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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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박지성 같은 골잡이…자기 창조조직 완성할 것”

허용석 관세청장 인터뷰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9-04-17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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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들은 박지성 같은 골잡이…자기 창조조직 완성할 것”

    허용석 관세청장은 인터뷰에서 “공무원 스스로 생각을 바꿔야 살아남는다”는 말을 5번 반복했다. 그만큼 인식 변화를 공조직 개혁의 핵심으로 본다는 뜻이다.

    메모지에 연필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때론 연필을 돌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적고 또 적었다. 4월1일 오후 2시50분.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관세청장실로 들어선 기자는 부속실 소파에서 허용석(53) 관세청장의 ‘몸짓’을 읽을 수 있었다. 부속실과 청장실은 투명 창(窓)으로 구분돼 있다. 잠시 후 청장실로 들어가 인사를 건네며 시선을 메모지로 옮겼다.

    “뭘 그리 열심히 적으셨어요?”

    “아, 이거요? 정해진 인터뷰 시간에 제대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B5 크기의 메모지 5장에는 ‘인사’ ‘조직문화’ ‘고속 승진제’ 등 중요 단어마다 별표와 동그라미 표시가 덧칠돼 있었다. 1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에서 그는 메모를 보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가끔은 기자의 제안을 메모지에 받아 적고는 “이래서 토론이 필요한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 고맙다”며 흐뭇해했다.

    “전례, 규정 없다” = “일 안 하겠다”



    인터뷰에 앞서 기자는 관세청 직원들의 분위기와 최근 관세행정을 애벌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건 허 청장 부임 후 이뤄진 ‘관세청의 신경영 실험’. ‘임금님도 못 바꾼다’는 공조직 개혁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을까. 허 청장은 지난해 3월 부임하자마자 인사, 조직, 교육, 조직문화 4개 부문에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래서 첫 질문의 주제도 조직개혁이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하지 않았나. 이것을 기분 나쁘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고 기업인의 평가를 인정해야 한다. 공무원은 평생 ‘갑’의 처지에만 있다 보니 현장과 ‘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걸 바꿔야 한다.”

    28년 공무원 생활을 한 허 청장은 공조직 개혁이 흐지부지되는 이유로 3가지를 꼽았다.

    “공무원 중에는 머리가 좋고 우수한 사람이 많다. 인허가권 등을 쥐고 있어 ‘파워’도 있다. 그리고 굉장히 전문적인 업무를 한다. 따라서 타율이나 외부의 강요에 따른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 개혁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허 청장표’ 공조직 개혁은 시나브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초일류 기업에는 구성원들의 강한 열정과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좋은 시스템이나 조직문화가 있다. 열정도 없고 투서와 파벌,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저급한 조직문화에선 우리가 바라는 강한 조직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공조직 역량 강화를 위해선 올바른 조직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서 ‘자기 창조조직(Self-Creation)화’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자기 창조조직이 되면 스스로 일을 찾아 해결하는 열정으로 조직이 살아난다. 국민과의 ‘갭’도 확실히 줄일 수 있다.”

    ‘자기 창조조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청장이나 국장의 철학, 캐릭터와 관계없이 직원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창의정신으로 조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조직문화로, 체계화·생활화하는 조직을 말한다. 조직의 수장은 눈이 열 개, 손이 열 개로 활동해도 직원들은 절인 배추처럼 늘어져 있을 수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언론이나 국민 신문고, 각종 간담회 등을 통해 직원과 국민 사이에 갭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문어 빨판처럼 이를 끌어들여 여과, 혹은 해결해야 한다. 결과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줘 성과로 다시 측정한다. 스스로 정화하는 조직이랄까. 외부환경과 관세청 기능 간의 갭을 자동적으로 메워가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했다.”

    “직원들은 박지성 같은 골잡이…자기 창조조직 완성할 것”

    올 한 해 동안 콜센터에는 ‘KS서비스 인증’이, 통관지원국에는 ‘통관지원 세계 7위 달성’이라는 숙제가 내려졌다. 관세청 콜센터(왼쪽)와 컨테이너 부두.

