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법 세우고 표 모으는 ‘근혜 파워’

2012년 대선 유력 후보 ‘박근혜 현상’ 분석

  • 입력2010-12-13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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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정국까지 이제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19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예비후보들 간 물밑 전쟁은 막이 올랐다. 대권후보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가장 주목을 끄는 정치인은 역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대권후보군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체제를 굳힌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박근혜 신드롬’으로까지 평가한다. 박 전 대표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과연 박 전 대표가 다음 권력을 차지할 수 있을까.

    국내 진보 및 중도적 성향의 486 정치분석가들이 그 해답을 찾아 나섰다.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과 김헌태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김종욱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등 5명이 ‘박근혜 현상’의 원인을 정치구조와 여론,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을 놓고 분석해 조만간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제목 역시 ‘박근혜 현상’(위즈덤하우스)이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이나 친박 성향 인사가 아닌 비판적 진보 및 중도성향의 정치분석가들이 최대한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분석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주간동아’는 책 원고를 미리 입수해 발췌 공개한다.


    ▶ 김헌태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지켜주고 싶은 대통령의 딸 박정희 그림자 여전



    우리가 ‘박근혜’ 현상을 이해하려면 대중이 그를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로 수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타난 첫 번째 경력은 ‘1974~1979년 퍼스트레이디 대리’다. 이런 등장은 그의 정치적 자산이기도 하지만 족쇄로 작동할 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굵은 캐릭터들에 비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여전히 ‘여리고, 안쓰러운, 비운의, 지켜주고 싶은’ 대통령의 딸일지 모른다.

    박 전 대표는 혼자인 것이 자연스럽다. ‘나는 조국과 결혼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독신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또 그것은 그가 타자에 대한 수평적 위치를 허용하지 않는 ‘고결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반대로 대개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그와 악수를 하고 있는 남성 정치인들을 보면 구태의연하고, 음모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그 어느 대선주자보다도 서민과 밀착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서민적 지지를 설명하는 접근 중 하나가 대중과의 ‘동질화’ 과정이다. 그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장점과 결함을 가진 인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의 딸로서, 퍼스트레이디 대리로서 끊임없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재현’돼왔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서민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모습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 누구보다 서민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은 미소, 그 어느 대선주자보다도 서민 속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바로 박 전 대표다.

    법 세우고 표 모으는 ‘근혜 파워’
    박 전 대표에게 다가가는 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건너뛸 수는 없다. ‘박정희 담론’은 확장과 수축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박정희 가치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또는 그와 같은 세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대중은 갈수록 줄어든다. 더욱더 위협적인 것은 ‘박정희 가치’를 복제했던 또 다른 인물, 즉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이라 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모두가 더 잘 살던 시대에 대한 향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에 이르러 사실상 해소와 소멸의 방향으로 전개돼왔다.

    박 전 대표의 정치적 담론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영애 박근혜’ ‘선거의 여왕’ ‘수첩공주’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어 다니지만, 그의 정책에 대한 가치비전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정책이나 정치 담론 속에 나타나는 가치관을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5월 6일 스탠퍼드대 초청연설의 내용을 한번 보자. 먼저 이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미국 담론은 한미동맹, 모미(慕美)주의, 보은주의 등이 눈에 띄는 대목으로 미국에 대한 강력하고 긍정적인 가치 부여를 중심으로 그의 미국 담론이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미국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전통적 보수 또는 한국의 이념지형 내에서 ‘극우’에 가까운 위치선상에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포괄적 해결 및 상설 협의체화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박 전 대표의 북핵 관련 텍스트는 전통적 보수 논리와는 얼마간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해 그의 텍스트에서는 김정일 ‘독재’ 체제에 대한 비판, 북주민 인권문제 등 보수진영의 전형적 대북 비판 논리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대북 담론은 대체로 온건보수 또는 중도적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박 전 대표의 당시 연설을 경제철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일정 수준 중도적 측면이 나타난다. 이는 큰 윤곽만으로 보았을 때 그동안 ‘민주화 정치세력’의 정체성과 크게 거리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연설문에서 나타난 박 전 대표의 정책적 정체성은 큰 틀에서 보면, 강력한 한미친선주의를 제외하면, 전통적인 보수진영 또는 이명박 정부의 이념노선보다는 대체로 왼편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자신의 정책지향을 ‘복지’로 내세워 화제가 됐다. 다만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그의 언술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대중적으로 ‘전이’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일 수도 있지만, 그가 여전히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정치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힘을 불러모으는 매력 대선게임 부동의 상수

