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2010.05.17

네 살, 여섯 살 자매 성병 균 검출 사건!

성관계로만 옮는 클라미디아 … 정부 위탁 상담센터는 “모녀가 짰다” 허위진술 결론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김한돌 사건 전문 자유기고가 handolgim@gmail.com

    입력2010-05-17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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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 여섯 살 자매 성병 균 검출 사건!
    최근 4, 6세 여아의 자궁에서 ‘성병 균’이 검출됐다. 의학적으로 성폭행이 있었음이 확실한데도 법은 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검찰은 피상적 상담결과와 검사만을 토대로 이 사건을 세 번이나 기각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현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사건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 이민진(가명·40) 씨는 두 딸 지원(6·가명), 정원(4·가명)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 이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곧장 서울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세이브 더 칠드런)에 신고했으며, 이 기관은 의료지원이 가능한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이하 해바라기센터)에 사건을 인계했다. 해바라기센터는 여성가족부가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위탁한 아동성폭력 전문기관으로,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유일한 곳이다.

    아빠와 두 딸에게 무슨 일이?

    해바라기센터는 지원, 정원의 성폭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산부인과 검진, 심리검사를 실시했으며 경찰 입회 아래 아동 진술조사도 진행했다. 그리고 ‘회음부(질 입구와 항문 사이 부분)에 상흔이 없다. 모녀가 허위 진술할 동기도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무혐의 처리했다. 그런데 이후 이씨가 찾은 민간 의료기관들은 해바라기센터와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한국색채심리분석연구소, 소향신나는심리클리닉 등 심리치료센터 평가사들은 “아동이 성폭행을 당했을 염려가 크다. 꾸며서 거짓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진단한 것. 분당차병원 산부인과 검사에서는 성병 균까지 검출됐다. 이씨는 “국가기관이 아이들을 두 번 죽였다”며 “모쪼록 재수사가 이뤄져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중국동포 출신인 이씨는 2002년 김모 씨와 결혼해 국내에 들어온 뒤 이듬해 지원, 2005년 정원을 낳았다. 이씨가 말하는 결혼생활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불거진 시점은 2007년 이씨가 사업을 하다 500만 원의 빚을 진 직후였다. 이씨는 돈 문제로 매일 부부싸움을 했고, 남편의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해 4월 두 딸을 둔 채 집을 나왔다. 당시 뱃속에는 셋째가 자라고 있었다. 이씨는 식당에서 일하며 끼니를 해결했다. 그해 9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돌보며 일할 수 없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기 위해 집에 들렀다 딸들이 시어머니에게 맞는 장면을 봤다. 남편을 찾아가 항의한 뒤 11월 초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딸들과 지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음부에 손가락을 넣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던 것. 처음에는 장난으로 여겼다. 그러다 2008년 6월 초 지원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엄마가 가출했던 2007년 4~10월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씨의 신고로 세이브 더 칠드런으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은 해바라기센터는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두 아이의 산부인과 검진을 의뢰했다. 담당의 S강사는 “이학적 검사상(시진, 문진 등 기본 진찰) 회음부 급성 열상 소견이 관찰되지 않는다. 성학대 사실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사건을 처음 접수한 세이브 더 칠드런은 지원이를 직접 상담했다. 산부인과 검진에서 성폭행 증거가 나오지 않은 데다, 경찰도 구체적 물증 없이는 수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지원이는 상담에서 “아빠가 ○○에 장난감 칼, 손가락, 가짜 고추, 진짜 고추 등을 넣었다. 동생에게도 똑같이 했다”고 진술했다. 상담사는 “성학대에 일관성 있게 답했고, 성학대 상황에 대한 몇몇 장면 묘사가 구체적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해바라기센터에서 임상심리 전문가와 경찰 입회 아래 진술녹화를 진행했으며, 정신과 상담과 심리평가도 실시했다(‘지원·정원’ 성폭행 추정 사건일지 표 참조). 이후 나온 결론은 세이브 더 칠드런의 평가와 달랐다. 해바라기센터의 종합평가 의견서와 심리평가보고서에는 “이혼이라는 동기가 어머니 및 아동에게 허위 진술토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모녀가 모두 허위 진술할 동기도 상당히 높다”고 기록돼 있다. 이씨는 두 딸을 데리고 나온 이듬해 3월부터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었는데, 이혼을 위해 여섯 살짜리 아이와 짜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다.

    경찰은 산부인과 검진 소견과 해바라기센터의 보고서를 근거로, 해당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의 수사결과 보고서에는 “심리평가 시 어머니의 이혼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말하는 등 진술이 번복되고, 산부인과 검진 결과 등으로 보아 성폭력 피해 관련 증상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적혀 있다. 서울 서부지검은 2008년 12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이듬해 2월 서울고검은 항고를, 7월 대검찰청은 재항고를 각각 기각했다.

