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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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도망자의 ‘가혹한 운명’

범죄인 인도조약으로 데이비드 남 송환 …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 정당성 의문

  •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입력2010-05-03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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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아쇠를 당긴 건 사실이다.”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된 한국계 남성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형사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 몹시 당황해 반사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전직 경찰관인 70대 백인 남성을 총으로 살해한 후 한국으로 도망쳤던 그는 10년간의 도피생활 끝에 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호송관으로 파견된 FBI 특별수사관들의 감시 속에 미국으로 압송돼, 사건 발생 14년 만에 법정에 섰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교포 2세 미국인이며, 이중국적자이기도 한 데이비드 남(남대현·1977년 4월 10일생)에게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렸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2010년 2월 19일, 선고공판에서 판사는 그에게 2급 살인죄를 적용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10년간 도피 생활



    “피고에게 영원히 감옥생활을 해야 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한다.”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형량 앞에서 그는 탄식하듯 마지막 진술을 토해냈다.

    “난 이제 끝났다….”

    도망자 시절 인연을 맺은 아내와 아이 셋은 지금 한국에 있지만, 34세의 이 청년은 죽어야 감옥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그가 3명의 10대들과 필라델피아의 한 주택에 침입했다가 주인 남성에게 총을 쏜 것은 19세 때인 1996년 6월이었다. 그는 도주했으나 그해 12월 경찰에 체포돼 구속됐고, 법원은 보석금을 100만 달러로 결정했다. 그의 공범들은 경찰과 플리 바게닝(Plea Bargaining)이라는 협상을 했고, 풀려나는 조건으로 살인을 자백하면서 데이비드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 결과 그들은 기소유예로 모두 석방됐다.

    데이비드는 구속된 지 1년여 만에 변호사의 노력으로 보석금 10만 달러를 내고 석방됐다. 그리고 재판을 앞두고 있던 1998년 3월, 발목의 전자족쇄를 끊고 한국으로 도주했다. 필라델피아 경찰은 도피를 도왔다는 혐의를 내세워 아버지 남기영(63) 씨를 수배했다.

    범죄에는 여러 유형이 있듯, 범죄 후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저지른 후 해외로 도피하거나, 해외에서 범죄 후 국내로 도피해 오거나,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 자신의 나라로 도망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려면 신병을 확보해 송환 절차를 거친 후 법정에 세워야 한다.

    범인을 데려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피차 범인을 추방하는 것이다. 추방이 결정되면, 경찰청 외사국 소속인 한국 인터폴(Interpol)은 공항에 나가 현지 인터폴이 비행기에 태워 보낸 범인을 데려온다. 비행기에선 도망갈 데도 없으니 아주 간단하게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 가끔은 현지까지 가서 호송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공식 채널에 해당된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조약을 맺은 후 공식요청을 통해 데려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간 조약을 ‘범죄인 인도조약(Extradition Treaty)’이라 하는데, 한국은 현재 30개 국가와 체결하고 있다. 이렇게 조약을 체결해 범죄인을 데려오는 이유는 해외로 도피해도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그들을 법정에 세워 피해자들에게는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경찰청 외사국이 인터폴에 의뢰해놓은 해외도피 수배자는 800여 명이지만, 실제로 도피 중인 사람들은 그 몇 배가 넘는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 90%는 경제사범이고 그 절반은 미국에 있다.

    범죄인 인도조약 20년 역사, 성과는 미약

    데이비드가 한국으로 도피한 것은 1998년 3월 14일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처음 한국에 온 그는 친척집을 거쳐 경주의 도자기 공장에서 일을 했다. 어느 날 그는 TV에서 자신이 공개 수배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고심 끝에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1999년 3월 3일 경주경찰서에 자수했다. 자수했음에도 정작 경찰자료에는 검거된 것으로 기록됐다. 데이비드는 법무부의 외국인수용소에 갇혔으나, 두 가지 이유로 석방됐다.

    필라델피아 도망자의 ‘가혹한 운명’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피어슨 역을 맡은 배우 장근석.

