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문화

진솔한 ‘청춘 이야기’ 지구촌까지 通했다

‘힙합 아이돌’ 방탄소년단 빌보드 차트·유튜브서 승승장구

  • 미묘 대중음악 평론가·‘아이돌로지’ 편집장 tres.mimyo@gmail.com

    입력2017-03-03 15: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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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무섭다. 지난해 10월 ‘윙스(WINGS)’ 앨범이 미국 빌보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앨범 차트에서 26위까지 올라 화제가 됐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이 앨범은 초동 판매량이 35만 장에 달했고 누적 판매량은 3월 현재 77만 장을 넘겼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조회 수 5000만 뷰 이상인 곡도 8개에 이른다. 그중 두 곡은 1억 뷰를 넘어섰다.

    국내 공연 규모 역시 2014년 2000석의 악스홀(현 예스이십사라이브홀)에서 시작했으나 올해는 고척스카이돔(2만 석 규모)으로 급상승했다. 많은 음악평론가가 ‘제가 EXO(엑소)는 아는데요, 방탄소년단이 누구기에 이렇게 난리죠?’라는 기자들의 문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연말 한 시상식에서 이들이 엑소를 눌러 논란이 되자 주최 측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평가에서 방탄소년단이 우위를 점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가장 큰 ‘버즈’를 일으키는 그룹이 방탄소년단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10대를 넘어 청년의 대변자로

    이들의 데뷔작인 2013년 첫 싱글앨범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은 다소 고전적인, 이른바 ‘힙합 전사’ 이미지를 담았다. 이어 2014년까지 발매한 세 장의 음반은 통칭 ‘학교 3부작’이라 부르는데, 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소년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학교생활에서 경험하는 절망감과 반항심, 좌충우돌 첫사랑 등을 거친 표현으로 담아냈다.

    10대가 주제인 곡을 발표하는 건 당시 아이돌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아이돌이 ‘10대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것은 학원폭력이나 교육제도 등을 이야기하던 1세대 보이그룹의 초기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앨범에 멤버들의 대화를 녹음한 스킷(skit)을 비롯해 짤막한 트랙을 다수 포함하는 것도 1990년대 유행이었다. 그렇지만 방탄소년단의 이런 전략은 국내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이끌어냈고 해외에서는 더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01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케이팝(K-pop) 컨벤션인 ‘케이콘(Kcon)’에서 폭발적 반응을 끌어내며 해외 팬덤 사이에선 엑소와 양대산맥으로 거론됐다. 이들이 택한 1990년대의 재해석이 해외 팬들에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간 것인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세를 불려나간 것은 2015년 발매한 두 장의 미니앨범과 지난해 합본 리패키지 앨범을 포함한 ‘화양연화’ 연작을 통해서다. 이 가운데 ‘아이 니드 유(I NEED U)’ ‘쩔어’ ‘런(RUN)’ ‘불타오르네’가 히트했다. 탐미적인 아트워크와 서정적인 멜로디, 서사성이 한층 강화된 뮤직비디오가 주효했다. ‘힙합 아이돌’로서 힙합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가요의 멜로디나 아이돌적인 미감을 강화하자 국내에서도 큰 도약을 이룬 것이다.

    ‘학교 3부작’에서 이어진 ‘화양연화’ 연작은 학교를 졸업하고 맞이하는 세상과의 불화 속 청춘을 주제로 했다. 청년세대의 방황, 절망을 담아내면서도 끝끝내 쓰러지지 않는 의지와 생명력을 잘 표현한 음반들이다. 뒤이어 지난해 발매한 정규앨범 ‘윙스’와 올해 2월 리패키지 앨범 ‘유 네버 워크 얼론(YOU NEVER WALK ALONE)’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명실상부한 정상급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방탄소년단의 인기 요소를 꼽자면 무엇보다 직접 곡을 만드는 팀이란 점이다. 작사와 작곡을 하는 아이돌은 많지만, 그들 중 팬들에게 ‘내 가수는 실력이 있다’는 자부심 이상의 의미를 심어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방탄소년단은 이를 ‘진짜’ ‘자기 이야기’라는 진정성의 맥락으로 재창출해냈다. 멤버들의 출신 지역이 다양한 방탄소년단은 종종 랩 가사 등을 통해 각자의 지역색을 어필한다(‘어디에서 왔는지’ ‘Ma City’ 등). 이는 방언이 주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대폭 강화한다. 작업실을 옮기는 에피소드를 평형과 지명 등까지 구체적으로 담아낸 ‘이사’ 같은 곡도 그렇다. 정제되지 않은 10대의 언어와 절망의 표현 또한 기성세대가 완벽하게 만들어준 안전한 아이돌이라기보다 불안하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화자로 느껴진다. 학교에서 출발해 거리의 청춘으로 변화한 서사 타임라인 역시 짜임새 있게 전달돼 몰입감을 더한다.

    그래서 ‘화양연화’ 연작의 주제 의식은 웬만한 참여음악보다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아 노력노력 타령 좀 그만둬/ 아 오그라들어 내 두 손발도’(‘뱁새’), ‘3포 세대, 5포 세대 (중략)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쩔어’) 같은 가사는 허망한 ‘노력론’ 앞에서 더욱 절망하는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날카롭게 대변한다.