    법 세우고 표 모으는 ‘근혜 파워’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전 대표는 8월 21일 청와대 오찬회동을 계기로 일정 부분 관계를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선게임에서 부동의 상수(上手)다. 과연 그 위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세종시 수정 논란에서 보았듯이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 그 어떤 법안도 통과되기 힘들다. 한마디로 구도효과다. 18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의 의석은 전체 의석의 반수를 넘겼다. 한나라당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어떤 법안이든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그 법에 동의하는 것이 전제다. 친박(親朴·친박근혜)그룹, 즉 당내에서 박 전 대표를 따르는 의원이 70~80명에 이르기 때문에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 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것이다.

    구도효과의 또 다른 측면은 박 전 대표가 약자라는 사실이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대선 후 한나라당 내에서 박 전 대표는 핍박받는 ‘콩쥐’ 신세였다.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 인사들은 대거 낙천했다. ‘박근혜 죽이기’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승자 독식·약자 핍박’의 구도는 박 전 대표에게 여론이 쏠리는 효과를 낳았다.

    6·2지방선거 이전까지 박 전 대표 또는 친박세력은 제1 야당의 위상을 차지했다. 가끔 실제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제1 야당의 역할을 하는 구도적 효과는 우선 실제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존재를 미미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효과는 이 대통령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이 여권에서 이탈하지 않고 머물러 있도록 하는 유수지(遊水池) 역할을 한 것이다. 이른바 반MB 정서가 깊어질수록 박 전 대표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졌다.

    반면 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촛불 국면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대선에서 취했던 중도 스탠스를 버리고 강경보수로 탈바꿈했다. 이 대통령이 이념과 정책에서 보수의 틀 안에 갇히자 보수의 적자인 박 전 대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양측의 불화로 인한 대미지(damage)는 고스란히 이 대통령에게 전가됐다. 2009년 두 번의 재·보궐 선거와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여권이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후반기에 들어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으로 국정기조를 전환하면서 박 전 대표가 누려온 대립구도의 효과가 점점 줄어들었다. 중도에 대한 공략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반면 보수의 지지가 약화되는 구도는 박 전 대표에게는 최악이다. 따라서 박 전 대표로서는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화해하는 구도로 바꿀 필요가 생겼다. 실제로 2010년 8월 들어 이 대통령과 화합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근혜 파워’의 또 다른 이유는 박정희 모델이다. 산업화 세력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탓에 쫓겨나고 대신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교체했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양극화의 심화 등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성공 사례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건 당연했다. 보수층과 나이 든 세대를 중심으로 박정희 모델을 호명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박정희 모델이 다시 부각되면서 박 전 대표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갔다. 민주화 세력이 무능으로 상징되는 인식(perception) 구도 역시 박 전 대표에게는 튼튼한 가치 기반이 됐다.

    더욱이 박 전 대표의 정치적 근거지는 영남이다. 또 보수의 대표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의 전략도 보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 5월 스탠퍼드대 연설을 기점으로 그의 전략이 바뀌었다. 박 전 대표는 중도 전략의 명분을 박정희 모델의 재구성에서 찾고 있다. 최근 그는 박정희 모델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 중에서 특히 서민주의를 부각하고 있다. 후하게 보면 중도전략, 박하게 보면 개혁적 보수로 터닝했다.

    당내 구도만 놓고 보면 박 전 대표는 대세다. 이 흐름을 거역하기란 쉽지 않다. 설사 본인에게 책임이 있는 하락이라 할지라도 반대세력에 그 탓을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프레임의 치환 가능성 때문에라도 유력한 경쟁자의 부상이 쉽지 않다. 여권 내 대권게임은 ‘박근혜’라는 상수를 놓고 그로 갈 것인지, 그를 거부할 것인지 하는 수직적 찬반 구도다. 그가 야권 후보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지지율 구도를 유지한다면 그의 당내 위상은 요지부동일 것이다.

    박 전 대표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있다면 바로 야당 후보 또는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에 대한 경쟁력 하락이다. 만약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의 우위나 열세라면 그가 누려온 위상은 급격하게 흔들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권의 대권구도는 혼돈 속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의 적은 박근혜’다.