    하나는 출입국관리법의 위반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FBI의 지명수배자 신분이지만 미국과 체결된 인도조약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이라는 것이었다. 범죄인 인도조약이 미국과 체결된 것은 1998년 6월이고, 정식으로 효력이 시작된 시점은 1년 반이 지난 1999년 12월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는 신병인도를 요구했지만 그는 3월 4일 풀려났다. 하지만 이듬해 7월 미국 연방경찰인 FBI 서울지국이 미 대사관 내에 설치됐고, 한국계인 이승규 지국장이 법무부 ‘검찰 4과’에 데이비드의 소재파악과 체포를 요청했다. 검찰 4과는 범죄인 인도조약의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로, 지금은 ‘국제형사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10년간 이어온 도망자 생활이 마감되는 날이 왔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의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데이비드는 2008년 3월 18일, 경기경찰청 외사과 소속 경찰들에게 체포됐다. 그가 구속된 지 5개월이 지난 8월 26일, 법무부 장관이 서명한 ‘인도명령장’이 발부됐다. 명령장이 나오면 30일 이내에 해당국가로 신병을 넘겨줘야 한다. 미국은 FBI 특별수사관 2명을 한국으로 파견했고, 2008년 9월 16일 데이비드는 미국으로 압송돼 공항에서 기다리던 필라델피아 경찰에 신병이 넘겨졌다.

    범죄인 인도조약의 20년 역사에 비하면 성과는 미약한 편이다. 국제형사과는 지난 20년 동안 79명을 송환했고, 이 숫자에는 10여 년간 미국에서 데려온 30명이 포함돼 있다. 수사를 했든 제보를 받았든 범인의 소재가 파악되면 국제형사과는 공식요청서를 만든다. 기본 자료는 범인의 신원, 지문, 사진을 포함해 추정소재지, 범죄사실, 인도 요청된 범죄의 구성 요건이 기재된 법령,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이 기재된 법령, 구속 또는 체포영장 사본, 도피자가 유죄판결을 받을 자라는 사법당국의 설명서 등 끝이 없다.

    공식서류가 준비되면 모두 영문이나 스페인어 등 해당 국가의 언어로 번역하는데, 실수는 없는지 일일이 확인을 거친다. 이 작업에는 서너 명이 매달려 2주나 소요되지만 길면 한 달 이상 걸리는 때도 있다. 공식요청서는 법무부 장관이 결재한 후, 미국의 경우 외교부가 한국대사관에 전달한다. 요청서는 미 국무부로 갔다가 법무부 연방검찰을 거쳐 범인의 소재지라고 추정되는 현지의 주 검찰청으로 보내진다.

    그곳 검사는 판사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해 받고, 어느 기관에 수사요청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 수사는 대체로 연방보안관인 유에스 마셜(US Marshall)이나 연방경찰인 FBI가 맡는데 주 경찰에 지시가 가기도 한다. 때론 이민국(INS)이 개입할 때도 있지만, 도망자 수사가 그들의 임무는 아니다. 수사관에게 사건이 배정돼도 남의 나라 일인 만큼 서두르질 않는다. 빨리 잡는다고 진급될 것도 아니어서 자신의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다 시간이 남아야 범인을 찾아나선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공식요청서를 만들고, 이것이 바다를 건너가고, 해당국가에서 여러 기관을 거치고, 수사기관이 결정되고, 수사관이 현장에 가기까지는 빨라야 두 달, 늦으면 서너 달도 걸린다.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 소재 파악

    도망자들은 대체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서, 조금만 느낌이 이상하면 은신처를 뜬다. 그러니 소재를 파악했어도 두 달이나 석 달 후에 가보면 사람은 없고 헛수고만 한다. 범인의 신병 확보는 하루가 급한 일인데, 국제형사과에서 골머리를 앓아가며 만든 요청서가 여러 곳을 떠도느라 세월만 보내니, 조약이 존재해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제형사과가 미국에서 처음 인도받은 사람은 회사 공금 30억 원을 횡령해 도주했다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체포된 한모 씨(1957년생)로, 2001년 10월 10일 송환됐다. 한편 미국으로 처음 보낸 사람은, LA법원에서 불출석재판을 통해 강도·강간 등 39건의 유죄판결로 271년을 선고받은 미국 국적의 강현구(1969년생)인데, 이때가 2001년 10월 29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양쪽 다 첫 사례를 한 건씩 주고받은 셈이다.

    그 후 1년이 지난 2002년 12월 한국 국적의 김태호(1977년생)가 미국으로 압송됐다. 그는 자국민이어서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국제형사과는 그가 LA에서 범죄단체를 조직했고, 권총강도 혐의를 받고 있으며, 범죄행위가 미국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따져볼 때 안 보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범인이며 미국으로 도주한 아더 패터슨(1979년생)을 넘겨받기 위해서였다. 이를테면 상호주의 원칙 아래 두 사람을 맞바꾸려는 의도였던 것.

