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2009.09.15

“임상시험 결과 따라 연내 백신공급량 급감할 수도…”

신종플루 대유행 예견 김우주 교수 “ 2006년 정부 문건엔 5만5000여명 사망 추계”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09-11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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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시험 결과 따라 연내 백신공급량 급감할 수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신종인플루엔자로 인한 입원 환자 및 사망자가 속출해 전체 보건의료체계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휴교나 휴업 등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부담도 크게 늘 것이다.”

    9월2일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대책과 위기를 주제로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가 밝힌 내용이다. 김 교수는 이미 조류독감(AI)이 한창 유행하던 2004년부터 정부가 만든 ‘팬데믹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종플루의 출현과 팬데믹(Pandemic·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의 도래를 경고하고 치료제 ‘타미플루’의 인구 대비 20% 확보, 예방백신의 독자적 생산체계 구축, 격리병실 확충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그의 제언은 ‘일부 과격한 학자의 성급한 주장’으로 격하됐고, 정부 당국에서도 그를 비난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팬데믹 40년 주기설의 정체

    하지만 5년여가 흐른 지금, 그의 경고는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반면 그의 주장을 무시한 정부는 할 말이 없게 됐다. 그 때문일까. 김 교수는 요즘 국회, 언론, 심지어 정부 주최 토론회에서 가장 신뢰도 높은 감염의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를 비난하던 보건 당국조차 그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현재 정부가 구성한 민관 합동 신종플루 대책위원회에 몇 안 되는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다. 국민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보건 관료의 말보다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촌철살인’하는 그의 입에 더 큰 신뢰를 보낸다.

    김 교수가 2005년에 이미 신종플루의 팬데믹 시기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그해 4월 ‘신동아’와의 인터뷰(‘2008년 인플루엔자 대학살설’ 기사 中)에서 “신종인플루엔자 팬데믹이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온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 기사에서도 팬데믹 도래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신종플루 예방백신의 국내 생산을 주도하게 된 데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현재 녹십자에서 개발한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의 주축도 고려대 구로병원과 김 교수다. 과연 그는 무슨 근거로 당시 이런 주장을 한 것일까. 김 교수에게 팬데믹 도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근거와 신종플루의 피해 규모, 예방백신 임상시험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신종플루 팬데믹이 2008~10년에 온다고 예측한 근거는 무엇인가.

    “몇 가지 근거가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이 임박했음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첫째, 일반적으로 신종플루 대유행은 큰 주기로 오고 대유행 사이에 일어나는 소유행은 3~4년 주기로 온다는 사실이다. 즉, 대유행은 반드시 어떤 주기를 가지며 또 반복된다는 얘기다. 소유행을 일으키는 계절인플루엔자(흔히 ‘독감’으로 불린다)도 처음 등장할 때는 모두 대유행을 일으킨 신종플루였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본 바 없는, 즉 면역성이 없는 바이러스이므로 세계인구의 20~50%(평균 30%)가 감염됐다. 이런 신종플루도 제1유행파와 제2유행파(큰 규모)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면역성을 지니게 되면 대유행이 종식되고 ‘제도권’에 편입한다. 계절인플루엔자가 되는 것이다.

    “임상시험 결과 따라 연내 백신공급량 급감할 수도…”

    고려대 구로병원 신종플루 진료실. 다른 환자와의 격리를 위해 임시 건물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둘째, 과거 역사기록을 보면 신종플루 대유행은 1세기에 평균 3회가 있었고, 보통 10년 내지 40년 주기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20세기에는 구체적으로 1918년 스페인 대유행, 1957년 아시아 대유행, 1968년 홍콩 대유행이 있었다. 따라서 짧게는 11년(1957~68년)부터 길게는 39년(1918~57년) 간격으로 신종플루 대유행이 있었다. 1957년 이후 10년이 지나도 대유행이 오지 않았으므로 40여 년 후에 있으리라고 예측한 것이다.

    셋째, 신종플루 대유행의 전조 증상이 이미 보였다는 점이다. 대유행은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출현해 인체 감염을 초래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이미 1997년 홍콩에서 H5N1이라는 AI 바이러스가 18명의 사람을 감염시키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로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전 세계가 놀라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에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하라는 경보를 발령했다. 신종플루 대유행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치사율이 60%에 이를 만큼 병독성이 높았지만 다행히 사람 간 전파력이 매우 낮아 아직까지는 대유행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신종플루 대유행으로 인한 사망자를 2만명으로 추계한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정말 그 정도 사망자가 발생하겠나.

    “질병관리본부가 모 대학병원의 용역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수립한 ‘2006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대응계획’에 보면 신종플루 대유행이 왔을 때의 외래환자, 입원환자, 사망자 추계 숫자가 나온다. 거기에는 5만5000여명이 사망한다고 돼 있다. 이는 미국의 통계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비교적 중간 정도의 대유행이던 1957년 아시아 대유행 수준으로 가정해 만든 자료다. 정부가 이번에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게 유출한 사망 추계 자료는 현재 유행하는 신종플루의 감염 속도, 치사율 등을 고려한 것이다. 2006년 추계보다 사망자 수가 크게 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추계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른 물자와 인원 등을 준비하고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실제 감염자 수, 사망자 수 등의 피해는 얼마나 준비와 대응을 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응에 따라 피해는 훨씬 줄일 수 있다.”

