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2010.08.02

“6월 평양 공기는 위기감 없었다”

訪北 재미의학자 오인동 박사 “1년 새 네온사인 늘고 휴대전화 사용자도 급증”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0-08-02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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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평양 공기는 위기감 없었다”

    평양의학대학 정문에 선 오인동 박사.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대응한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방위 대북압박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외 언론에선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3대 세습작업 가속화를 위한 ‘피의 숙청설’이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선언과 체제 개방을 하지 않는 이상 조만간 ‘체제 붕괴’라는 급변사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6월 25일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반미군중집회가 이를 막기 위한 북한 강경파의 몸부림이라는 것. 최악의 전력난으로 북한의 공장들이 멈춰서고, 끝없는 식량 부족으로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중국으로 탈출하는 탈북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 내부의 분위기는 어떨까. 세계적인 고관절 전문가 오인동 박사(71·정형외과)는 6월 19일부터 30일까지 11일간 평양을 다녀왔다. 지난해 5월에 이은 1년 만의 방북이고, 1992년 첫 방북 이후 네 번째다. 오 박사는 6월 25일 평양에서 반미 군중집회가 열렸을 때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평양의대병원에서 수술 중이었다. 하버드 의대 교수를 역임한 그는 미국 의료계의 권위 있는 ‘존찬리 상’을 수상한 인물.

    오 박사가 접한 북한의 분위기는 ‘붕괴’나 ‘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1년 전에 비해 전력난도 나아졌고 주민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e메일과 국제전화로 현재 미국 LA 근교 패서디나(Pasadena)에 살고 있는 오 박사와 인터뷰했다.

    ▼ 이번 방북의 목적은?



    “지난해 5월 평양의대병원에서 인공고관절 치환수술을 북한 의사들과 하고 미국으로 돌아올 때, 다음엔 인공무릎관절 수술하러 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뉴욕의 유엔 북한대사관을 통해 평양의대병원 측의 주선으로 중국을 경유해 다녀왔다. 평양의대병원은 올봄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로 편입됐다.”

    ▼ 방북 기간에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

    “인공무릎과 고관절 수술을 매일 했다. 방북 기간에 14건이나 했다. 수술 기술과 미국에서 기증받아 가져간 수술기구 사용법도 전수했다. 수술이 끝나면 진료실에서 집도의사들의 질문에 답하고 토론도 벌였다. 다만 의학용어와 수술기구 이름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과 미국의 차이뿐 아니라 남과 북의 차이도 컸다.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용어 표준화 작업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 북한의 의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북한 의료진은 대부분 구동독이나 동유럽 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의료지식의 수준은 높지만 의료기술은 의료선진국인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경험이 별로 없다. 외과수술은 경험이 중요한데 하나에 6000달러나 하는 고가의 인공관절을 수입하기가 쉽지 않고, 실습에도 한계가 있다. 시설도 말할 수 없이 열악하다. 북한 의료진이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인공관절이나 수술기구 자체 제작 능력을 갖추라고 권했으며, 이를 돕고 있다.”

    ▼ 북한 체제 붕괴설 등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평양의 분위기는 어땠나?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평양 시내는 1년 전에 비해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가 늘었고, 유경호텔은 깔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북한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특히 시원하고 환한 색깔의 옷과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여성이 크게 늘었다. 그들의 생동감 넘치고 자유분방한 모습은 누가 연출하고 시켜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6월 평양 공기는 위기감 없었다”

    오 박사는 방북기간 중 평양의대병원 의료진과 14건의 인공고관절과 인공무릎관절 수술을 했다.(위) 오 박사(왼쪽) 일행 뒤로 각종 조명으로 환한 ‘개성청년공원’의 모습이 보인다.(아래)

    ▼ 북한의 전력난이 심하다는데.

    “지난해 평양 방문 때만 해도 전력이 부족해 병원에서 수술하다 전기가 나간 적이 자주 있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번에 가 보니 많이 개선돼 있었다. 평양 개선문 옆에 개장한 ‘개선청년공원’의 환한 네온사인과 생기발랄한 청춘 남녀들을 보며, 이곳이 미국이나 남한에서 곧 붕괴할 거라고 말하는 북한인가 싶었다. 손(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고 보니 평양의대 의사나 안내원, 운전기사도 모두 손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통신을 자유롭게 하면 폭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손전화 단속이 심하다는 외부 보도내용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통제에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북한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남한이나 서방 언론에서 기사화되는 내용을 북한에서는 잘 느낄 수 없다. 더 놀란 것은 만수대거리에 들어선 고급스러운 집들이다. 20~30층 아파트가 아니고 6~7층 규모의 아담한 빌라식인데, 집집마다 아름다운 베란다가 있다. 미국식으로 말하면 콘도미니엄 같은 주거형태다.”

    ▼ 식량난이 심각한 것 같지는 않았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북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노동당 모든 간부가 농촌 지원사업에 나가 있다고 했다. 이모작과 삼모작 농사에 전력하면서 식량 증산을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실제 북한에서 만난 간부들은 인민복 차림에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북한 ‘로동신문’을 보니 남흥 비료연합기업소가 무연탄 가스화 공정에서 암모니아 비료를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지만 점점 나아지는 듯하다.”

    ▼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 반미군민대회’가 열렸다. 평양 시민들의 반응은?

    “북한은 이날을 ‘6·25미제 반대투쟁의 날’로 정했다. 병원 관계자도 일부 이 대회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병원 안은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했다. 다만 다음 날 로동신문에 대회 사진과 함께 미국을 비난하는 기사가 실렸을 뿐이다.”

    ▼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끊이지 않는다. 북한 의료진이나 고위급 인사들에게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없는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나 후계 문제, 권력구조 변화 등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 북한은 오는 9월 당 대표자회의를 연다고 발표했다. 후계자를 공식화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주요 대표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회의라면서 대의원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만 했다.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북한 사람들이 김정은 대장이라고 해서 ‘새파랗게 젊은데 무슨 대장’이냐고 핀잔 주니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 향후 남북관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그동안 남과 북이 서로 해볼 짓, 안 해볼 짓 다 해봤다. 이젠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천안함 사태는 남과 북을 무력충돌 일촉즉발의 상태로까지 몰고 갔다. 그런데 정작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었다. 6·15남북공동선언이 가르쳐준 것은 ‘가장 확실한 안보는 평화체제’라는 것 아니었나?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 조의방문 특사를 보내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길을 터보려 했다. 그러나 이제 이명박 정부에 거는 기대는 더 이상 없다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을 존중하고 화해협력 정책으로 돌아설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그 기간에 손해를 보는 것은 남과 북의 민중이다. 이제 북한이 먼저 남한 정부에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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