    진짜 자신의 이야기

    여기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전제될 때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인트로 : 네버마인드(INTRO : Never Mind)’), ‘꿈, 희망, 전진, 전진’(‘에필로그 : 영 포에버(EPILOGUE : Young Forever)’) 같은 가사가 더욱 절실하게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음반마다 수록된 스킷과 짧은 랩 사이퍼(cypher)는 방탄소년단이 가진 또 하나의 무기다. 1세대 아이돌의 스킷은 다분히 팬 서비스 정도의 의미에 머물렀다. 더구나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 지금, 앨범에 수록된 짧은 트랙들이 큰 의미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일종의 역발상으로 스킷과 사이퍼를 활용한다. 일단 앨범 전체를 감상하는 청자라면 방탄소년단에게 남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맥락 없이 떠드는 듯한 스킷이나,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기엔 짧은 사이퍼를 통해 팬들은 완벽하게 정제되지 않은 방탄소년단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이는 앞뒤에 위치한 음악 트랙을 방해하기는커녕 그 의미를 확장하며, 팬들에게 더욱 강화된 서사성과 생동감을 제공한다.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다 리얼리티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는 식의 행동에 익숙한 세대를 대상으로 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학교 3부작’과 ‘화양연화’ 연작 등 음반 여러 장을 묶어 패키지화한 것도 좋은 전략이었다. 서사성을 강화하면서도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것이다. 많은 그룹이 연작 포맷을 도입했지만, 방탄소년단은 이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통상 대여섯 곡을 담는 ‘미니앨범’ 포맷에 스킷과 사이퍼 등을 추가해 십여 곡으로 부피를 늘리고, 산발적인 소재들을 담아 생동감을 더한다. 그리고 연속된 앨범 몇 장을 하나의 대주제로 엮어 제시함으로써 북적대는 이 음반들을 개념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수록곡 분량에 따라 음반을 분류하는 것이 전통 방식이었다면, 방탄소년단은 좀 더 적극적으로 음반 단위를 재조합함으로써 팀의 콘셉트와 주제 의식을 강화한다. 연작 선언이 실물 음반의 개수가 아닌 미디어플레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음악시장이 실물에서 디지털로, 또 미디어 중심적으로 변화한 환경을 역발상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유난히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뭘까. 한국 아이돌은 대부분 해외를 염두에 두고 결성되지만, 먼저 국내에서 입지를 다진 뒤 해외로 진출한다. 해외에 더 주력하는 그룹도 있긴 하지만, 해외 팬 역시 국내에서 인기를 의식하는 편이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이 공식을 지키지 않았다. 내국인 멤버로만 구성한 점이나, 국내의 지역색을 강조한 점으로 봐서 해외를 겨냥한 그룹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해외용 표기를 ‘BTS’로 뒤늦게 정리한 것을 봐도 방탄소년단이란 이름 자체가 애초부터 해외시장을 감안한 작명이 아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과 해외, 두 날개로 날다

    심지어 유튜브를 통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난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쩔어’와 ‘낫 투데이(Not Today)’의 경우 전자는 1년 4개월 만에 1억 뷰, 후자는 하루도 채 안 돼 1000만 뷰를 기록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곡 모두 타이틀곡이 아니다. 음악 소비 단위가 음원으로 축소되면서 앨범의 후속곡 개념이 사라지다시피 한 국내시장에서 이 곡들의 인기는 다소 이례적이라 하겠다. 이 곡들은 멜로디 라인보다 비트와 랩에 충실해 강렬하게 몰아붙이는 힙합 스타일이고, 정교하게 맞춘 안무와 몸의 에너지를 강조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킨 타이틀곡 ‘아이 니드 유’나 ‘봄날’이 강한 비트에 감성적이고 애절한 멜로디를 결합하고 서사성 강한 뮤직비디오를 내세운 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국내 취향’ ‘해외 취향’이라는 표현의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이 사례만 놓고 보면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낫 투데이’는 사회적 소수자와의 연대를 표방한 곡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이를 둘러싼 국내외 온도차 역시 주목할 만하다. 국내에서는 일부 가사가 논란을 낳았지만, 지금까지 케이팝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던 해외 팬덤은 환영을 표했다. 이는 노래에서 방탄소년단이 사회적 소수자와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국내에서는 비록 상대적으로 작은 기획사라고는 하나 주류 문화계의 정상을 차지한 소수의 남성그룹이 대다수의 소수자보다 권력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케이팝 팬덤이 일종의 하위문화로서 인종적, 젠더적 소수자 집단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왔다. 따라서 한국의 연예자본과 동양인 남성이 소수자의 동료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의 차이를 감안할 때 ‘봄날’을 타이틀곡으로, ‘낫 투데이’를 일종의 후속곡으로 발표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타이틀곡에 집중하는 국내에서는 ‘화양연화’ 연작과 같이 탐미적이면서 서정적인 곡으로 확실히 인기몰이를 하고 ‘낫 투데이’를 선언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며, 해외에서는 ‘해외 취향’의 곡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출하면서 케이팝 관심층 전체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진솔한 ‘자기 이야기’와 생동감이라는 매력을 바탕으로 ‘힙합 아이돌’이란 포맷을 완성한 것은 가장 큰 성공 요소라 할 수 있다. 또 디지털 음원과 유튜브, 해외 팬덤 등 달라진 음악시장의 플랫폼 성향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기민한 전략으로 대처한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팝은 끝났다’는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좀처럼 막이 내리지 않는 이유는 이들처럼 환경 변화를 꾸준히 고민하는 전략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방탄소년단이 과연 어디까지 전선을 밀고 나갈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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