    “킬러플루 변종 가능성 희박하나 가능성은 있어”

    신종플루와 AI가 섞여 ‘킬러플루’가 될 것이라는 세계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경고가 있었다.


    “신종플루가 치사율이 높은 킬러플루가 될 가능성은 자체로 병독성이 증가하는 경우,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로의 변종이 나타나는 경우, AI와 결합해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로 바뀌는 경우 등 세 가지로 예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병독성이 증가하거나 변종이 발견되진 않았다. 현재 개발된 신종플루 백신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의 사례가 세계적으로 12건 보고됐는데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급격히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다음은 현재 동남아, 이집트, 중동에서 유행 중인 H5N1 AI와 결합해 치사율이 60%에 이르는 병독성을 지닌 신종플루로 변할 가능성이다. AI의 유행이 소규모라 결합 기회가 적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어서 이 역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을 한다고 들었다. 정부의 발표대로 연내 1000만 도스(1인당 2회 접종 시 500만명분) 공급이 가능한가.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다국적 제약사 GSK로부터 연내 300만 도스(2회 접종 시 150만명분)를 확보했다고 한다. 그런데 몇 월에 공급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녹십자는 연내 700만 도스(2회 접종 시 350만명분)를 공급할 예정인데 9월7일부터 고려대 구로병원 주도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도스당 항원 15ug과 30ug 두 가지 용량군의 각 효능을 관찰하게 되는데 만일 15ug에 효력이 있으면 700만 도스를 공급할 수 있지만, 30ug에서만 효력이 있으면 공급 물량은 350만 도스로 줄 것이다. 이는 1차 접종 후 결과가 나오는 10월 중에나 알 수 있다. 정부는 내년 2월까지 1336만명분(2672만 도스)을 확보해 접종을 마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으며 그 안에는 의료인, 보건·방역 요원 등 전염병 대응인력, 영·유아 임신부 노인 등 고위험군, 군인, 초·중·고교 학생이 포함돼 있다. 만성 내과질환 환자는 빠졌다. 문제는 신종플루의 폭발적 유행이 11월 이전에 오는 경우다. 유행이 지난 뒤의 접종은 사후약방문이 돼 의미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

    “임상시험 결과 따라 연내 백신공급량 급감할 수도…”

    신종플루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교실 소독을 하는 한 초등학교. 락스와 소독약에 바이러스가 과연 죽을까?

    신종플루가 치사율이 높은 독감으로 변하기 전에 차라리 지금 걸려서 면역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실제 7월 초에 영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심지어 학부모가 자식을 고의로 신종플루에 노출시키거나 젊은 사람들은 ‘돼지독감 파티(swine flu party)’를 열어 자신을 감염시켰다. 결국 이것이 한 원인이 돼 하루에 10만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신종플루가 약하다지만 치사율이 0.1%인 만큼 사망 위험성이 있는 데다, 추후에 나타날 변종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방어면역 효과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신종플루가 독감보다 못하고 감기 수준밖에 안 된다는 잘못된 정보가 언론을 타고 흘러나간 게 이런 안이한 생각을 낳은 듯하다.”

    요즘 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에 폐구균 예방접종이 대유행이다. 폐구균 예방주사가 신종플루의 예방이나 치료에 도움이 되는가.

    “과거 스페인 대유행 때 사망자의 주요 사망 원인에 2차 세균합병증인 폐구균 폐렴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유행 대비의 일환으로 고위험군에 이런 예방접종을 권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멕시코와 미국에서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들을 부검해 조사한 결과, 폐렴을 일으킨 원인이 폐구균이 아니라 신종플루 자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폐구균 폐렴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폐구균 백신의 신종플루 사망 감소 효과는 알 수 없다. 더구나 초등학생은 폐구균 백신의 우선 접종대상도 아니다.”

    손 씻기보다 기침 에티켓이 중요

    정부는 손만 잘 씻으면 되는 것처럼 홍보한다. 요즘 불티나게 팔리는 액체 세정제는 정말 효과가 있나.


    “먼저 신종플루의 감염경로가 주로 호흡기(비말 또는 에어로졸)이므로 기침 에티켓을 강조하고 싶다. 기침이 나오는 사람은 마스크를 반드시 껴야 한다. 정부가 손 씻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신체 접촉만으로도 일부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신종플루 바이러스는 기침, 재채기, 콧물에 의해 손잡이, 탁자, 엘리베이터 버튼 등에 묻은 다음 사람이 눈 코 입을 만질 때 점막을 거쳐 감염을 일으킨다. 보통 신종플루 바이러스는 쇠 또는 플라스틱 표면에서 24~48시간, 휴지나 의복 표면에서 8~12시간 생존 가능하다. 하지만 춥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생존기간이 더 길다. 따라서 가습기를 틀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고 따뜻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러스의 외막은 지질 단백질로 구성돼 있어 계면활성제인 비누로 제거할 수 있다. 손은 비누를 묻혀 흐르는 물에 15초 이상 씻으면 충분하다. 손을 씻을 시설이 없는 장소 또는 여행 중에는 60% 이상 에탄올이 함유된 세정제를 사용하면 바이러스가 제거된다. 하지만 손 씻기로 신종플루를 70%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는 근거가 없다. 전체 감염 환자의 대부분이 호흡기를 통해 감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요즘 신종플루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마스크, 소독제, 약물 등이 팔리고 있는데 당국의 규제가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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