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2011.01.17

한국노총 후보들 선명성 경쟁 왜?

위원장 선거 3파전 열띤 정책 공방 … “정책연대 파기” 노동운동 변화 부르나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1-17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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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 후보들 선명성 경쟁 왜?
    1월 25일 치러지는 제23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임원선거)에 노동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출마한 3개 팀 중 ‘절대 강자’가 없는 데다 선거인단도 2700여 명에 달해 어느 때보다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것. 대의원 간접선거 방식이었던 지난 21대 선거는 대의원 400여 명만이 참여했고, 22대 선거부터 선거인단 투표가 시작됐지만 단일후보여서 이토록 치열한 공방은 없었다.

    한국노총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번 선거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한국노총은 2007년 12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선언했지만, 대선에 이기고도 2008년 총선에서 4명의 국회의원밖에 배출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더욱이 이용득 전 위원장 등 유력인사가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한나라당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졌다. 2010년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 관련법)이 통과되면서 제22대 장석춘 위원장을 향한 불만과 분노의 목소리가 커졌다.

    2700여 선거인단이 25일 선출

    이처럼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감소와 노조 관련법의 통과 저지 실패로 전임 집행부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노조원들이 신임 집행부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 내에서 “지금이 한국노총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흘러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다. 한국노총 전 간부는 “한국노총은 정치권에 이용만 당하다 ‘팽(烹)’됐고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위원장에 따라 한국노총이 살아나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가 결정된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선거는 한국노총 내 세력 지각변동뿐 아니라 노동운동 전반, 노정관계에까지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제23대 임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조(위원장-사무총장 후보, 기호순)는 김주영-양병민 조, 문진국-배정근 조, 이용득-한광호 조 등 총 3팀이다. 기호 1번 김주영(49)-양병민(51) 후보조는 1월 6일 출정식에서 “한국노총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 인물은 젊고 패기 넘치는 김-양 콤비”라고 말했다. 김주영 위원장 후보는 2002년부터 한국전력 노조위원장을 맡아 2008년 한국전력 자회사와 출자회사의 민영화를 막았다. 한국전력 비정규직 노동자 1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한국 최초의 콜센터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다.



    1997년 서울은행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후 금융계의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양병민 사무총장 후보는 현재 전국금융산업 노조위원장이다. 금융권에 대량해고 및 강제합병 바람이 몰아치던 외환위기 이후 명동파업을 주도했고 한미은행 파업을 이끈 주인공이다. 조민근 전국의료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은 “양병민 후보는 2010년 장석춘 현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동법 합의안을 발표했을 때, 가장 먼저 집행부 사퇴서를 낸 인물”이라고 말했다.

    기호 2번 문진국(61)-배정근(52) 후보조는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후보”라고 자평한다. 문진국 위원장 후보는 현재 전국택시노조연맹 위원장이다. 30여 년간 택시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1998년 서울 택시의 월급제 정착을 위해 단식투쟁을 한 전력이 있다. 배정근 사무총장 후보는 현재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타임오프제와 복수노조를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고 가장 먼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선언을 한 ‘강경파 운동꾼’이다. 이인섭 전국공공노조연맹 상임부위원장은 “30만 택시운전사의 마음을 알고 보듬어주는 문진국 후보와 대쪽 같은 배정근 후보가 하모니를 이뤄 한국노총 재건에 앞장설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기호 3번 이용득(57) 위원장 후보는 이미 제21대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냈던 인물로 언론에도 잘 알려져 있다. 2000년 금융노조 총파업을 주도해 옥살이를 하기도 한 이 위원장 후보는 위원장을 역임하던 당시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확립에 앞장섰지만 예상과 달리 비례대표로 선정되지 못해 충격을 줬다. 그는 2008년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나도 속고 한국노총 조합원도 속았다. 정책연대를 제안하고 추진한 것은 바로 나인데 공천을 받지 못했다”며 장석춘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위원장 후보는 2010년 12월 “한국노총 선거에 나서기 위해 연봉 3억5000만 원을 받던 우리은행에 사표를 내고 연봉 2400만 원의 주차관리원으로 ‘위장취업’ 했다”는 자격 및 도덕성 시비가 붙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용득 후보 측은 ”노동 현장에 유능한 전 위원장이 돌아와 현 위기를 타계해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있었고 그를 위해 이 후보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러닝메이트’ 한광호(53) 사무총장 후보는 전국화학노조연맹 위원장으로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을 지냈다.

    공약 큰 틀 같지만 세부 내용서 차이

    이번 선거에서 세 후보 공약의 ‘큰 그림’은 ‘대동소이’하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타임오프 등 노조법 전면 재개정 △한국노총 개혁 등이 그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노동 현장의 목소리는 하나다. 공통의 목표를 누가 더 잘 이뤄낼 수 있는지의 문제다. 결국은 ‘인물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 후보 역시 선거운동에서 공약보다는 참신함(김주영 후보, 문진국 후보)과 노련함(이용득 후보) 등 인물 색깔을 앞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공약의 큰 틀은 같지만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김주영 후보는 “당선이 되면 당선자 소감을 통해 정책연대를 파기하겠다”면서도 “결국 법개정은 정치를 통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과 정치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시민단체나 정당 등 우리의 목표에 공감하는 단체라면 연대를 검토할 수 있다”고 타협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즉, 기존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파기하더라도 정치권과 힘을 합칠 수 있는 문은 열어놓겠다는 얘기다.

    한편 문진국 후보는 “임기 중 한국노총 모든 위원의 정계 불출마와 임기 절반 후 중간평가 및 재신임에 대한 규약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이용득 후보는 “지금이야말로 ‘강한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내가 위원장이던 때는 한국노총은 물론이고 민주노총과 정부, 사용자 단체를 주도해 어느 때보다 위상이 높았다. 강한 리더십으로 정부를 밀어붙이기엔 이용득이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노동계 일각에선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파기’가 또다시 ‘공염불’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카드’를 제시한 것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9년 한국노총은 노조법 개정을 앞두고 “정부가 독단적으로 법개정을 하거나 고시를 강행할 경우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는 물론이고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결국 정부와 합의하고 정책연대 파기를 철회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정책연대는 사실 대선에서만 영향력이 있었을 뿐 실효가 다했으므로 큰 의미 없다”며 “새로운 위원장은 단순히 ‘정책연대 파기’를 넘어 어떻게 하면 한국노총이 기존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정치권을 이용해 노조법 재개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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