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2010.01.26

둘째 아이? 불쑥 내게 온 축복이었네

소설가 김태용의 ‘둘째 키우는 즐거움’ … 직접 키워봐야 그 기쁨과 느낌 알 것

  • 김태용 소설가 maranana@naver.com

    입력2010-01-19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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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아이? 불쑥 내게 온 축복이었네
    살다 보면 인생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순간 이 삶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혹시 내가 간절히 원하던 삶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이렇게 될 일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희극적 승복의 순간.

    내겐 둘째 아이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첫째 아이도 그랬다. 대개의 작가처럼 나 역시 이타심보다는 자의식으로 무장한 채 내면의 공허한 고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멸시하고, 주기적으로 인생의 비극예찬에 빠지는. 그래서 사랑은 하되 나와 닮은 존재를 마주하고 싶지 않고,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은. 한마디로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스무 살 때 한 여자를 만났다.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결혼서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낳지 말자”는 나의 선포에 아내가 조금은 서운해했던 것 같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별 기대 없이 “아이를 낳아볼까”, 장난처럼 대화하다 ‘낳기’로 합의했다.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무도, 아이에 대한 애정의 발로도 아니었다.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이가 있어도 좋겠다’는 다소 무책임한 긍정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출산 시기까지 고려해 계획한 대로 임신이 이뤄졌다.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거꾸로 누워 있어 제왕절개를 했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출산이었다. ‘이왕이면 딸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실현됐다. 그렇게 2004년 4월 첫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바로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것이 결혼인 줄만 알았으나 아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출현은 지구를 통째로 한 바퀴 돌려놓은 것 같았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고, 나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됐다.



    내 표정부터 달라졌다는 주변의 반응에 한편으론 쑥스러웠고 한편으론 우쭐했다. 하나의 생명체를 돌본다는 것의 숭고한 피로감은 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새어나오게 했다. 한 아이만 건강하게 잘 키우자는 다짐을 여러 번 했다. 둘째를 낳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했다.

    하지만 3년마다 아내와 나의 기운이 맞는지, 전혀 계획에 없던 아이를 3년 만에 또 갖게 됐다. 임신 소식을 듣자 고무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침 작가로, 생활인으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첫째 아이에 대한 육아의 피로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는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를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고개를 심하게 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토록 아이의 존재는 심각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런 심리의 이면엔 경제적 부담이 크게 자리했다.

    고무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

    아내 역시 둘째의 임신에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엄마는 확실히 아빠와 달랐다. 첫째를 위해서라도 동생이 있는 것이 좋다며 임신을 곧바로 축복으로 여겼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엄마 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랐다. 초음파 사진 속 둘째는 첫째와 무척이나 흡사했다. 첫째는 엄마의 배를 보며 마치 동생이 옆에 있는 듯 조그만 입술로 종알종알 동생을 불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첫째를 보며, 이 아이가 동생 없이 자란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하기도 했다.

    2007년 4월 둘째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딸과 아들 남매. 주변에선 200점짜리 아이들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무엇보다 아이의 얼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 부부를 기쁘게 했다. 누구를 닮았나 조목조목 따져보다 다들 엄마, 아빠는 물론, 누나와도 똑같이 닮았다고 얘기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같은 유전자’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외형이 더욱 닮아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두 아이가 비슷한 외형에 비슷한 성격이 아니라, 비슷한 외형에 조금은 다른 성격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이유식과 육아법, 집안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도 둘의 성격은 달랐다.

    첫째가 자기 내면에 치중해 상처를 쉽게 받으면서도 스스로 극복하려는 성향의 아이라면, 둘째는 사내아이답지 않게 ‘새처럼 지저귀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누나가 귀찮아서 피할 정도로 졸졸 따라다닌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따지기도 한다. 간식거리가 생기면 꼬박꼬박 누나 것을 먼저 챙겨놓고, 누나에게 가져다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익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부모가 안 보는 사이에 누나가 군기를 잡는지도 모르지만.

    둘째 아이? 불쑥 내게 온 축복이었네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 생긴 둘째들

    아빠인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르다. 첫째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언제부터 첫째는 나를 ‘자가’라고 부른다. ‘자가’는 ‘자기’의 변형인데, 처음엔 엄마를 따라 한 것이겠지만 이 말이 익숙해지다 보니, 아빠라고 부르기를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하인(?)처럼 부리기도 한다. 반면 둘째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목소리를 꼬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두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지 궁금하기만 하다.

    ‘둘째 키우는 즐거움’이라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동안 아이, 특히 둘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둘째가 태어난 후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첫째보다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인들이 둘째를 가져 무엇이 좋은지 물으면 명확히 설명할 순 없다. 그냥 ‘예쁘니까’ ‘첫째하고는 달라. 직접 키워보면 알아’라고 막연히 말할 뿐이다. 하지만 이 막연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둘째를 가진 부모들은 알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작업실에 있다. 아이에 대한 글이니 아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집에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첫째가 열이 나고 목이 아프다고 앓아누웠다. 밥도 거르고 약도 잘 먹지 못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고 둘째는 “누나가 아파요. 누나가 울어요” 하며 덩달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면서도 아프다는 이유로 누나가 엄마를 독차지하는 모습을 보고는 더 과장되게 웃으며 논다.

    누나 옆에서 낮잠을 잔 둘째도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누나로부터 감염된 것일지 몰라도, 누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아이다운 심리가 감기 증상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둘을 떼어놓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서로 감기약을 먹으려고 다투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하러 작업실에 간다”는 아빠의 말에 첫째는 무심히 손을 흔들었지만, 둘째는 열이 올라 발개진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누나와 내가 아프니까 엄마, 아빠가 다 옆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 같아 애잔했다. 사탕을 꺼내 입속에 넣어주고 나서야 울음이 그쳤다. 아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아이를 울려야 하다니, 작업실로 향하는 발길이 조금은 무거웠다.

    이 글이 둘째를 위해서인지, 둘째를 키우는 부모를 위해서인지, 둘째를 포기한 부부를 위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 생긴 둘째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나 역시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내 위로 몇 차례 유산을 해 더 이상 임신과 출산이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우연히 나는 생겨났고 예정보다도 빨리 세상에 나왔다. 세상의 둘째 중에는 첫째보다 부모의 무계획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예상치 않게 태어나 예상치 않게 성장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 역시 어릴 적 막연하게 결혼하면 둘 이상 낳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둘째로서 때로는 부족하게, 가끔은 과하게 받은 사랑을 둘째를 키우면서 배우고 싶은 건 아니었던가. 첫째가 무한한 애정의 대상이라면, 둘째는 나를 돌아보고 부모와 형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다. 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황홀한 희극과도 같다.

    그렇다면 셋째와의 시간은 어떨까. 아니, 난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김태용 씨는 2005년 단편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집’으로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2007년 발표한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로 제41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자음과 모음’에 연재한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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