런 말도 가능할 것 같다. 강한 놈이 오래 찍는 게 아니라 오래 찍는 놈이 강한 놈이다. 강우석 감독은 강한 감독이기도 하지만 오래 찍어 강한 감독이다. 비난이 아니라 칭찬의 의미다. 1988년 데뷔 이후 20여 편의 작품을 감독하거나 제작한 강 감독은 그때그때 흥행의 적시타를 날려주었다. 강우석은 이미 한국영화사에서 한 줄 이상의 의미를 차지한다.

    영화 ‘글러브’는 왕년의 강우석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 영화가 휴머니즘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코믹멜로 드라마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글러브’는 가족용 상업영화라는 점이다. ‘글러브’는 강우석이 영화 ‘이끼’ ‘공공의 적’을 통해 그려낸 세상과 전혀 다른, 조금은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글러브’는 야구 영화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청소년 야구, 장애인 야구를 다룬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과 장애인의 결합은 ‘글러브’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국가대표’를 잇는 스포츠 휴머니티 드라마가 될 것을 짐작게 한다. 한국형 스포츠 드라마의 전형을 제시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국가대표’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나뉘는 스포츠의 세계를 아름다운 루저 드라마로 각색해냈다. ‘글러브’는 이 전형을 잘 변주했을 뿐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휴머니티가 더 강해진다. 영화는 충주 성심학교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글러브’는 남성적 연대와 우정에 호소한다. 무협지의 세계처럼 ‘글러브’ 안에는 이상적인 남성 연대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은 스승에게 무조건적 신뢰를 보내고, 어른들은 손익계산을 버리고 아이들의 순정에 눈을 맞춘다.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친구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남자는 어른이 돼서도 친구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 야쿠자나 조폭의 세계에서 보아왔던 힘의 논리가 아닌 믿음,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헌신이 ‘글러브’에 담겨 있다.

    ‘청각장애인 야구부가 장애를 딛고 1승을 위해 매진한다’라는 이 뻔한 스토리라인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러브’는 이 한 문장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우직하게 달려나간다. 2시간 이상의 러닝타임 동안 오직 ‘야구’만을 바라본다. 야구부원 개개인의 삶을 신파조로 담아내지 않는다. 오로지 야구를 위해 만나고, 뭉치고, 싸우고, 눈물 흘린다.



    만약 ‘글러브’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이 순정 덕분일 것이다. 2010년 우리 영화계는 순정 없는 세상, 뒤돌면 칼을 꽂는 비정한 남자들의 세계에 주목했다. 믿을 사람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절박한 생존의 세계, 그곳이 바로 영화 속 우리의 삶이었다.

    하지만 ‘글러브’ 속 아이들과 코치 김상남(정재영 분)은 이 세상이 살 만하다고 말해준다. 우승이 아니라 1승을 위해 순정을 바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세상은 맑고 투명하다. 비록 그곳이 1급수 청정수역처럼, 이제는 거의 없는 곳이긴 하지만 말이다.

    순수한 야구 열정, 흥행 홈런 날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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