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2

2010.06.21

16세 영웅 소녀 ‘제시카의 귀환’

나 홀로 요트 타고 세계일주에 성공 … “대자연 품에서 행복, 꿈꾸면 이루어져”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10-06-21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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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 영웅 소녀 ‘제시카의 귀환’

    제시카와 210일을 함께한‘엘라스 핑크 레이디’ 요트.

    “친구 여러분,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 꿈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도 가능합니다.”

    길이 10.2m의 작은 요트를 타고 혼자 지구 한 바퀴를 돈 ‘모험 소녀’ 제시카 왓슨(16)이 인터넷 감옥에 갇힌 또래 친구들에게 전한 꿈과 희망의 메시지다. 210일 동안 제시카의 눈길이 닿은 곳은 전부 바다였다. 해 뜨는 태평양에서 해 지는 인도양까지. 그리고 혼자였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태평양-대서양-인도양을 잇는 4만2000km의 바닷길을 논스톱으로 주파했다. 세계 최연소 신기록이다. 감격한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호주의 새로운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망망대해에서 제시카는 선장이면서 한 명뿐인 선원이었고 기관사였다. 그뿐인가.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서 항로를 잡아가는 항법사였고, 본부와 교신하는 통신사였다. 요리사나 세탁부 역할은 그나마 수월했다. 강한 파도 때문에 파손된 장비를 수리하는 일이 가장 힘든 임무였다. 강풍과 거친 파도로 항해사들에게 악명이 높은 칠레 남단의 케이프 혼(Cape of Horn)을 통과할 때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시카는 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계일주 요트 항해에 나선 것일까? 7개월 동안 대양을 떠다니면서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먹고 지냈을까?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며,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호주에서는 5월 15일부터 앳된 모습의 16세 소녀를 환영하는 행사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 큰 도시에서 수천,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환영행사가 열렸고 행사장에는 연방 총리, 주 총리, 시장 등이 참석했다. 호주 전체가 제시카 신드롬을 흔쾌히 즐기는 모습이다.



    4만2000km 바닷길 논스톱 주파

    그가 세계일주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한 5월 15일 7만5000여 명의 환영 인파가 오페라하우스 일대에 모였다. 그날 태평양에서 시내까지 들어오는 바닷길에 1500척의 배가 환영을 나와서 일대 장관을 이뤘다. 이는 건국 기념일인 ‘호주의 날’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환영식장이 마련된 오페라하우스에서 러드 총리는 3시간 동안 제시카를 기다렸고, 호주 3대 TV 채널은 무려 5시간 동안 공동으로 생중계했다. 국내 신문은 물론 주요 외신도 제시카의 귀환 뉴스를 크게 보도했다. 그의 홈페이지에 수백만 명이 접속했고 수만 통의 환영 메시지가 답지했다. 6월 6일에는 제시카의 고향인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에서 환영식이 열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호주 국민은 7월 7일 방영되는 TV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16세 소녀의 불굴의 정신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제시카가 항해일지를 바탕으로 집필하는 ‘참된 정신(True Spirit)’도 곧 출간될 것으로 알려졌다.

    7개월 동안 강도 높은 수행을 하며 소녀의 정신세계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일까? 언론은 “제시카가 2010년 호주 어록에 기록될 만한 명언들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그중 백미는 환영식장에서 나왔다. 러드 총리가 “호주의 새로운 영웅이 태어났다”고 치켜세우자 제시카는 “고마운 말씀이지만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꿈을 간직한 여느 10대와 똑같다. 다만 그 꿈을 믿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답한 것.

    또 몇몇 언론에서 ‘3대양을 정복한 16세 소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자 그는 “난 바다를 정복한 게 아니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서 행복한 210일을 보냈을 뿐”이라며 “파도 위에서 잠들고 깨어나다 보니 ‘시 레그스(sea legs·배 위에서 익숙한 생활)’ 현상이 생겨서 오히려 땅 위를 걷는 게 불편할 정도로 바다가 나를 편하게 받아주었다”고 말했다.

    16세 영웅 소녀 ‘제시카의 귀환’

    (위) 제시카가 홈페이지와 블로그(사진)에 매일 항해일지와 메시지를 올려놓으면, 누리꾼들이 읽고 그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다. 이를 통해 제시카는 외로움을 떨쳐냈다. (아래)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환한 16세 소녀 제시카의 환한 미소에서는 무한한 기쁨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섬 대륙’으로 불리는 호주에서 항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22년 전 호주인들의 백인 조상이 영국 포츠머스 항을 떠나 2만4000km의 바닷길을 9개월 항해한 끝에 시드니 항에 도착했기 때문. 770명의 죄수, 250명의 군인, 330명의 항해요원 등을 태운 11척의 범선으로 구성된 ‘제1 선단’이었다. 그 후 80년 동안(1868년까지) 호주로 오는 죄수선단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제시카의 조상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시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채널10’은 “아버지 쪽 조상은 ‘죄수’였고 어머니 쪽은 ‘해군’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런 피를 이어받은 제시카는 8세부터 항해기술을 익혔다. 1000km 단독 항해를 포함해 8000km 이상 항해 경력을 쌓은 다음 세계일주에 나섰다.

    외로움 떨쳐준 세계 누리꾼과의 소통

    하지만 나이가 워낙 어린 탓에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 누구보다 모험을 즐기는 항해 전문가들조차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16세 소녀 혼자 대양으로 가게 하는 건 무모한 결정”이라는 의견을 내놨고, 애나 블라이 퀸즐랜드 주 총리도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며 반대했다. 여론이 반반으로 나뉜 상황에서 결정은 가족의 몫이었다. 당국은 출항을 막고 싶어도 금지시킬 법적 근거가 없었던 것.