    “인사를 관통하는 원칙은 투명성”

    외부환경과의 ‘갭’은 어떤 것인가.

    “업체 사람들은 공무원들에게서 ‘전례가 없다’ ‘규정상 안 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고 한다. 이런 게 갭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해야 하는데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세관 단위로 이런 민원을 모아 세관장들과 토론하고 바꿔나가는 시스템을 마련했고, 지난 1년간 이 과정을 통해 숨어 있던 규제 98건을 찾아내 개선했다. 금액으로 치면 3270억원가량이다. 관세청 업무는 산업분류로 따지면 서비스 산업이다. 민간서비스 업종의 인건비 대비 영업이익(수익성)을 보면 S은행은 3.5배, D항공은 3.3배, M교육은 4.8배에 이른다. 그런데 관세청은 1.5배다. 이래선 안 된다. 영업이익이 연봉의 3배는 돼야 한다. 직원들이 자기가 한 업무를 복기해보고 스스로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규제완화로 경비를 줄이고 제도도 바꿔야 한다.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저으며) 아직은 타성도 많이 보인다. 버려야 한다.”

    결국 인사가 중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이다. 지금은 옛날과 달리 공무원에게 부수입이 없다. 급여 올리는 방법은 승진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인사제도를 바로잡아줘야 자기 창조조직화가 가능하다. 인사의 투명성, 합리성, 공정성이 담보되면 ‘높으신 분’들이 혹여 인사 청탁을 해도 힘을 쓰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내가 하는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는데 누가 제대로 일 안 하겠나. 음습한 부분이 생기는 것은 비공개 때문인데 결국 나중에 다 알려지게 돼 있다. 보직 공모제, 고속 승진제, 만족도 조사 등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옳은 얘기지만 실천이 어려울 것 같다.

    “아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 2월에 누구나 선망하는, 4500여 명의 인사를 책임지는 본청 인사과장 자리를 공개 모집했다. 인사팀에서는 처음에 반대를 했지만 그래도 강행했다. 전국에서 7명이 지원했고, 인터뷰와 실적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국장급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추천하는 결과는 같았다.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하다. 청장이 일방적으로 ‘찍어서’ 인사를 하는 것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투명하게 인사하면 직원들의 ‘언더스탠드’가 빠르다.”

    “직원들은 박지성 같은 골잡이…자기 창조조직 완성할 것”

    대전의 한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에게 수입품 원산지 표시에 대해 설명하는 허용석 관세청장.

    ‘라이브폴’을 하는 것도 그런 자신감 때문인가(허 청장은 인사 발표 후 직원들의 만족도를 알아보는 라이브폴 제도를 도입했다).

    “인사 후 전체 직원의 20%인 약 900명을 랜덤 방식으로 선정해 조사한다. 5급 승진 인사가 많다면 6급 직원을 많이 참여시켜 실질적인 판단을 알아본다. 밀실 인사를 했다면 만족도는 금방 떨어질 것이다. 지난해 평균은 75%, 올해 3월에는 83%가 나왔다. 오해와 억측, 위화감 등을 미리 차단한 결과다.

    ‘인사 매트릭스’도 완성된다. 보직의 중요도와 선호도에 따라 4500여 보직의 순위가 매겨진다. 인사 때는 직원 순위가 나오고 개인의 희망과 실적 점수 등을 ‘매칭’해 자동적으로 보직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기 성적으로 특정 보직에 지원하려면 어느 정도 점수를 더 얻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현저히 줄어든다. 이런 시스템을 상반기까지 구축할 생각이다.”

    일종의 고속승진 제도를 도입했는데.

    “인사 매트릭스와는 다르다. 관세청 정년퇴직 직원은 4, 5급이 대부분이다. 7급에서 4급 되는 데 평균 28.2년 걸린다. 이 기간을 13년으로 단축시키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도입했다. 영화에서 빠삐용은 햇살을 보고 탈출을 결심하지 않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선정기준은 재직기간, 실적, 다면평가를 4:4:2로 배분했다. 지난해 8월부터 최우수 직원 5명을 선정했다. 이렇게 되면 ‘예뻐하는 놈’만 밀어줄 수도 없다.”

