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5

2009.12.15

“허둥지둥하다 피해 늘어… 더 센 놈 오면 크게 당할라”

‘이기적인 바이러스 플루’ 출간 김우주 교수의 ‘정부 지침 없이도 대유행에서 살아남는 법’

  • 김수영 자유기고가 futark@daum.net

    입력2009-12-10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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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둥지둥하다 피해 늘어… 더 센 놈 오면 크게 당할라”
    날씨가 서늘해진 지난 10월 이후 대한민국엔 무시무시한 ‘블록버스터’ 한 편이 상영되고 있다. 제목은 ‘죽음을 부르는 바이러스의 대공습’쯤 될 것이다. 2009년 5월 신종 인플루엔자 A(H1N1)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6개월, 8월15일 첫 사망자가 나온 지 3개월 만에 사망자가 100명을 돌파했다. 도대체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부와 의료계, 학계, 언론은 왜 각기 다른 소리를 낸 것일까.

    ‘신종플루 해결사’로 잘 알려진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은 책 ‘이기적인 바이러스 플루’를 최근 펴냈다. 그는 정부의 신종플루 대비에 직간접으로 간여하며 신종플루 백신 임상을 이끌기도 했다. 그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이유 중 하나는 2004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신종 바이러스의 귀환을 예고했을 뿐 아니라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여러 대책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책을 낸 이유는 관료도 의사도 국민도 신종플루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비단 신종플루뿐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신종 및 변종플루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또 다른 배경이 됐다. ‘정부, 의사, 기자, 국민 모두 다급한 나머지 균형 잡힌 시각을 잃어버렸고, 전문가들의 조언조차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짜깁기하다 보니 의학적 데이터에 입각한 객관적 시선을 잃어버린 채 소통됐다’는 게 그의 생각.

    “정부 대응, 순서와 타이밍이 잘못됐다”

    그의 말대로 항바이러스제 비축, 백신 준비, 팬데믹(신종플루의 세계적 대유행)에 대비한 의료진 교육,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정책이 제대로 마련됐다면 이렇게 북새통을 떨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의 책 ‘이기적인 바이러스 플루’는 의사의 시각에서 본 바이러스 정책, 사망자 사례 분석,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괴담, 앞으로 다가올 신종 바이러스 대책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정부 정책의 부재로 죽지 않아도 될 환자가 죽었고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신종플루 괴담에 이어 백신 괴담이 돌았으며 △신종플루의 확산 속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휴교령 시기를 놓쳤고 △의료 종사자들은 경험 부재로 진단과 치료에 자신이 없었고 △ 그 결과 국민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는 ‘선방(善防)을 하고 있다’고 정부와 의료계를 평가했다. 미국은 백신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민에 빠져 있고, 항바이러스제도 백신도 없는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고자 변종플루가 나타났다는 괴담을 정부가 앞장서서 유포하는 실정이라는 것.

    그는 “정부가 신종플루 출현에 대비해 항바이러스제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고 의료진과 국민을 제대로 교육했다면 피해를 지금보다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정부의 대응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순서와 타이밍이 옳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정부의 발표가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것.

    혼란의 첫 번째 요인은 질병관리본부가 타미플루 처방 지침을 수차례 바꿨다는 것. 첫 번째 사망자와 두 번째 사망자의 경우 정부의 ‘엄격한 지침’(오남용 처방 의사 3진 아웃제 등) 때문에 제때 타미플루를 처방받지 못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 비축분이 인구의 2%에 불과했으니 이런 ‘엄격한 지침’이 잘못됐다고 비난하긴 어렵다. 이후 타미플루 처방 속도가 점차 빨라지긴 했지만 열 번째 사망자까지 평균 4~5일이 걸렸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사망자 사례를 보면 첫 번째 사망자는 발병 5일째에 사망했지만 아예 투약이 이뤄지지 못했고 두 번째는 발병 7일째, 세 번째, 네 번째 사망자는 병원을 찾은 지 3~4일 만에 투약이 이뤄졌다. 초기 대응이 늦었다는 얘기.