    필라델피아 도망자의 ‘가혹한 운명’

    1999년 12월 10일 김대중 정부 당시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가 범죄인 인도조약 비준서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패터슨은 1997년 4월 3일 친구인 에드워드 건 리(1979년생)와 함께 서울 이태원 버거킹의 화장실에서 23세의 홍익대생 조중필을 칼로 찔러 그 자리에서 사망케 했다. 이 사건으로 둘은 모두 기소됐다. 리는 1997년 10월 서울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해 1998년 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20년으로 감형됐다. 이후 다시 상고해 1999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패터슨은 흉기소지와 증거인멸 두 가지 혐의로 기소돼 1년 6월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특사로 가석방됐다. 그는 출국금지 상태였지만, 담당검사가 실수로 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바람에 금지가 풀린 바로 다음 날인 1999년 8월 24일 미국으로 가버렸다. 국제형사과에서는 패터슨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2005년 미 법무부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하면서 소재를 파악해달라고 했으나 알 수 없다는 회신이 왔다.

    수년 후, 이 사건이 방송을 통해 다시 소개됐다. 방송에서 패터슨이란 이름이 등장했고, 이에 착안한 서울지검 외사부 사건담당인 C주임검사가 그의 지문 자료를 정밀 스캐닝 하는 등 수사 자료를 새로 만들어 2009년 9월 미 법무부로 전달했다. 한 달 후인 10월, 미 법무부에서 회신이 왔다. 재판 중인 사건의 인물과 수사 자료의 내용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패터슨의 소재가 파악되자 국제형사과는 2009년 12월 29일 인도요청을 했으며, 요청서는 올해 1월 초 미 법무부에 전달됐다. 최근 미 법무부가 패터슨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추가 자료를 보내라고 요구해 국제형사과가 곧 보낼 예정인데 그를 데려오려면 미국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형기가 끝나야 하고,‘인도재판’을 거쳐 허가가 나야 한다.

    인종차별 편견 희생자일 수도

    미국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첫 번째로 넘겨받기를 원한 사람은 데이비드였다. 그는 FBI의 1급수배자였고 살인혐의를 받고 있었으나 공범들의 진술을 빼놓고는 주범이란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살인혐의로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그의 아버지 남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종편견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증언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점차 반항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고 했다.

    “데이비드가 길거리에서 한국인 학생이 백인 아이들에게 맞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달려들어 패싸움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타난 경찰관이 데이비드를 발로 밟았고, 아이는 막느라 다리를 잡았을 뿐인데, 경찰폭행과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됐죠.”

    그 일로 2년의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살인 사건이 났는데 이때 사망한 피해자는 전직 경찰관이며 백인이다. 이 같은 사실이 유색인종인 그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당시 필라델피아 경찰사회는 유색인이 백인에게, 특히 전직 경찰관에게 총을 쏘았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또 그에게 전과가 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유색인이고 전과자라는 공정하지 못한 편견의 잣대가 데이비드를 암담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미국 검찰 관계자들은 그를 향해 “사형선고를 받아내겠다”며 여러 차례 필라델피아 언론에 공언했다. 데이비드는 총을 쏘았으나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호소했다.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살인을 목적으로 집에 침입했던 게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집주인에 놀라 총을 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란 가혹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에서 10년간 이어졌던 도피생활로 그의 몸과 마음이 피폐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지만, 그의 이런 험난한 여정도 재판에 참작되진 못했다.

    패터슨 역시 살인혐의를 받고 있지만 사건은 데이비드와 많이 다르다. 그는 소변을 보던 피해자에게 접근해 칼로 목을 찔러 경동맥을 잘랐다.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살인이다. 데이비드는 실수로 빚어졌을 수도 있는 살인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살인을 한 패터슨은 어떤가. 범죄인 인도조약을 통해 그의 송환이 이루어졌을 때,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형량이 선고될 것인가.

    애초에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리가 항소심에서 20년으로 감형된 것을 기억한다면, 그가 데이비드보다 더한 중형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데이비드의 범죄와 당시 상황과 의도를 비춰보면, 그가 지은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무겁다. 이런 일들을 따져볼 때,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인종차별적인 편견과 편파 수사 및 재판의 희생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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