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6

2010.05.10

하드록 전설은 세월을 거스른다

딥 퍼플 내한공연

  • 정일서 KBS 라디오 PD freebird@kbs.co.kr

    입력2010-05-10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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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록 전설은 세월을 거스른다

    하드록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딥 퍼플.

    짙은 자줏빛, 딥 퍼플(Deep Purple)은 아직도 그 빛을 다하지 않았다. 하드록의 전성기인 1970년대 레드 제플린과 함께 록계의 판도를 양분했던 딥 퍼플은 ‘붉은 비행선’이 비행을 마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도 도도한 걸음을 이어오고 있다.

    딥 퍼플의 역사는 사실 하드록의 역사다. 유난히 멤버들의 들고 남이 많았던 딥 퍼플의 직계와 방계를 훤히 꿰는 사람이라면 하드록 역사의 반 이상을 알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68년 데뷔한 딥 퍼플은 초기에는 건반연주자 존 로드의 주도 아래 클래식과 융합을 꾀하며 프로그레시브 록의 성향이 강한 음악을 선보였는데, 흔히 이 시기를 제1기로 본다. 이언 길런이 보컬을 맡고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가 음악적 주도권을 쥐었던 제2기 시절은 명실공히 이들의 최고 전성기라 볼 수 있다. ‘Child in time’이 수록된 앨범 ‘Deep Purple in Rock’과 하드록 역사에 빛나는 명곡 ‘Smoke on the water’ ‘Highway star’가 들어 있는 명반 ‘Machine Head’가 바로 이 시기에 발표된 앨범이다. 그리고 이언 길런을 떠나보내고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보컬리스트로 맞아들였던 것이 제3기인데, 이때 딥 퍼플은 국내에서만큼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발라드 ‘Soldier of fortune’을 내놓았다. 원래 이 곡은 1974년 발표된 앨범 ‘Stormbringer’에 수록됐으나 이 앨범이 국내에서는 1982년 지각 발매되면서 타이틀곡인 ‘Stormbringer’가 금지곡으로 빠지는 바람에 앨범 제목마저 ‘Soldier Of Fortune’으로 바뀌기도 했다.

    리치 블랙모어가 그룹을 떠난 뒤 딥 퍼플은 당시 천재 기타리스트로 주목받던 토미 볼린을 영입해 활동을 이어갔지만 1976년 끝내 해산을 선언했고, 토미 볼린은 그 후 25세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딥 퍼플의 해산 직후 리치 블랙모어가 이끈 그룹 레인보우와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주도한 화이트 스네이크가 사실상 딥 퍼플의 계보를 잇는 이란성쌍둥이 그룹이었다는 것은 록 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 딥 퍼플은 그렇게 살아 있었다.

    딥 퍼플은 1984년, 최전성기였던 2기 멤버를 규합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룹 결성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하드록의 전설 딥 퍼플이 내한공연을 한다. 현재의 구성은 전성기 시절 멤버인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베이스), 이언 페이스(드럼)에 실력파 연주자인 스티브 모스(기타)와 돈 에어리(키보드)가 합류했다. 그룹의 상징이라 할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없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현재의 라인업도 드림팀이라 부르는 데 손색이 없다. 5월 18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딥 퍼플을 만날 수 있다. 짙은 자줏빛은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도 은은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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