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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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대중가요로 푼 酒色 방정식

욕심으로 마시면 ‘순정’에 반하는 不倫 가능성 커져

  • 홍호표 동아일보 어린이동아 국장· 공연예술학 박사 hphong@donga.com

    입력2009-05-29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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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대중가요로 푼 酒色 방정식

    신윤복의 ‘야연도’.

    가수 박상민의 노래 ‘무기라도 됐으면’은 주색(酒色) 관계의 극단을 드러낸다.
    “…하루는 술에 취해서/ 까맣게 필름 끊겼고/ 그 다음 날 그녀는 떠났지/ 난 지금 어딘가 누워 마취에 가물거리며/ 간절하게 주문만 외워댔어/ 1cm만 제발 2cm만 제발/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 무기라도 됐으면….”

    이 노래에서 주인공은 5명의 여자를 경험한다. 연상의 싱글맘을 거쳐 마지막으로 만난 ‘완벽한’ 여인에게 이별을 당한다. 술에 취해 ‘사랑’에 실패한 뒤 ‘무기(남근)’를 탓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여주인공이 ‘무기들’에 질려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간 사연의 여성 버전이다. ‘무기라도 됐으면’은 직접적으로는 ‘사이즈’를 한탄하지만 의미적으로는 ‘술 탓’이다. 이것이 술과 색의 패러독스다.

    “알코올이 마음의 제동장치를 풀어주긴 하지만 정력을 약화시킨다는 말도 있다. 몸무게가 75kg 정도 나가는 평균 남자의 경우 포도주를 반병 이상 마시면 ‘비판적인 수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뇌 과학으로 풀어본 감정의 비밀’, 동아일보사)

    술은 적당히 마시면 의식을 풀어놓아 인간 본성에 가까이 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 ‘중용’에서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천명지위성 골성지위도 수도지위교)”라고 했다. 성(性)은 하늘의 명이다. 그 명을 따르는 것이 바른길이고, 그 길이 잘못됐으면 수리해야 한다. 그게 학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술을 제대로 마시는 것(酒道)은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중용’에서는 또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造端乎夫婦)’고 했다. 그러므로 남녀는 서로 끌려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천명인 성이 이어진다.

    술은 ‘현실’을 무장 해제시키는 촉매제



    인간의 의식은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기능을 한다. 체면도 의식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본성을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술은 현실성이 있다. 큰 위험 없이 적은 돈으로 본성에 다가갈 기회다. 의식이 풀어지고 ‘조단호부부(造端乎夫婦)’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을 마셔 의식이 풀어진 상태, 즉 본성에 접근해본 사람은 다시 술을 찾게 된다. 이때 남녀의 감응을 경험한 사람은 끊임없이 그 상태를 지향한다.

    술을 마시면 왜 감응이 쉽게 일어날까. 여기서 우리는 ‘주역’의 함(咸)괘를 떠올려야 한다. 함괘는 택산함(澤山咸)으로 연못(澤)이 위에 있고 산(山)이 아래에 있다. 함은 감(感)이므로 이 괘가 나올 경우 ‘결혼하면 크게 길하다(取女吉)’고 했다.

    산은 남자에, 연못은 여자에 비유된다. 하늘(乾道)에서 남자가, 땅(坤道)에서 여자가 나왔으므로 일단 남자가 ‘위’에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도 연못이 ‘아래’에 있다. 그런데 감응하려면 연못이 위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힘 있는 자가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힘은 권력, 남성(또는 힘 있는 여성), 돈, 권위 등이다. 모두 의식의 영역에 있고 욕심을 키우는 구실을 한다. 술은 이를 무장해제해 성선설의 관점에서 선(善)으로 이끈다. 따라서 감응하기 쉽다.