    직원들은 허 청장을 ‘박지성·베컴 전도사’라고 말한다.

    “직원들에게 늘 박지성 얘기를 한다. 직원은 박지성이나 베컴 같은 골잡이다. 과장은 미드필더, 국장은 최종 수비수, 청장은 감독이다. 결국 골을 넣는 것은 직원 몫이다. 직원들이 스타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가능하다. 63빌딩 창문 하나가 깨지면 비가 들고 바람이 불어 다른 유리창도 깨지고, 이걸 계속 방치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관세청 직원들은 4500개의 유리창이다. 청장도 마찬가지다. 직원 개개인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골 넣는 훈련도 필요할 텐데.

    “올해 국장들에게 한 가지씩 미션을 줬다. 타깃을 준 것이다. 올해 월드뱅크(World Bank)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 평가’ 통관 부문에서 한국이 세계 12위를 했다. 통관지원국장에게 올해 안에 이를 7위로 끌어올리라고 했다. 운영지원과에는 일과 생활의 밸런스가 맞는 직장을 구현하라고 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가족친화기업인증을 받으라는 미션이다. 콜센터엔 KS서비스 인증을 받으라고 했다. 이런 타깃을 좇다 보면 자연스레 조직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보완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날밤 새워 일하라는 건 아니다.

    골프에서 중요한 것은 샷의 거리와 방향이다. 개인적으로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거리를 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어떤 방향과 내용을 가지고 밤을 새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거리 낸다고 날밤 새워도 방향을 못 잡으면 ‘꽝’이다. 실전에선 오히려 짧게 치는 사람이 이긴다.”

    개혁에는 반발도 따르게 마련인데.

    “일부 직원은 처음에 만류했다. 청장 바뀌면 흐지부지된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좋은 거냐, 나쁜 거냐’고 물었다. ‘좋다’고 하더라. 그럼 하는 거다. 청장이 바뀌더라도 이런 전례가 있었다는 것을 남기는 것만도 의미가 있다. 전례가 ‘석세스풀’이었다면? (다음 청장도) 하는 거다. 청장실 투명 유리창도 처음엔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불편했지만 이젠 익숙하다.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하면 불편할 게 없다.”

    직원들과의 산행이나 기업 방문도 머리와 꼬리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인가(허 청장은 취임 후 전국 47개 세관 등 56개 소속기관 현장을 비롯해 중소기업, 전통시장 등을 수시로 방문했다).

    “격주 토요일 오전마다 직원들과 산행을 한다. 금요일 오후에 미리 내려가 현장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듣고, 산행을 하면서는 직원들과 얘기한다. 청장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젠 정년퇴직 때까지 청장 얼굴 한번 못 보고 퇴직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웃음) 직원들이 마약을 적발했다면 곧바로 격려전화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감독’이 적극 지원하면 선수들도 힘이 나지 않겠나.”

    청장의 권위로 직원들의 시간을 빼앗은 것은 아닌가. 그러다 가족친화기업 인증이 어려울 수도….

    “(손사래를 치며) 아니다. 나는 격주지만 직원들은 1년에 한두 번 아니겠나. 주말 등산도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2시면 끝낸다. 오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라고 한다. 그래야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지 않겠나.(웃음) 권위라고 했는데, 사실 지위에서 권위가 나오는 게 아니라 전문성에서 나오는 시대가 왔다. 직원 보고서가 올라오면 부가가치를 높여주고, 일 시킬 때는 미리 아웃라인을 정해줘야 한다. 그냥 ‘검토하라’고만 하면 직원들은 죽을 지경이 된다. 얼개를 토대로 살을 붙이라고 해야지. 보고서에 가마 타는 공무원이 가장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국민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까지 한국 청소년의 평균 키는 일본 청소년보다 작았다. 그런데 1993년 0.2cm 차이로 역전한 이후 2005년에는 2.8cm나 더 커졌다.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풍요’가 아닐까 싶다. ‘일본인은 작다’는 옛 기록을 미뤄 보면 ‘재역전’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인의 성장 유전자를 풍요가 자극한 것으로 본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 국민이 쭉쭉 뻗어가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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