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1

2008.11.18

오바마는 몇 단계?

  • jockey@donga.com

    입력2008-11-10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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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대한민국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왠지 몸도 찌뿌듯하고 바람마저 차서 나들이할 생각이 나지 않던 참이라 아예 침대에 배 깔고 책장을 뒤적거린 것이지요.

    20년 넘게 방송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MBC 심의위원으로 있는 윤영무 씨가 쓴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한국에서 남자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음을 비칩니다.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 MBC ‘뉴스데스크’의 ‘1원의 경제학’ 코너로 얼굴을 알린 바 있는 그는 이번 책에 앞서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라는 저서로 20만 독자의 성원을 받기도 했지요.

    윤씨의 책에는 ‘위기의 남자들’ ‘아빠도 뿔났다!’ ‘단 하루를 살아도 대접받고 싶다’ ‘가끔은 나도 달콤한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 남성 독자들이 무릎을 칠 에피소드가 적잖게 등장합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 같은 ‘열심히 사는 것엔 능숙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엔 서투른 것이 대한민국 남자들’이란 말에도 동감(同感)입니다. 더욱이 윤씨가 아들의 옷 구입비 20만원을 벌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공친 후 느끼는 아버지로서의 비애감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력시장에서 내가 얻은 것은 몇만 원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직장에서 쫓겨나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현실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책에서 불혹(不惑) 넘은 이 땅의 가장(家長)들이 가장 고개를 주억거릴 내용은 아마도 ‘남자 인생의 7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윤씨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탈무드’는 남자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한 살=임금님(모든 사람들이 임금님 모시듯 달래거나 얼러서 비위를 맞춰준다)



    두 살=돼지(진흙탕 속을 마구 뒹군다)

    열 살=염소(웃고 떠들고 마음껏 뛰어다닌다)

    열여덟 살=말(다 자랐기 때문에 자기 힘을 자랑하려 든다)

    결혼 이후=당나귀(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힘겹게 져야 한다)

    중년=개(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개처럼 구걸한다)

    노년=원숭이(어린아이와 똑같아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윤씨는,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남자들은 마치 개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그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나이 들어 힘없는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자조(自嘲)합니다. 그러곤 자신을 당나귀인 5단계를 지나 개인 6단계로 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어느 단계에 속한다고 여기십니까? 현시점에서 삶이 고달프지 않은 대한민국 남자가 한둘이겠습니까마는, 만 47세의 버락 오바마가 세계 최강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니 축하에 앞서 무력감이 되레 배가되는 듯하네요.

    ‘남자는 술로 운다’더니, 주당들에겐 술 마실 핑곗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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