    민간 의료기관들 “성폭행 의심”

    네 살, 여섯 살 자매 성병 균 검출 사건!
    이씨는 이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 심리치료센터와 산부인과를 찾았다. 이들 기관은 해바라기센터와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아동은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염려가 크다. 학습에 의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꾸며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한국색채심리분석연구소)

    “아동은 그림에서 아버지상을 늑대, 괴물 등 위협적 상징물로 표현했고, 친부의 성학대 상황을 일관적으로 표현했다. 아동의 심리적 불안감은 성학대 후유증으로 사료된다. 친부와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한국색채심리치료협회)

    “투사검사(그림 진단 등 무의식적인 사고나 감정 등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검사)는 일시적 종용과 권고에 영향을 받는 검사가 아니다. 피검사자가 아무리 명석하고 치밀해도 의도적으로 결과를 조작할 수 없다.”(소향신나는심리클리닉)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아동이 이유 없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아동 진술의 신뢰성을 높게 평가하고 인정하는 데 반해, 우리는 물적 증거 등 성인 수사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꼬집었다.

    결정적 증거는 지난해 10월 분당차병원 산부인과 검진에서 나왔다. 질 분비물에 대한 PCR 검사(유전자 검사) 결과 두 아이에게서 모두 성병 균인 ‘클라미디아’가 검출된 것. 클라미디아는 성관계를 통해서만 옮는 균으로 질염, 골반염 등을 일으키며 불임과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씨는 “의사선생님께서 ‘균이 자궁에 잠복해 있기 때문에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2년이 지나도 검사하면 나온다’고 했다. 아이들의 상태가 지금도 좋지 않다”고 울먹였다.

    이씨는 요즘도 두 아이를 데리고 분당차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민간 심리치료센터에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이씨는 “이혼 때문에 엄마가 딸들에게 거짓으로 ‘성폭행’ 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후유증을 앓고 있는 딸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토로했다.

    어머니 이씨 “재고소할 힘조차 없다”

    네 살, 여섯 살 자매 성병 균 검출 사건!

    지원, 정원이가 그린 그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심리,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형성돼 있음이 나타난다.

    PCR 검사에서 클라미디아가 검출된 데 대해 학계와 민간 의료기관 전문의들은 “성폭행이 의심된다”고 입을 모았다. J병원 산부인과 조모 교수는 “PCR 검사에서 클라미디아가 양성으로 나왔다면 성병 균에 감염된 것이다. 성폭행이 의심된다. 클라미디아는 성접촉 외 다른 경로로 옮겨지지 않으며, PCR 검사의 위양성(거짓 양성)률도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I산부인과 최모 전문의, L산부인과 이모 원장 등 전문가들도 “성관계를 통해 균에 감염된 것이다. 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감염된 것으로 판단, 재검사나 다른 확진검사를 하지 않고 치료를 시작한다. 여성의 경우는 클라미디아를 채취하는 곳이 질 안쪽, 자궁경부다. 자궁경부는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외부로부터 균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확인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소속의 한 교수도 “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면 성행위에 의해 균에 감염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정부와 사건 관계자들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피해 아동을 처음 상담한 세이브 더 칠드런 K팀장은 “그 일과 관련한 복합적인 이야기가 있다. 말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고 했으며, S강사는 “당시 촉진, 시진 등 기본적인 검사만 했다. PCR 검사는 정자가 나올 확률이 있을 때 하는데, 두 아동은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그때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말했다. 재진료를 담당한 같은 병원 M강사는 “세균배양 검사에서 나오지 않는 균이 PCR 검사에서 나올 수 있지만 당시 PCR 검사는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아동 검사는 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서대문경찰서 사건담당 직원은 “여성가족부에서 이 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할 말도 없고, 말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아이들에 대한 심리평가보고서를 낸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는 “전문 평가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믿지 못하면 센터 업무 전체가 엉망이 된다”고 해명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성병 균이 검출된 것은 새로운 사실이지만 심리평가보고서와는 별개 사항이다. 잘못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산부인과 검진에 문제가 있었다면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산부인과 검진은 해바라기센터 소관 업무가 아니며, 해바라기센터가 잘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여성가족부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과연 이씨와 두 아이는 재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성빈 변호사는 “성병 균이 검출된 증거를 기반으로 수사기관에 다시 고소하면 재수사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수사당국과 법조계 관계자들은 “새로운 증거가 나온 만큼 재고소를 통한 재수사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가난한 중국동포 출신인 이씨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다. 한국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 지원센터 조순열 고문변호사는 “피해 아동과 그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성폭력센터나 상담소 내 ‘법적 증빙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 살, 여섯 살 자매 성병 균 검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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