    결국 아버지 로저 왓슨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딸을 잃는 것보다 그의 오랜 꿈을 접게 만드는 것이 더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줄리 왓슨은 “제시카는 문제가 많은 아이였다”면서 “워낙 모험을 즐기는 아이였는데, 아빠가 ‘누군가 할 수 있다면 너도 해낼 수 있다’고 격려하자 결심을 굳혔다”고 결정 과정을 밝혔다.

    2009년 10월 18일 오전, 시드니 항을 떠난 ‘엘라스 핑크 레이디’ 요트는 세계일주의 대장정에 올랐다. 요트에는 제시카가 7개월 동안 일용할 양식으로 냉동건조 식량 290개, 스팸 32개, 참치캔 64개, 파인애플캔 32개, 초콜릿 576개 등이 실렸다. ‘채널 9’이 보도한 영상자료에는 제시카가 대서양에 진입한 기념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냉동식품이었다.

    제시카는 ‘채널9’과의 인터뷰에서 “항해 도중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별이 총총한 밤바다의 외로움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5월 16일자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제시카가 바다에 떠 있던 210일 동안 하루 평균 50만 명 이상의 누리꾼이 그의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방문했고, 매일 2000통 이상의 e메일이 수신됐다”고 보도했다.

    제시카가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그날의 항해일지와 메시지를 올려놓으면 누리꾼들이 읽고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모양새였다. 또 캠코더로 하루의 주요 일과를 담아 유튜브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영상에 곁들인 현장 설명을 듣다 보면 마치 위성방송을 시청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망망대해에서의 외로움을 떨쳐낸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위성전화로 부모와 통화하기였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는데, 비싼 통화요금과 태양열로 충전해야 하는 제약 때문에 통화 횟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는 요트 뒤쪽에 부착된 태양열 집열판에서 충전했다.

    그러나 5월 16일 ‘채널9’의 ‘60분’에 출연한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독 요트 항해의 외로움을 힘들어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 자체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육지를 향한 그리움은 시드니 항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자유를 즐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중에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기 때문.

    16세 영웅 소녀 ‘제시카의 귀환’

    호주에서는 제시카가 귀환한 5월 15일부터 그를 환영하는 행사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제시카는 학교에서 e메일로 보내주는 숙제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책 읽기 또한 중요한 일과의 하나였다. 그러나 한정된 수의 책을 가져간 탓에 나중에는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DVD도 금방 바닥나서 거의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요트의 안전을 위해 되도록 수면시간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책 읽기와 DVD 감상으로 버텼다.

    요트 항해사들이 세계일주 기록을 공인받으려면 몇 가지 의무조항을 지켜야 한다. 그중 총 항해거리가 2만3000해리(3만8000km)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가장 중요하다. 한 번 이상 적도를 넘어야 하는 것도 필수. 그는 지구 남반부에서 출항했기 때문에 태평양 상의 적도를 통과했다.

    제시카가 유튜브에 올려놓은 동영상을 보면, 적도를 통과하는 날 분홍빛 플라스틱 통에 물을 담아서 자기 머리에 붓는 장면이 나온다. 선원들이 적도를 통과할 때 서로에게 물을 부어주는 전통의식을 약식으로 치른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축제를 벌이는 전통도 생략했다. 주스 한 잔으로 적도 통과의식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세계항해속도기록협회(WSSRC)는 최연소 논스톱 단독 항해기록을 공인해주지 않았다. 아직 18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미성년자의 무모한 모험을 막아보겠다는 뜻이 담겼다. 지금까지 최연소 공인기록은 1999년 세계일주에 성공한 호주 출신 제시 마틴(당시 18세)이 갖고 있다.

    그렇게 태평양을 오르내린 뒤 제시카는 뱃머리를 케이프 혼 쪽으로 돌렸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월 23일에는 10m 높이의 파도가 몰아쳐 항해 중단 위기를 맞았다. 작은 요트를 타고 10m 이상 넘실대는 큰 파도를 견디면서 제시카는 바짝 긴장했다(환영식장에서 필자가 목격한 그의 요트는 놀라울 정도로 작았다. 대형 트럭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의 힘으로는 기상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냥 대자연의 품에 안기기로 했다. 그는 “파도가 출렁이는 대로 리듬을 타기로 했다. 더 이상 날씨 걱정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실 작은 보트 안에서 견뎌내는 폭풍보다 내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 두려움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혼자서 요트 항해 이제는 싫어”

    이어서 제시카는 “대서양에 진입한 이후에는 마치 휴가를 즐기는 느낌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단의 희망봉을 통과하면서는 집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러나 인도양을 건너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호주 서남부 해안에서는 최고의 악천후로 악몽 같은 일주일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그 후 호주대륙을 통과할 때 제시카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항해의 결말 부분을 맘껏 즐겼다. 실컷 잠자고, 백사장을 걷고, 제멋대로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고, 신선한 과일을 먹는 상상을 한 것. 모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혼자 요트 항해를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한 인터뷰에서 “요트 항해를 다시 떠나고 싶다. 그러나 혼자 타고 나가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

    한편 그의 출항을 반대했던 호주 항해단체들도 축하의 뜻을 전하면서 “믿을 수 없는 쾌거다. 더욱 정진해서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아메리카컵 요트대회에도 출전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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