    ▶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견고한 정치 신뢰 자산 지지층 유지와 확장 딜레마

    박근혜 전 대표는 늘 정국의 핵심에 서 있었다. 박 전 대표에게 집중된 사회적 관심과 그가 정국에 미친 영향력을 보면 이미 대통령급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예비 대권주자 중 필적할 대상 없이 독주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박근혜 아니냐는 암묵적 대세론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현상은 거품으로 끝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거품론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론에 근거를 둔다. 2012년 차기 당내 경선과 본선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자력에 의해 형성해온 리더십과 정치력이 필요한데, 박 전 대표는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최악의 경우, 선거 국면에 다가갈수록 박 전 대표 지지율이 답보하고, 야권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군이 등장하거나 후보단일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국민여론은 어떨까. 최근 박 전 대표에 관한 수많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차기 예비주자로서 20~30%의 지지율을 얻고 있으며, 특히 영남 및 보수층, 저소득 서민층을 핵심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는 어떻게 안정적 지지율을 갖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영남과 보수층이 선호하는 반면, 중도층이나 고학력층의 지지는 왜 확대되지 않는 걸까. 지금부터 박 전 대표의 정치행보에 초점을 맞춘 서베이 데이터분석을 통해 박근혜 현상이 나타난 정치·역사적 근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박근혜 현상의 형성과정은 크게 2000년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 뛰어들어 당선된 이후 당내 비주류로서 주류와 대립하다 2002년 대선에서 탈당을 통해 ‘제3의 후보’ 가능성을 모색하던 시기, 2004~2007년 탄핵 이후 당대표로서 한국의 대표 보수정치인으로 변신한 시기, 2008년~현재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예비대선주자로 독주체제를 형성한 시기로 나뉜다.

    거의 고정 지지층 형성은 2004년 탄핵열풍으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 당대표로서 능력을 보여준 결과로 보인다. 당 개혁을 이끌며 탄핵 직후 4·15총선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고 불과 석 달 만에 역전된 여야 지지율을 재역전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 이후 구여권이 추진한 국가보안법, 과거사 청산 등 4대 법안 개폐에 상생 대신 사수를 내걸고 전면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보수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공고화됐다. 그 결과 본인의 대중적 인기와 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하지만 이때 형성된 정치적 기반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도전했고, 이명박 후보와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비록 대선 후보 자격은 넘겨줬지만 정치적 신뢰라는 자산을 쌓을 수 있었다.

    이런 강점에도 박 전 대표는 2012년 대선까지 넘어야 할 딜레마에 봉착했다. 첫째, 세종시 이후 대통령과 해빙 무드에 접어들었지만 다시 냉각될 개연성이 존재하며, 그 경우 지지층 이탈 가능성과 함께 현 대통령 지지층 흡수를 통한 외연의 확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강한 보수적 이미지와 차기 대선에서 부상하는 진보 친화적 어젠다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이념적 포지션 이동이 불가피하지만, 기존 지지층 유지와 지지층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가 간단치 않다. 셋째, 높은 도덕성에 대한 신뢰에도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종합하면 박 전 대표의 앞날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우선 2012년 대선은 이전 선거와 공수가 바뀌어 실시하는 선거다. 2007년 정권심판론으로 공격에 섰던 한나라당과 현 여권이 방어주자로 나서야 하는 선거다. 상당한 지지기반을 갖춘 야당 후보군이 형성되고 있으며, 야당이 대안세력으로서 신뢰 회복에 성공하면 박 전 대표가 다른 후보들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박 전 후보 지지율 정체에 대한 우려가 크기에, 상대 후보의 작은 상승세에도 쉽게 회의론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박 전 대표는 다른 정치인에게 없는 자산이 있다. 바로 정치적 신뢰다. 지지율은 단기간에 변동이 가능하지만, 정치 신뢰는 견고하고 쉽게 와해되지 않는다.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신뢰를 기반으로 어떤 드라마를 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진정성 정치’의 실천 보수를 넘어 진보까지 포용?

    법 세우고 표 모으는 ‘근혜 파워’
    2010년 말 현재 박근혜 전 대표를 보는 진보 논객들의 시각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겼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독재자의 딸이나 ‘수첩 공주론’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박 전 대표가 화두를 던진 ‘복지국가론’이나 민의와의 약속을 강조하며 세종시 수정 부결 투쟁을 선도한 것을 경악의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진보 전략가들이 조심스럽게 이명박 보수진영에 대립되는 다른 하나의 축으로, 중도로 이동하는 박 전 대표 진영과 개혁 진영의 연합까지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현재의 정치 지형으로는 2012년 대선에서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다는 비관론과 차라리 보수 정치인의 집권으로 한반도 해빙이 유리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적 사고가 깔려 있다. 이러한 개혁진영 내의 소위 ‘박근혜 현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놀라운 것이다.

