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7

2008.12.30

배운 대로 수사? 곤혹스런 검찰

검사 출신 호화 변호인단과 잇단 맞대결 … 굵직한 사건 김상희 前 차관 소문 무성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12-24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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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운 대로 수사? 곤혹스런 검찰

    조준웅 송광수 정상명 변호사(왼쪽부터).

    어느 조직이나 ‘선배’는 무섭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도제(徒弟)교육 문화가 남아 있는 조직일수록 더 그렇다. 검찰이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수사 중인 사건에 검찰 선배인 변호사가 변호를 맡으면 검사들은 머리가 아파진다.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특히 그 선배가 검사장, 검찰총장 등 고위직을 지낸 인사라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수사’, 검사에겐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 한 현직 검사는 “생각해 보라. 얼마 전까지 상사로 모시던 분이 변호사로 수사에 관여하면 어떻겠나. 면접시험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사정(司正) 드라이브’가 한창인 요즘 검찰청에선 이런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거물이 연루된 사건이 많은 만큼 검찰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호화 변호인단이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탈세 등 혐의로 구속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국내 최대 로펌 김·장에 변호를 맡겨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팀장에는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박상길 전 부산고검장을 앉혔다. 검찰에서는 “이 정도면 최고의 ‘드림팀’이다”는 말이 나왔다.

    수백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의 변호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 맡았다. “정 전 총장이 2000~2001년 서울중앙지검 동부지청장 재임 당시 프라임그룹 측과 알게 된 인연”이라는 설명인데, 퇴임한 지 1년밖에 안 된 전직 총장과 싸워야 하는 수사팀의 속은 ‘당연히’ 편치 않다. 그래서일까.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황윤성 서부지검 차장은 백 회장 구속 직후 기자들과 사석에서 만나 이런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전 검찰총장이 변호를 맡고 있다는 게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다. 특히 (변호인 측에서) 수사 상황, 백 회장 신병처리 방안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오는 통에 관계가 불편했다. 백 회장 구속 직전 변호인 측에서 전화가 왔기에 ‘(정상명) 총장님께 배운 대로만 수사하겠다고 전해주십시오’라고 해줬다.”

    “상사 앞에서 면접시험 보는 느낌”

    이런 가운데 최근 법조계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냈고 지난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BBK 관련 대책을 이끈 김상희 전 법무차관에 대한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이 수사 중인 여러 건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현직 검사장도 “거물급 인사 3~4명의 변호를 맡고 있다고 들었다. 정식으로 수임을 한 것인지, 아니면 법률자문을 하는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김 전 차관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이 법률 자문 혹은 변호를 한다고 알려진 주요 사건의 거물급 인사는 최근 구속된 김평수 전 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이주성 전 국세청장, 남중수 전 KT 사장, 조영주 전 KTF 사장 등이다.

    김 전 차관은 올해 초 신성해운의 국세청 로비 사건 당시부터 이 전 청장에게 법률자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청장은 수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올해 초 자신을 찾아온 국세청 인사에게도 “나와 관련된 모든 내용은 김 전 차관과 상의하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최근 이 전 청장이 서부지검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기 전에도 법률자문을 했다.

    남중수 전 KT 사장, 조영주 전 KTF 사장도 김 전 차관의 법적 조력을 받았다. 수사 초기 김 전 차관이 사건을 확인하고 수사 진행상황을 체크했다는 것.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의 핵심 관계자는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된 뒤에는 변호를 안 한 것으로 안다. 수사팀과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을 둘러싼 각종 소문에 대해 김 전 차관 측은 “소문은 와전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소문 속 사건들과 관련해 선임계를 낸 적도, 선임료를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김 전 차관 측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경우에 한해 법률자문을 한 것이 이런 소문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이주성 전 국세청장은 김 전 차관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며, 조영주 전 KTF 사장은 김 전 차관이 KTF 고문을 한 것을 인연으로 개인적인 법률자문을 해줬을 뿐이고, 남중수 전 KT 사장과 김평수 전 이사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김 전 차관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다음은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선배라는 것 외에도 현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름만으로도 선배 눈치, 정권 눈치를 보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김 전 차관처럼)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권력형 비리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검찰 “수사 영향 주지 않아”

    배운 대로 수사? 곤혹스런 검찰

    1997년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의 김상희 변호사.

    수사 검찰과 검찰 출신 변호사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 같은 논란은 계속돼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해 ‘국민총장’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도 비슷한 구설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퇴임 1년여 만인 2006년 초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의 변호를 맡아 논란을 일으킨 것. 송 전 총장은 결국 여론의 비판에 못 이겨 주씨에 대한 변호를 그만둬야 했다. 당시 주씨의 변호인단에는 송 전 총장 외에도 제갈융우 전 대검 형사부장, 김영진 전 대구지검 검사장, 박태석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등이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활약했던 조준웅(68) 전 검사장도 몇 달 전 유사한 경험을 했다. 여신도 5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JMS 총재 정명석(63) 씨 변호인단에 합류한 게 화근이 됐다. 그러나 조 변호사는 당당하게 대처했다. 자신이 기소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법무법인 ‘세광’의 대표변호사로서 정씨 재판에 직접 출석하는 등 변호사 업무에 열을 쏟았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700억원가량의 회사 돈을 빼돌리거나 배임한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된 정홍희 스포츠서울21 회장의 첫 변호인은 정동기 민정수석이었다. 3월 말 국세청 조사가 시작된 때부터 변호인으로 활동한 정 수석은 6월 이명박 정부 2기 민정수석에 임명되면서 변호를 그만뒀다. 사법시험 18회인 정 수석은 법무부 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 등을 지냈다.

    대검찰청 오세인 대변인은 이런한 문제, 즉 검사 출신 변호사의 활동이 수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시각에 대해 “그런 이유로 검찰 수사가 방해를 받는다고는 보지 않는다. 변호를 맡기 위해 준비 중인 변호사의 활동도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 만큼, 김 전 차관처럼 법률자문을 하는 것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현직 검사도 비위 사실이 드러나면 구속하는 시절 아닌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며 검찰의 시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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