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2011.01.10

샤넬 가방보다 더 좋은 책 읽기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1-10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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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넬 가방보다 더 좋은 책 읽기

    김연수 지음/ 마음산책/ 224쪽/ 9000원

    직장인 문모 씨의 이상형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문씨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삼은 죄로 매력적인 외모에도 몇 년째 솔로다. 문씨가 소개팅 자리에 나가 책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상대방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공습 속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간다. 결국 문씨는 일요일마다 운명적 상대를 만나기 위해 대형 서점을 헤맨다. 사랑하는 사람과 읽은 책의 감상(感想)을 나누고 싶다는 문씨의 ‘소박한 꿈’은 ‘샤넬’의 가방처럼 마냥 사치스럽기만 한 것일까. 문씨 같은 책벌레에겐 소설가 김연수의 신작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이 ‘딱’이다. ‘빠이, 이상’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쓴 저자는 소설 49편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책에는 저자가 고른 ‘설국’ ‘그리스인 조르바’ ‘남한산성’ 등 소설의 일부분과 저자의 감상이 담겨 있다.

    독자는 각 소설에서 저자가 발췌한 부분과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대목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을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구절이 새롭게 읽히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소설 중 읽지 않은 것은 ‘읽을 독서 목록’에 추가해두면 좋다. 저자의 세심한 배려 덕에 일부분만 읽어도 소설의 전체 분위기가 그려지면서 읽지 못한 부분을 읽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다.

    더 큰 재미는 저자의 짧은 ‘감상문’이다. 이미 저자는 전작 ‘청춘의 문장들’에서 젊은 날 자신이 겪은 혼란과 그 시기를 버티게 해준 책 이야기를 담아 독자를 사로잡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좀 더 짧은 글로 명쾌하게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나는 아래 문장에 밑줄을 쳤다. 사람 고기를 먹은 쓰카타 씨의 이야기가 담긴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고 쓴 저자의 감상 부분이다.

    “가능하면 편애하려고 노력합시다. 모든 걸 미적지근하게 좋아하느니 차라리 편애하고, 차라리 편애하는 것들을 하나둘 늘려가도록 합시다. 편애한다는 건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를 무조건 지지하는 일이에요. 다들 콩꺼풀을 준비하세요.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합시다.”

    어디 가서 ‘우리가 보낸 순간’을 잘 읽었다고 소문내려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 무언가를 매일같이 써야 한다. 저자는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이란 글로 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결국 이 책은 좋은 소설을 읽고 자기 경험에 비춰 문장들을 되새기고 직접 자신이 글을 써보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매일 글쓰기를 한 덕에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고 말한다. 매일 읽고 쓰는 소박한 실천이 우리를 샤넬 가방보다 빛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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