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9

2010.03.30

性범죄자 ‘화학적 거세’ 과연 효과 있나?

“호르몬주사 재범률 낮춰” vs “합병증 등 부작용 커” 논란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3-23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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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性범죄자 ‘화학적 거세’ 과연 효과 있나?
    “놀라운 일이었어요. 미국 메릴랜드 주에는 30년째 성범죄자들만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있더군요. 존스홉킨스병원 겸임교수이기도 한 베를린 박사라는 분인데, 성범죄자만 대상으로 하는 개인병원을 개원한 뒤 교정 당국과 연계해 ‘섹스 중독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고요. 아동성범죄자들은 출소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4주에 한 번씩 ‘루프론 데포 (Lupron Depot)’라는 호르몬주사(7.5mg)를 근육이 많은 신체 부위에 맞아요. 이 주사제는 여성호르몬의 생성을 유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성호르몬의 활성을 막고 성욕을 감퇴시키죠. 여성호르몬을 즉각 투여하는 것보다 부작용이 적은 편이에요.”

    2007년 미국 성범죄자 치료 현장을 살피고 돌아온 공주치료감호소 최상섭 소장.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그는 미국의 ‘화학적 거세제도’의 탄생지인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성범죄 치료 권위자가 있는 메릴랜드 주를 방문한 이후 “화학적 거세제도를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교정 현장은 성범죄자의 ‘감시와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최 소장이 방문한 나라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치료’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독일에서 “수감생활보다는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는 재소자를 만난 이후 그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자발적으로 선택 후 적격 심사”

    “행동심리치료의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5년이 걸립니다. 반면 호르몬치료는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죠. 물론 값비싼 호르몬주사(월 1회 주사제가 700~800달러)를 지속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이 부담이긴 해요. 공주치료감호소에서는 출소 후에도 치료받고 싶다는 성범죄자가 꽤 많습니다. 출소자는 범죄에 빠지지 않아서 좋고, 사회는 그만큼 안전해져서 좋으니, 이 치료에 동의한 사람들은 계속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어요?”

    최근 ‘김길태 사건’ 이후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08년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 등 31명이 발의한 ‘상습적 아동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안’에 다시금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 일명 ‘화학적 거세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의 골자는 ‘13세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자’ 가운데 감형 등의 인센티브를 고려해 ‘화학적 거세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적격 여부 심사를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호르몬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함으로써 아동성범죄 재범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물론 화학적 거세가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박 의원실의 김희덕 보좌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샘플)’이 화학적 거세를 받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힘들뿐더러 재범률 또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여러 약물이 성적 일탈에 특별한 효과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항안드로계 성분인 MPA(Medroxy Progesterone Acetate·생식샘자극호르몬의 분비와 테스토스테론의 촉매를 감소시키는 호르몬), CPA(Cyproterone Acetate·세포 내 테스토스테론 흡수를 막고 혈장 테스토스테론을 감소시키는 호르몬)는 성행동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로토닌계 약물은 성인에 대한 성적 흥분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 흥분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중앙호르몬계 약물 또한 변태성욕적 환상은 물론, 비정상적 성행동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호르몬치료가 재범률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비정상적 성욕이나 성적 환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성범죄자는 전체 성범죄자의 10%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나머지 90%에게는 약물치료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밀러)는 것.

    性범죄자 ‘화학적 거세’ 과연 효과 있나?
    화학적 거세의 효과보다 부작용을 경고하는 학자들도 있다. 체중감소, 당뇨병, 담낭 기능의 불규칙화, 피로, 기면증(嗜眠症), 불면증, 고환 수축, 발한, 악몽, 호흡곤란, 생식기능 저하, 수족 경련, 혈액응고, 고혈압, 포도당에 대한 인슐린 과민반응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인체의 여성화 진행 여부에 대한 논의도 현재 진행형이다.

    반면 이 제도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들은 “부작용이 덜한 호르몬제를 선별해 사용하면 문제가 적고 호르몬제를 끊으면 그마저도 없어진다”고 말한다. 박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까지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동성범죄를 줄이려면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감내해야 한다”면서 “범죄자의 동의를 거쳐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전자발찌만으로는 한계 있어”

    학계에서도 화학적 거세를 찬성하는 입김이 세다. ‘화학적 거세법’의 기틀을 마련한 한양대 법학과 황성기 교수는 “아동성범죄를 줄이는 여러 해결책 중 하나를 더 늘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시행 중인 아동성범죄자의 신상등록 및 공개제도와 전자발찌제도만으로는 아동성범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영이의 주치의이자 아동성폭행 피해자 전문의인 연세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도 같은 생각이다. ‘처벌’이 아닌 ‘치료’ 측면에서 찬성한다는 것. 그러나 신 교수는 “교정 당국의 성문제 접근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법이 통과돼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호르몬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도록 법안에 명시돼 있지만, 주사를 놓을 수 있는 보호관찰관이나 비뇨기과 의사 등이 호르몬치료와 정신과 의사의 영역인 인지행동치료를 겸한다면 ‘치료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동성범죄 관련 전문 연구자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강은영 박사는 다른 맥락에서 “전문의를 비롯한 전문가의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성범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처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동성범죄자의 3분의 1은 노인이기 때문에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하더라도 돌아오는 불이익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의 처벌을 내리는 것이 낫습니다. 또한 아동성범죄자 가운데 소아기호증을 가진 사람이 30% 미만이라는데, 이들의 경우 호르몬치료가 유효하지만 나머지 성범죄자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치료를 통해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범죄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시행 중인 제도부터 정비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범죄 프로파일링에서 경찰과 교정기관의 협력에 관한 연구’(2006)를 발표한 바 있는 울산대 경찰행정학과 이창한 교수는 전자발찌제도부터 정교하게 다듬자고 말한다. 지금처럼 경찰과 법무부 산하기관인 보호관찰소와의 연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자발찌를 끊고 도망간 성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보호관찰관들은 현재 경찰의 협조 없이 1인당 5, 6개 행정구역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살아가는 성범죄자들을 책임지고 있다.

    *화학적 거세제도

    성범죄자에게 호르몬 또는 약물을 투여해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감소시키거나 인체 내에 분포하는 안드로겐 수용체에 의한 테스토스테론의 흡수를 억제시켜 남성의 성욕은 물론, 성적 공격성도 감소시키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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