    더욱이 첫 번째 사망자는 누가 봐도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확률이 높은 환자였다. 동남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열이 나 바로 보건소에 갔지만 단순 열병 취급을 받았다. 그 후 정형외과에 갔지만 감기약만 처방받았다. 5일째 되던 날 상태가 악화돼 대학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저산소증으로 쇼크 상태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김 교수는 우선 신종플루에 대한 의사 교육의 부실을 들었다. 다음은 타미플루에 대한 의사들의 생경한 인식. 타미플루는 신종플루뿐 아니라 계절플루에도 일반적으로 처방하는 항바이러스제인데, 일본에선 너무 흔하게 처방해 문제가 된 반면 우리 개업의는 써본 적이 거의 없는 생소한 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첫 사망자 발생 당시 보건소에는 이 약이 비치되지도 않았다. 그때까지 타미플루 처방 규정은 외국에서 들어온 자, 65세 이상 노인, 임신부, 만성질환자로 37.8℃ 이상의 고열 환자 등이었다. 첫 사망자는 외국을 갔다 왔기에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지만 열이 37.7℃로 규정보다 0.1℃ 모자랐다. 만약 그가 보건소를 방문한 첫날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8월15일 첫 번째 사망자와 16일 두 번째 사망자 모두 타미플루 처방이 늦었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8월22일과 9월1일 질병관리본부는 타미플루 처방 규정을 다시 수정했다. ‘열이 나면 적극적으로 타미플루를 처방하라’고 권장한 것. 그러나 의사들은 여전히 처방을 망설였다. ‘열이 지속될 때는 투여할 수 있다’는 등 지침의 문구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미플루 처방이 적절치 못할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삭감한다는 단서조항도 달려 있었다. 뒤에 가서 정부는 ‘타미플루의 경우 남용 여부를 심사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지만 개원가의 타미플루 처방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허둥지둥하다 피해 늘어… 더 센 놈 오면 크게 당할라”
    건강한 환자 사망원인은 ‘사이토카인 스톰’

    항바이러스제가 늦게 투약된 것을 안 국민은 ‘확진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확진을 받아야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8월16일 이후 거점 병원에 의심환자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그 바람에 확진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5일 이상 걸려 검사는 한때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 혼란 요인으로 김 교수는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과 의사의 무지를 들었다. 정부의 말대로 신종플루 환자의 95%는 집에 격리해 요양시키면 병을 이겨낼 수 있다. 문제는 고위험군 및 건강했으나 감염 후 중증상태를 보이는 나머지 5%의 환자. 첫 번째 사망자와 7세 아동, 중·고생 등 고위험군이 아닌 건강한 환자가 사망한 것은, 비록 연구단계이긴 하나 현재로선 ‘사이토카인 스톰’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사이토카인은 면역반응 결과 나오는 물질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 인체 장기를 공격하는 현상을 사이토카인 스톰이라 한다. 김 교수는 “그간의 데이터를 검토해보면 건강하고 젊은 환자의 사망은 예견됐다”고 말한다. 실제 미국 질병관리센터(CDC)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신종플루 사망자 중 25~49세가 가장 많은 41%를 차지했다. 그래서 그는 “신종플루에 걸렸다면 격리와 요양을 하되, 예민하게 상태를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 교수의 책은 이 밖에도 우리의 상식과 달리 신종플루의 병독성이 계절플루 수준보다 크며 전염력은 계절플루의 3배 이상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왜 신종플루로 인해 뇌염이 발생하는지, 다른 장기가 왜 고장 나는지, 열이 안 나는 신종플루가 왜 발생하는지 등 신종플루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펼쳐질 ‘플루 시나리오’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우리나라는 철새들의 이동경로로, 해마다 조류독감 등 각종 바이러스의 공습을 받고 있다. 조류독감은 이미 사람으로 감염돼 종 간의 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가족 간 감염까지 이뤄냈다. 사람 간 감염만 이뤄내면 신종플루보다 훨씬 치명적인 팬데믹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이기적인 바이러스 플루’라는 제목 뒤에 생략된 말은 ‘정부의 지침 없이도 바이러스 대유행에 별 탈 없이 살아남는 법’일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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