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3

2010.09.06

“아내 위해 내 신장 하나 주겠다”

獨 사민당 슈타인마이어 원내대표 … ‘가족사랑’ 덕분에 오히려 정치적 위상 높아져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10-09-06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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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3일 오전 9시 30분, 국회의사당 기자회견실에 모여든 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사회민주당(SPD, 이하 사민당) 원내대표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56)가 무엇 때문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 유력 정치인이 이유도 밝히지 않고 기자회견을 요청할 때는 종종 정국을 뒤흔들 만한 깜짝 발언이나 정계은퇴 선언이 나왔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 롤란트 코흐 헤센 주지사가 그런 식으로 줄줄이 정계에서 물러났다. 슈타인마이어도 그 대열에 끼려는 것인가.

    사실 슈타인마이어는 정치적 위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09년 그가 사민당 총리 후보로 총선을 진두지휘했지만, 그 일은 오히려 악재가 됐다. 사민당이 사상 최악의 지지율(23%)로 참패했기 때문. 당내에는 여전히 그를 ‘무임승차’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는 니더작센 주지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총리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흑-적 대연정 시절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비록 고위직을 역임했지만, 선거를 통해 자력(自力)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신부전 앓은 아내

    그의 정치 성향이 중도좌파라는 점도 미움을 사는 이유다. 그는 ‘제3의 길’을 표방했던, 그래서 사민당의 선명성을 희석시켰다고 평가되던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에 관여했다. 대연정 시절 사민당이 기민련 우파 노선에 맥없이 끌려가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최근 사민당에서 논란이 됐던 ‘67세 정년’ 문제에도 연루됐다. 과도한 사회보장비 지출로 어려움을 겪던 독일 정부는 대연정 시절인 2006년, 일할 수 있는 최고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67세로 높였다. 국민연금의 지급 개시 시점을 뒤로 미뤄 재정의 부담을 덜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과도한 복지의 축소라고 생각했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는 “노년의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노동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의 지급 개시 시점을 늦추는 것은 연금 혜택의 축소”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슈타인마이어는 ‘67세 정년’ 원칙을 고수해 둘 사이의 당내 갈등이 이어지기도 했다.

    예정 시간을 조금 넘겨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슈타인마이어의 일성은 “당분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것. 그런데 이유가 뜻밖이었다. 아내의 병세가 얼마 전부터 위중해졌는데, 병원에서 장기 이식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신장 기증받을 차례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슈타인마이어 본인이 신장 하나를 아내에게 떼어주기로 했다는 것. 그는 “오늘 병원에 들어가 이번 주 중 수술할 것이며, 몇 달 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 순간 그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이 사라지고, 감동적인 가족사랑이 전면에 부각됐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의 아내 엘케 뷔덴벤더(48)는 만성 신부전을 앓아왔다. 이미 지난 2월 의사는 장기 이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고, 5월 이식할 신장을 올해 안에 찾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신장 이식을 희망하는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슈타인마이어는 6월 말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줄 결심을 하고 적당한 수술 시점을 모색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아내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사실에 대한 안쓰러움, 자신의 신장을 기꺼이 떼어주는 가족애, 그의 향후에 대한 우려와 무한신뢰가 교차하는 묘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그가 병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내 위해 내 신장 하나 주겠다”

    슈타인마이어는 신장 이식 수술 후 휴식을 취하고 10월경 정계에 복귀할 예정이다.

    슈타인마이어의 아내 엘케 뷔덴벤더에 대해선 베를린 행정법원 판사라는 사실 말고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부부가 각자의 삶을 존중했고 상대방의 일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지난해 총선이었다. 아내는 사민당 총리 후보로 나선 남편 곁을 선거기간 내내 지켰다. 후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이 총리 후보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해했지만 상대방에게 소중한 것을 막을 수 없어 출마를 허락했고, 선거기간에 열심히 따라다녔다고 한다.

    슈타인마이어의 소식이 전해지자 사방에서 그를 격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휴가 중이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직접 전화를 걸어 염려와 격려의 마음을 전했고, 기도 베스터벨레 부총리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의 자리에서 잠시 빠져나와 슈타인마이어 부부의 쾌유를 빌었다. 사민당 내 라이벌인 가브리엘 당수는 이날도 어김없이 정부 여당의 정책을 하나하나 비판했지만, 왠지 발언에 생기가 없었다.

    이날 하루 사민당 전체가 마치 공회전(空回轉)하는 기계처럼 안정되지 못한 분위기였다. 그간 당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가브리엘과 힘의 균형을 맞췄던 슈타인마이어의 자리가 당분간 비게 된 데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사민당 내 좌파를 표방하며 평소 슈타인마이어를 비판하던 랄프 슈테그너조차도 “슈타인마이어의 진지함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며 그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필리프 뢰슬러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일을 “내 옆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리라고는 슈타인마이어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안구 기증 덕에 실명 위기 벗어나

    사실 슈타인마이어는 대학 시절인 1980년대 각막염으로 실명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러나 누군가 안구를 기증해줘 빛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장기 기증이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이후 그는 언제나 장기기증 서약서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가족을 위해 정치 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슈타인마이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3년 전 프란츠 뮌터페링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민당 당수를 오래 역임했으며, 대연정 당시 부총리 겸 노동부 장관을 맡던 그는 돌연 일체의 직책을 내려놓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암으로 고생하는 아내의 말년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도 독일 정가는 한동안 잠잠했다. 정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정치 현안들이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인 말다툼일 뿐임을 사람들은 뮌터페링을 보면서 알게 됐다. 슈타인마이어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원내대표직은 슈타인마이어의 직속 수하라 할 수 있는 요아힘 포스가 맡기로 했다. 슈타인마이어가 가브리엘 당수에게 청원했고, 사민당 지도부가 흔쾌히 승낙했다. 이로 미뤄볼 때 슈타인마이어의 10월 정계복귀는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아니, 그의 정치적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짧은 정계은퇴 선언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전 국민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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