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대한민국 ‘엄마 검사’들이 사는 법

지방 근무와 격무 속 양육이 최대 고민 … “가족과 부모님 희생이 가장 미안”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3-04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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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엄마 검사’들이 사는 법

    2월8일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 여성 비율 55.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3년 열린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양측은 좀처럼 대화의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의 말에 순간 장내가 싸늘해졌다. 생방송으로 TV를 지켜보던 국민도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감이 감돌던 토론 말미, 한 검사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검찰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십시오.” 당시 39세의 홍일점으로 참석한 이옥(46·사시 31회)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이었다. 이날 그는 야무지면서도 온화한 언변으로 국민에게 얼굴을 알렸다.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금 언론에 오르내렸다. 18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난다는 소식이다. 검사의 사퇴는 흔한 일. 피라미드형의 조직구조상 인사철마다 간부급 검사들이 우르르 변호사로 업종 변경을 한다. 검사생활의 황금기인 중앙지검 부장으로 검사직을 그만두면 변호사 수임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검사 No.2 이옥 부장의 사퇴

    하지만 이 부장의 사퇴 배경은 의외였다. “고3이 되는 외아들의 양육과 양육비에 대한 부담, 이혼한 딸을 대신해 외손자를 돌보던 노모의 건강 문제” 등이 골자였다. 상황은 자연히 “안팎으로 인정받던 여검사가 양육 문제로 조직을 떠난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인데 여러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한 신문 사설이 ‘사교육’과 연결했던데, 그건 좀 민망한 일입니다.”



    거듭된 전화 인터뷰 요청에 이 검사는 난색을 표했다. 검찰 사내방송 후배들의 부탁도 거절할 만큼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음 정리가 채 끝나지 않았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조직에 대한 미안함과 예상치 못한 보도로 인한 당혹스러움도 내비쳤다. 하지만 ‘양육’ 관련 대목에서는 속상한 기색이 분명히 읽혔다. 그를 보내는 동료들의 마음은 어떨까.

    “남자 검사들도 경제적 이유로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양육’과 ‘여검사’를 연결 짓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이라고 봅니다.”(박계현 사법연수원 교수·46·사시 32회)

    “일하는 모든 여성이 양육 문제로 고민하잖아요. 지방 순환근무가 많고 일의 성격이 거칠긴 하지만, 여검사만의 문제는 아닌 거죠.”(김진숙 사법연수원 교수·46·사시 32회)

    현재 부장급 이상 여검사는 모두 6명. ‘대모’ 격인 조희진 차장, ‘넘버 2’인 이옥 부장, 서열 3위 ‘3인방’인 이영주(43·사시32회) 대검 형사2과장·박계현 교수·김진숙 교수, 그리고 최정숙(43·사시 33회) 사법연수원 교수 순이다. 전국의 여검사가 열 손가락 안에 꼽히던 시절에 맺은 인연은 20년이 지나 용건 없이 밥 먹고 고민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여’검사에 대한 편견을 경계하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와 남편이 미국에 갈 때 로스쿨 교수직을 제안받았어요. 그때 잠깐 ‘교수가 되면 좀더 자유롭지 않을까’라고 고민했죠. 함께하는 가족 형태가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과 ‘여검사 1호’라는 책임감으로 고비를 넘겼지요.”

    조희진 차장은 ‘기러기 엄마’다. 3년 전 남편과 고2 아들이 미국으로 떠나고 서울에 홀로 남았다. 공직에 있는 남편이 미국으로 파견가면서 아이도 함께 보낸 것.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아이에게 그곳의 교육환경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다. 아이는 시부모, 친정부모, 이모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자랐다. 남편의 유학 시절에는 엄마와 떨어져 미국에서 1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온 아이가 한동안 살이 찌고 한국말에 서툴러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미국에 가서는 다시 밝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영주 과장도 양육 문제로 사표를 쓴 적이 있다. 그는 고2부터 4세까지 아들 둘, 딸 둘을 둔 ‘다둥이 엄마’. 2006년 넷째를 가진 뒤 창피함 반, 늦게 얻은 아이를 온전히 돌보고 싶은 마음 반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주변에서 ‘잘 생각하라’며 만류해 휴직을 했고, 쉬는 동안 살림보다는 검사 일을 더 잘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복귀했어요. 아이들에게는 늘 미안한데, 이번에 둘째 때문에 특히 속상했어요. 제가 도와주지 못해 혼자 국제중학교 원서를 준비하더니 결국 떨어지더라고요.”