    문제는 ‘적당한’ 음주에 있다. 만취하면 ‘무의식’의 상태가 된다. 언뜻 장자가 말하는 혼돈(混沌)인 것 같지만 그 혼돈도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상태로서의 ‘한마음’을 말하는 것이지, 본성과 색욕이 하나 되는 유물론이 아니다. 거친 현실에서 숨 가쁘게 작동하는 의식을 풀어줌으로써 느긋함을 지니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라면 욕심 줄이기(寡欲)에 해당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면 솔직한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서로 통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화는 말하는 사람만 기표(記表)로서 주체가 되고 상대는 기의(記意), 즉 객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다.

    기표끼리의 대화다. ‘원샷’의 폭탄주 문화는 동시에 취하게 함으로써 빨리 ‘한마음’, 즉 기표끼리의 대화가 이뤄지도록 돕는다. 남녀와 직위의 구분이 약화된다. 기표는 기의 아래로 뚫고 내려가야 한다. 라캉의 이 말은 의사소통에서 ‘나’를 낮춰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술자리는 여성은 남성에 대해, 남성은 여성에 대해 ‘나’를 낮출 절호의 기회다. 이는 이자연의 노래 ‘찰랑찰랑’에서 분명해진다. “나는 나는 그대 잔 속에서 찰랑찰랑 대는 술이 되리라/ 그댈 위하여.” 사실 술자리에서 술과 여성(또는 남성)의 관계를 이처럼 잘 표현한 말도 드물다.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는 예이츠의 ‘Drinking Song’도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주색잡기(酒色雜技)에서 색(色)은 시각을 통해 알 수 있다. 기(氣)의 영역이며 정(情)의 영역에 있다. 인간의 마음이 외물과 만나 생기는 것이 정이다. 술을 마시면 욕심이 줄어들어 순정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천명인 성은 늘 흘러내리는 것이므로 남녀의 감응도 위계질서와 신분, 성별을 넘어 ‘하나’가 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이것이 주색의 본질적 관계다.

    풍류 즐기려면 ‘酒色 중용’으로

    철학과 대중가요로 푼 酒色 방정식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인간은 살아서, 의식을 갖고 욕심을 줄여 순진한 마음으로 만나야 함께 즐거운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이 상태가 왕도(王道)다. 술은 왕도 실현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욕심으로 술을 마시면 불륜(不倫)의 우려가 커진다. 불륜은 남의 여자, 남의 남자와 결합하는 것 자체라기보다는 순정의 발현 순서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색욕이 발현하면 그것이 불륜이다. 요컨대 음주를 순선(純善)으로 향하는 길(道)을 닦는 것, 즉 학문으로 보느냐, 욕심을 위한 도구로 보느냐의 차이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나오는 노래를 보라. 처음에는 세대별로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지만 무르익으면 세대를 넘어선다.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노래로 대체된다. ‘여자는 배 남자는 항구…’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대서양을 건너…’.

    ‘한마음’, 즉 순선을 지향하며 마신 술이 불륜으로 귀결된다? 이제 주색의 관계는 중용(中庸)을 필요로 한다. 중용은 욕심 줄이기(술을 마시는 것)로 순선한 마음을 찾으면서도(中) 의식을 조절해 극단(고주망태)에 이르지 않고, 색욕이 아니라 순정이 흘러나오도록 하는 것(庸)이다.

    술을 진정으로 즐긴다면 풍류(風流)가 돼야 하고 순선의 노래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하버마스 식의 유물론에 입각한 ‘몸통 즐기기’ 차원의 노래가 나온다면, 이는 물욕과 색욕에 지배되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히트곡인 채규엽의 ‘희망가’는 이 점을 경고했다. “주색잡기에 침몰하여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욕심은 채울수록 커지는 속성을 지녔다.

    ‘작업’ 목적의 음주는 ‘한마음’이 되는 듯하지만,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또 다른 욕심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비틀어놓은 것을 다시 비틀어 오늘날의 주색 풍경을 비판적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술자리라는 체스게임에서는 ‘한마음’과 ‘순정’이라는 꼭두각시가 언제나 승리한다. 왜냐하면 주욕(酒慾)과 색욕(色慾)이라는 곱사등 유물론이 테이블 밑에서 조종하기 때문이다. 색욕은 감춰야 할 것이므로 절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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