    이 현상의 핵심은 유권자들이 박 전 대표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탈정치적인(여의도를 벗어난) 정치가로 간주한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진정성을 가진 정치가에 대한 염원을 ‘진짜배기(real thing)’라 표현한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구체적 정책의 상이 모호한 신비주의적 태도를 취하는데도 대중적 인기를 가진 ‘박근혜 현상’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기이하게 본다. 이는 정치를 단지 정책의 조합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박 전 대표를 통해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묻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아니, 한국에서는 이 후자가 오히려 더 결정적이다.

    진정성 정치는 때로는 복고적이거나 때로는 포스트모던한 지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간성을 지닌다. 또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보수와 진보의 두 버전이 다 존재한다. 박 전 대표의 좌표는 보수적 진정성 정치에 속한다.

    한국 사회에 진정성 정치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의 서거다. 그토록 인기가 없었던 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와 비교되면서 다시 그의 진정성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이후 진정성의 시대라 할 만한 문화적 현상들이 강하게 징후를 드러냈다. ‘제빵왕 김탁구’ ‘대물’ ‘슈퍼스타K’ ‘프로젝트 런웨이’ ‘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등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진정성’ 혹은 ‘레알’(리얼의 네티즌 표현)이었다. 정치공학과 인공적 기획, 경박함, 다중 정체성 연기에 지친 시민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정성 정치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진보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진정성 정치의 부활이 진보 정치인이 아니라 박 전 대표에게 가장 큰 동력을 줬다는 점이다. 현재까지의 추이로만 보면 이제 노무현의 진정성 정치의 시대에서 박근혜의 진정성 정치의 시대가 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진정성의 정치와 포퓰리즘이 잘 융합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공학이 아닌 가치와 진정성을 강조하는 공통된 포퓰리스트인 노 대통령과의 스타일 차이다. 박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의 화려한 수식어, 친근감보다 절제된 단순함과 단아함, 무게감을 표출한다. 마치 일본의 단시 ‘하이쿠’를 보는 것 같다. 박 전 대표의 이런 스타일은 보수인사들에게 강한 매력 요소로 작용한다.

    박 전 대표는 귀족주의적 상원의원의 느낌을 준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마치 고대 로마시대 보수공화주의 귀족인 키케로와 유사하고, 오늘날로 보면 미국 엘리자베스 돌 상원의원,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이자 포퓰리스트인 에비타와도 비교될 수 있다. 이러한 귀족주의적 품위를 가진 포퓰리즘은 일종의 거리감(aloofness)을 견지한다. 이런 거리두기는 한편으로 동경을 유발하지만 경쟁 정치가들의 공감 정치가 강화되면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박 전 대표의 진정성 정치에 대한 도전은 정치공학적 계산법의 이미지가 부과되는 것이다. 2004년 탄핵정국에서 강경한 보수 정체성을 세웠던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 이후 신자유주의 비판의 선봉에 섰다. 이는 치열한 정책 검증과 박 전 대표의 진정성에 대한 도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일부 논객은 박 전 대표의 정책적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대선전이 본격화되면 당내 경선에서 명확한 정책 입장 표명의 과제도 그녀의 진정성 정치에 걸림돌이다.

    과연 박근혜 의원이 이 모든 도전의 과제를 헤치고 진정성의 정치를 통해 집권할 수 있을지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서 보수의 진정성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진보진영이 2012년 어떻게 답할지 무척 궁금하다.

    ▶ 김종욱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

    얼어붙는 한반도 정세 3단계 통일론 작동 가능할까?

    법 세우고 표 모으는 ‘근혜 파워’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 회상에 잠겨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는 성향체계, 습속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태어나 자라온 생활조건에서 각인돼 축적된 성향이다. 장구한 역사는 인간 안에 체화돼 지속적인 성향을 이루고, 이 성향이 인간의 충동과 욕구에 대한 충족을 끊임없이 억제한다. 이것이 아비투스 개념이다. 이와 함께 개인은 사회자본(특정 집단 구성원과의 네트워크), 문화자본(가정환경과 교육 등), 정치자본, 상징자본(사회·문화자본 등을 통해 부여되는 권위) 등 관계자본을 형성해 세력을 확대, 유지하며 영향력을 확장한다.