    대한민국 ‘엄마 검사’들이 사는 법

    1 2003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2 여검사 서열 1, 2, 3위인 조희진 차장, 이옥 부장, 김진숙 교수(왼쪽부터).

    ‘업무 스트레스’로 불임과 자연유산 빈번

    김진숙 교수는 여검사가 특히 힘든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지방 순환근무’와 ‘예측 불가능한 일의 성격’이다. 여검사가 흔치 않던 시절이 그나마 나았다. 소수자에 대한 인사 배려(어찌 보면 기회 박탈)로 지방근무를 짧게 마쳤다. 지방 배려도, 부서 배려도 없어진 지금은 수시로 지방발령을 받는다.

    “아이가 세 살 때까지 입주도우미가 15번 바뀌었어요. 아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 마음 맞는 도우미를 찾느라 엄청 고생하다가 결국 아이를 광주 시댁으로 보냈죠. 남편도 그곳 대학의 교수라 주말마다 제가 광주로 내려가요.”

    박지영(40·사시 39회) 서울 동부지검 검사는 10년간 떨어져 지낸 아이들과 일주일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 광주로 발령받은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을 돌봤다. 그는 “친정어머니가 올라와 적응을 도와주고 있다. 심지어 아이 둘을 각각 시댁과 외가에 맡기고, 부부도 떨어져 사는 ‘4집 살림’도 있다”고 말했다.

    양육을 넘어 교육 단계에 들어서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박계현 교수는 부부검사다. 부부 모두 교육관이 자유로운 편이라 아이들 공부에 간섭하지 않지만, 두어 달에 한 번씩은 잠을 뒤척인다. 바로 학부모 모임에 다녀온 다음 날이다. 그는 “아이는 엄마가 신경 쓰는 만큼 따라온다. 법조인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지라 자식들도 당연히 잘하겠거니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아 속 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다 다시 사건이 터지고 업무에 치이면 걱정을 까맣게 잊는다.

    “강남에서는 직장 가진 엄마들, 특히 전문직 엄마를 싫어한다고 해요. 의사보다 법조인이 자녀 문제에 소극적이고 아이들을 내팽개친다는 인상이 강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공무원에다 야근이 비일비재한 검사 신분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죠.”

    최근에는 불임으로 고생하는 젊은 여검사가 늘었다. 조 차장은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나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거나 자연유산하는 여검사가 많다. 최근 한 검사는 쇠약 진단을 받아 휴직을 하기도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검사 일은 물리적인 어려움보다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더 커요. 돈을 세는 것처럼 물체와 씨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진술, 감정과 씨름하는 작업이니까요. 날 선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늘 머리가 개운치 않아요. 그래서 시간 여유가 있어도 아이나 부모님을 생각하기 힘들죠.”

    인터뷰에 응한 여검사들은 그럭저럭 일과 가정을 지켜온 공을 가족에게 돌렸다. 남편의 이해와 부모님의 희생으로 검찰에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배려에 대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필요하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현재 휴직 중인 이옥 부장은 3월 초 정식으로 검찰을 떠난다. 그를 보내는 후배들은 “좋은 역할모델을 잃어 안타깝지만 또 다른 길을 제시해주리라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부부장급 이상 ‘엄마 검사’ 10명은 2월25일 이 부장의 인생 2막을 응원하기 위한 송별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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