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2017.04.05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또 다른 풍경의 우주를 꿈꾸다

도재명 솔로 앨범 ‘토성의 영향 아래’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04-04 13: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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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에 몸담고 있던 이가 솔로 활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자신을 좀 더 드러내기 위해서가 첫 번째요, 밴드에서 못한 것을 해보려는 게 두 번째다. 전자는 회사로 치면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 회사로 바꾸는 일과 비슷하다. 후자는 업종 전환이나 확대에 가까울 테다. 헌데 현실 회사가 대부분 그렇듯, 후자가 성공하는 경우는 전자에 비해 많지 않다. 혁신이건, 확장이건 쉽지 않기에 특별한 가치로 여겨지는 게 아닌가.

    도재명의 첫 솔로 앨범 ‘토성의 영향 아래’는 후자의 사례다. 그가 몸담고 있던 밴드 ‘로로스’는 2006년 ‘Scent Of Orchid’로 데뷔, 2015년 해체할 때까지 한국 록계에서 의미 있는 지분을 차지했던 팀이다. 기타와 건반, 첼로가 어우러지는 광활한 소리의 풍경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이국 광야의 모습이었고 동화 같은 우주의 묘사였다. 정교한 묘사로 커다란 상상을 했던 팀이다.

    2007년 EBS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에 선정됐으며, 정규 데뷔 앨범 ‘Pax’로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앨범이자 두 번째 정규작 ‘W.A.N.D.Y’는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장기하와 얼굴들, 검정치마, 국카스텐, 브로콜리 너마저가 잇달아 등장하며 개화한 인디 르네상스에서 로로스를 빼놓는다면 중요한 한 장(章)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로로스의 마지막 앨범 이후 싱글 3곡을 발표하고 3년 만에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도재명은 밴드라는 공감이자 제약의 틀을 벗어나 다채로운 그림을 그린다. ‘토성의 영향 아래’는 영화 없는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이다. 아니, 영화뿐 아니라 발레, 연극, 마임, 무용 등 무대와 스크린에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된 소리이기도 하다. 근음을 누르던 그의 손가락이 연음으로 춤출 때 기타와 베이스, 드럼도 함께 솟구친다. 현악은 나부끼고 신시사이저가 흩뿌려진다.

    독백과 방백, 대화와 넋두리를 오가는 감정은 때로는 시, 때로는 대하 서사가 돼 침잠하는 음악에 장엄하게 실린다. 짧으면 2분, 길면 8분에 달하는 곡은 소품과 대하 서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질적 요소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한다. 그 이질적 요소들의 이음새가 다른 소재의 천을 이음새 없이 붙인 드레스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세계는 로로스에서 연결되는, 하지만 다른 풍경의 우주이자 꿈이다. 카오스를 끌어안는 코스모스다. 나부끼는 먼지조차 고요한, 그런 침잠의 바다이자 광야다.



    이 앨범 제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건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에세이로, ‘토성의 영향’은 우울증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한다. 도재명은 음악의 어쩌면 흔한 소재를 프리즘에 투영된 빛처럼 분광시켜 자신의 언어로 삼켜낸다. 밴드 안에서는 드러내기 어려웠을 자아와 표현으로. 그를 도와 앨범에 목소리를 제공한 이자람, 남상아, 정차식 같은 게스트도 기꺼이 도재명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노래 한 곡을 집중해 듣기 힘든 시대에 스마트폰을 켜놓고 이 앨범을 듣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권하고 싶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토성의 영향 아래’를 들어보기를. 시각의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하지 않는 시각을 만들어내는 음악이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음악은 그렇게, BGM(background music)에 머물지 않고 온몸으로 들어온다. 이 앨범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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