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2010.11.29

“범인 놓치는 노후 CCTV 보면 볼수록 분통 터져”

“계산사진학의 대부 포스텍 이승용 교수 “검거율 높이려면 장비부터 바꿔야”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11-29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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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 놓치는 노후 CCTV 보면 볼수록 분통 터져”

    뭉개지고 뿌옇게 바랜 사진도 블러 제거 기술만 있으면 선명한 ‘잘 찍은 사진’이 된다.

    연이어 터지는 흉악범죄, 요즘은 늦은 밤에 길을 다니기 무섭다. 참혹한 범죄의 현장을 담은 단 하나의 단서, CCTV가 너무 흐려서 범인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분통이 터지기까지 한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면 멀리서 찍어 흐릿한 CCTV도 확대해 바로 앞에서 찍은 듯 선명하게 만들던데! 답답해하는 우리를 위해 포스텍 이승용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새로운 기술을 내놓았다. 흐릿한 사진을 3초 만에 선명하게 바꾸는 ‘블러(blur·흐릿한 영상) 제거 시스템’이 그것이다.

    ‘블러 제거 시스템’도 낡은 영상엔 맥 못 춰

    “영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촬영하는 순간 카메라가 살짝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화소 하나당 영사 정보가 하나만 입력돼야 하는데 카메라가 흔들리면서 한 화소에 여러 개의 영상 정보가 겹쳐 사진이 뿌옇게 나타나는 거죠. 카메라의 움직인 경로를 찾아내면 이를 역추적해 사물의 원래 윤곽을 알아내는 거예요.”

    절로 감탄이 나왔다. 원본 사진은 초점이 안 맞아 큰 글씨도 읽기 힘들 만큼 뭉개졌는데, 이 교수가 개발한 블러 제거 기술을 이용하자 3초 만에 작은 글씨도 또박또박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찍은 사진’이 됐다.

    이 교수는 4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야경 사진을 찍다 블러 제거 기술 개발을 결심했다. 주변이 어두워 노출이 부족한 까닭에 셔터 스피드가 느려지다 보니 자꾸 카메라가 흔들려 야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탓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순 없을까”를 고민하다 “아무리 못 찍은 사진이라도 소프트웨어로 블러를 제거하면 좋은 사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컴퓨터그래픽 분야의 최고 학술대회인 ‘시그래프 아시아 2009’에서 이 기술을 처음 공개했다.



    “범인 놓치는 노후 CCTV 보면 볼수록 분통 터져”
    이후 이 교수에게 CCTV 영상 복원을 부탁한 경찰이나 억울한 이가 많았다. 하얗게 빛이 바래고 엉망으로 뭉개진 CCTV가 범인을 잡을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이 교수는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부탁한 CCTV 영상을 분석해 범인의 자동차 번호판을 인식해줬다. 하지만 부탁받은 영상 중 대부분은 복원에 실패했다. 소프트웨어가 발전 단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찰 측에서 건넨 자료가 대부분 너무 낡은 탓이다.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사진이 작거나 화질이 안 좋고 잡음이 너무 많으면 사진에 남아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 복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CCTV 대부분 정말 노후하더군요. 해상도는 낮고 화면도 선명하지 않고요.”

    그런데도 “왜 미드(미국 드라마) 보면 다 되던데 우리는 안 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야속하다. 이 교수는 “미드에 나오는 기술은 대부분 전 세계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라며 “블러 제거 등 계산사진학 분야는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높은 검거율을 위해서 단순히 블러 제거 기술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즉 CCTV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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