    6·25전쟁 직후 태어난 세대는 반공을 국가의 유일한 정체성으로 규정한 시대에 살았다. 반공은 국가 이념이며 북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상식이었다. 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였다. 박근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성장했고, 1970년대에는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했다. 의도와 무관하게 냉전적 아비투스가 체현된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도 부모의 그늘 아래 관계를 맺은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냉전적 아비투스와 살아온 삶의 궤적에 의해 형성된 사회자본이 북한을 바라보는 박근혜의 기본 입장이다. 그럼에도 2002년 방북해 김정일을 만난 것처럼, 정치 현실과 구조에 따라 상이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냉전적 아비투스와 현실적 구조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충돌의 강도가 박근혜 리더십에 위협 요인이, 반대로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박근혜의 정치를 실현하는 데 한나라당(친박계)은 중요한 정치자본이다.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것도 정치자본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한나라당 내부 정치는 대선 승리 가능성에 따른 통계 싸움이고, 이 싸움에서 앞서면 정치자본은 탄탄해질 것이다.

    통계 싸움의 핵심은 국민 여론이다. 전통적으로 박근혜는 영남과 충청권 보수적 유권자를 주축으로 수도권 보수적 유권자와 일부 중도 유권자가 결합돼 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탈냉전 흐름이지만, 탈냉전에 입각한 정책적 입장에 서면 전통 지지층과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려면 입장을 서서히 선회하는 중도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입장을 갑자기 바꾸면 지지층 이탈 속도는 빠르게 진행된다. 북한 역시 스스로 강성대국 마지막 관문으로 경제 강성대국이 남아 있다고 밝혔듯, 2011~2012년은 긴장 속 완화 무드라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이 글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쓴 것임을 감안). 보수적 지지기반과 한반도 주변 환경의 충돌이라는 함수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또 하나의 퍼즐이다.

    상징자본의 중심에는 ‘박정희 신드롬’이 자리 잡는다. 박근혜 지지층은 경제 발전과 보수의 상징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로 형성된 정치적 자산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대외정책을 결정할 상황에서는 제약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참여정부 정책이 충돌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냉전적 질서가 사라진 마당에 현실에 발을 딛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상징자본 그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박근혜 개인 리더십은 부드러운 이미지와 단호하고 원칙 있는 이미지가 결합돼 나타난다.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보수적 경직성과 현실적 유연성이 동시에 표출된다. 이는 어느 진영으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하거나 모두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리더십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회색의 아우라(Aura)’다.

    2002년 방북 이후 박근혜는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와 분리한 초당적 협력 필요성을 제시했다. 현실적 유연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선 보수적 경직성이 돌출됐다. “북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온다고 착각하지 마라”고 했다. 지지층의 입장을 무시하며 현실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대선까지의 정치 일정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현실적 유연성보다 보수적 경직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통일론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창한 ‘3단계 통일론’으로 볼 수 있다. 평화정착(북핵 제거)-경제통일-정치통일이다. 이런 과정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개별 사안에서 보수적 경직성을 현실적 유연성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박근혜 통일론은 작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는 ‘주적 개념’의 삭제를 반대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제재 입장을 견지한다. 1단계 평화정착 과정에서 불거질 사안에 대한 입장이 강경하다. 한반도 적화통일을 규정한 노동당 규약 변경과 선(先)핵포기를 요구하면 상대방의 또 다른 강력한 요구와 협상을 해야 한다. 노동당 규약 변경에 국가보안법 폐지 협상카드를 내민다면? 선핵포기 주장에 남한 비핵화 사실 여부에 대한 검증을 요구한다면? 협상과 정의 분쟁은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박근혜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레이건 2기 방식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냉전을 종식한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집권 1기에 소련의 해체를 목표로 군비 경쟁을 통한 경제적 압박, 동구 반체제 운동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폈다. 현재 이명박 정부와 유사한 모습이다. 하지만 레이건 임기 말(집권 2기) 강경정책은 바뀌었다. 미국 국민의 반감 확산, 이란-콘트라 추문으로 인한 인기 추락 등으로 소련과의 대화 모색 국면에 접어들었다.

    박근혜는 북한 최고지도자와 만나 협상을 전개한 ‘신뢰 자본’을 가지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에 있어 기초공사를 해놓았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축적된 기억과 실천은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외롭고 힘든 결정을 해야 한다. 원칙은 지키되 대화를 중단하지 않는 실사구시의 방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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